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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스 Nov 02. 2020

코로나19 자가격리 13일간의 이야기

1 - 난데없이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사람이 되다니

2020년 3월 28일부터 4월 9일 23시 59분까지 자가격리 상태에 있었으며 검사 결과는 음성이고, 지금은 사회로(?) 잘 복귀하여 무사히 일상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심신이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본인의 상태를 관찰한 것을 글로 남깁니다.


Jour 1 - 2020년 3월 28일


 2주간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어서 오늘 오후부터 격리 중. 이렇게 된 이유는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모름 상태. 연예면에 기사가 쏟아져나오고 하도 이런저런 소문이 많아 카톡은 읽지 않고 있다. 결혼식에 초대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이름이 뜨며 연락이 온다. 차라리 결혼한다고 왜 나를 부르지 않았냐는 연락이었다면 이것보다는 기분이 나았을까. 


 어쨌든 이 자가격리 덕분에 당장 내일모레 심리상담 스케줄 변경. 그동안 마스크 쓰고라도 주1회 나가던 폴댄스 스케줄 홀딩. 간신히 지탱하던 멘탈의 끈이 간당간당해지려고 한다. 오늘 오후에는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아직 결과 기다리는 중. 큰 증상이 없어 안심하고는 있으나 사람일은 모르는 거 아닌가...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중이다. 감염병에 취약한, 면역억제제를 먹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내 멘탈 누가 다져줄거야... 


 모처럼 의욕있게 하던 일에도 제동이 걸렸다. 아 진짜 한숨 나온다... 제발 모두가 사회적 거리두기 및 어디 다니지 말고 세미 자가격리 상태를 유지해주면 좋겠다. 이렇게 절실할 줄이야. 내일 모레 중으로 검사결과가 나온다하니 그동안은 정말 마음 놓고 있어야지. 별게 다 나를 옥죄는 기분이다. 이 글 읽는 모든 분에게는 이런 일 없이 무사히 이 상황들이 지나가길 빌며.



Jour 2 - 2020년 3월 29일


일요일 아침,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오전 10시엔 모니터링 전화, 11시 반쯤 음성 판정 결과 알려주시는 전화, 오후 1시쯤 차주에 생필품 지원 및 생활비 지원 전화, 오후 3시 한 번 더 모니터링 전화. 02-9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보고 있자니 정말 공무원 분들 너무 고생하신다 싶어 눈물이 다 났다. 일요일이잖아요.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결혼 후 아직 혼인신고 및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챙겨주셔서 감사했다. (이건 상관없는 부분이려나, 여튼) 음성 판정을 받았어도 자가격리는 2주간 해야한대서 성실히 체온을 재고 증상에 대해서 답하고 끝. '이게 나라냐'고 했던 인간들은 이런 걸 겪어봤다면 아마 그런 소리는 할 생각도 못했을 텐데. 새삼 우리나라 복지에 감탄한다. 유급휴가를 쓸 수 없는 프리랜서에게 생활비지원금이란 매우 소중하다.


 다른 건 먼저 잘 설명해주셨고, 내가 한 가지 궁금했던 건 어플. 자가격리 수칙 안내서 맨 뒤에 자가격리안전보호 어플을 설치하라고 하여 설치 후 쓰려는데 이해도가 떨어지는 나. 맨 처음 전화에서 전담공무원 ID를 입력해야 된다던데 혹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여쭈었던 걸 잊지 않고 맨 마지막 모니터링 전화에서 챙겨주셨다. 설명해주시기를 아직 어플의 완성도가 높지 않다고도 하고, 나 이전에 이 어플을 쓰려던 이 동네 분은 없었던 듯. 친절히 전담공무원 ID를 알려주셔서 입력하고 어플을 살펴보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2주 끝나갈 때쯤이면 뭐라도 쓸 수 있겠지. 실시간으로 위치가 떠서 걱정하는 리뷰들도 있고 하더라. 우리나라 진짜 IT 강국. 


 같이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아직 구청에서 연락을 못 받았는데 나는 검사 받을 때부터 약간 유난..스러웠어서인지 먼저 분류(?)가 되어 격리 물품도 받고 모니터링도 제일 먼저 시작했다. 모두가 음성 판정 받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길. 질병관리본부랑 통화할 일이 무엇이 있었겠냐만은. 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을 해냈다.


 어제는 새벽까지 결과를 받지 못해 좀 걱정되어 못 자고 오늘 아침에서야 잠들었다. 꼭 필요한 전화도 있었지만, 그 외에 핸드폰 터져라 오는 연락들에 약간 당황했다. 누구라도 걱정할까 싶어 일부러 얘기하지 않았는데 다들 놀라서 전화 및 문자를 주어 속상했다. 어제 괜찮냐고 물어봐준 사람들에게도 결과를 전했다. 따뜻한 마음들이 너무 고맙다.


 방을 환기 하면서 본 집 앞 도로에는 차가 가득했다. 아마도 북서울꿈의숲 꽃놀이 오는 사람들이겠지. 제발 다들 사회적 거리두기를 좀 해주면 좋겠는데... 여러분 언제 어디서 확진자를 마주할지 장담할 수 없답니다. 자가격리 끝나고 나면 꽃도 다 지고 반팔 입을 시기일 것 같아 약간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집 앞에 꽃나무 하나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 동네 벚꽃 참 예쁜데, 어제 보건소 가는 길에도 꽃이 제법 펴서 서글펐다.  


 마음이 매우 복잡하다. 다 쓸 수는 없지만 여러모로 원망 및 분노가 오락가락하는 중. 더불어 낮에 자꾸 자버릇하니 밤에 잠이 안 와서 자꾸만 핸드폰을 만지거나 노트북을 켠다. 어제 하루 지내보니 필요할 것 같아 산 베드테이블은 쿠팡 로켓배송으로 방금 받았다. 지금 베드테이블에 노트북 올려놓고 글 쓰는 중.  앞으로 12일 남았는데 잘 버틸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선 일한답시고 미뤄뒀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샀던 책들을 읽으면 될 것 같았는데 그냥 누워있는 게 지금 기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앞서 자가격리를 경험해 본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문화상품권을 보내줬다. 궁금했던 책을 사 봐야겠다. 집 안에서 잃어버린 페이퍼 프로는 어디에 있을까. 차 트렁크 안에 있을 것 같은데 확신할 수가 없다. 남편 시켜서 찾아보라고 해야겠다. 


 때가 때이니만큼 심리상담을 화상으로도 진행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모로 대면이 나을 것 같아 격리 후로 상담 스케줄을 미뤄두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몸도 마음도 잘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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