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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Dec 06. 2023

야식과 사랑

2023년 12월 06일


저녁 약속이 있어 외출한 후 늦게 돌아와 오랜만에 야식을 먹었다.

새벽 1시에 먹었으니 소화라도 좀 시키고 자려면 최소 새벽 3시는 되어야 잘 수 있겠다.

예전에는 야식 따위 아무리 먹어도 다음날 끄떡없었지만 이제는 자기 전에 뭘 먹고 바로 자면 부대끼는 속 때문에 하루종일 불편하다. 그래서 잠을 좀 늦추더라도 최소 두 시간은 소화를 시키고 자야 한다. 

속이 불편한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인 것도 맞겠지만 지난날 내 몸이 괜찮답시고 나의 내장들을 혹사시킨 탓도 크다. 안 먹는 날 보다 먹는 날이 더 많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참 편리한 세상이 아닌가. 야식을 먹고 싶으면 24시간 열려있는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각종 도시락과 라면, 김밥, 커피, 빵, 케이크, 여러 가지 디저트는 물론 소시지와 족발, 편육, 치킨까지 온갖 음식들이 종류별로 취향별로 가득하다. 내가 하는 수고라곤 다음날 몸이 좀 피곤하겠거니 하는 걱정뿐이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하늘아래 이런 세상이 또 있을까 싶다. 편의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예전보다 최소 100배 정도는 행복해야 마땅하다.


야식을 먹은 건 배가 고파서는 아니었다. 뭔가 좀 허전해서였다.

약속이나 모임이 있어 그곳에 참석했다 집에 돌아오면 가끔 그런 허전함이 든다. 그냥 잘 수도 있지만 왠지 그냥 자기 싫은. 어쩐지 공허 속에 잠시 다녀온 것 같은 그런 피곤함이 조금 묻어 있는 날.

내가 야식을 먹은 진짜 이유는 그 조금 묻어있는 공허의 피곤함을 털어내기 위해서였을지도.


오늘, 사랑에 관한 얘기가 잠깐 오갔다.

예전엔 사랑의 가장 큰 덕목이 '신뢰'라고 생각했다. 상대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것. 나의 신의를 지키는 것. 그리고 격정보다는 지속되는 온화함이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보단 다른 것에 좀 더 의미를 둔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상대가 잘 지내길, 잘 되길, 건강하길, 평온하길, 자유롭길,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속엔 "함께"가 포함되지 않는다. 포함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께'가 중요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 맞겠다.

그렇다. 함께는 중요하지 않다.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 또한 좋은 것이다.

당신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은 함께 있고와 없고에 좌우되지 않는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그 누구든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이 보다 더 자신을 자신답게 만들어갈 수 있는 길이라면, 그 길이 더욱 잘 지낼 수 있는 길이라면, 그 길이 그가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이라면 당연히 그 길로 가야 하는 것이다. 설사 그 길이 타인의 눈에는 이상해 보일지라도 나는 그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고 진심을 담아 격려하고 응원해 줄 것이다.

나 또한 나대로 잘 지낼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이 좀 더 나를 나답게 만들고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나를 더 잘 지내게 만드는 길이라면 그 길이 누군가와 함께 하지 못하는 길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길로 갈 것이다.

나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었다 할지라도 만나는 순간 얼굴에 기쁨을 가득 띄운 채 반갑게 인사하는 것. 아무리 오래 함께 했다 하더라도 떠나는 순간 얼굴에 기쁨을 가득 띄운 채 안녕을 바라주는 것. 내가 잘 지내는 것. 그러므로 너도 잘 지낼 거라는 것. 네가 잘 지내니 그러므로 나도 잘 지낼 거라는 것.

우리는 각각의 개인이자 연결된 사람이라는 것. 그것에 집착이나 구속, 욕심이나 욕망은 끼어들 틈새가 없는 것.

내 사랑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뱃속에서 내장 기관들이 소화를 시키느라 쉴 새 없이 꼬르륵거리고 있다. 그 소리가 자못 힘들게 들린다. 기분 따라먹은 야식 때문에 애꿎은 내 내장 기관들이 고생이다. 잘 먹긴 했지만 다음부턴 야식을 먹는 건 삼가야겠다. 잘 지내려면 건강해야 하고 그러려면 내 몸에 너무 부담을 주면 안 되니깐. 나는 나의 내장들을 사랑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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