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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Dec 20. 2023

그래서 쓴다,

글쓰기는 어려워


10월 말쯤 글 하나를 시작했다.

내가 쓰는 대개의 글이 그날 써서 그날 올리는 거라 그날의 글 역시 그러려고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한 편으로 끝내려던 글은 늘고 늘어 지금껏 그 글을 쓰고 있다. 분량으로 치자면 브런치북 한두 권 정도는 나올 분량이다. 소제목을 달고 파트를 나누어 보니 대략 15편 정도 되는 것 같다. 아마 다 읽으려면 90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글의 큰 흐름은 완성하였지만 각각의 내용을 수정하고 추가하고 삭제하는걸 계속 반복하고 있어 언제 끝이 날지는 알 수 없다. 계획을 잡기론 올해 전엔 다 쓰는 것으로 하였지만 아마 어렵지 않을까 한다.

지금은 글의 결론 격인 부분을 수정하고 있는데 이게 끝나면 처음부터 다시 각 파트별로 수정과 삭제를 해야 한다. 그걸로 끝나면 좋겠지만 아마 거기서 또 한 두 번은 더 손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도 좀 넣어야 하고 그림도 두세 개 만들어야 하고.....


글이 늘어난 건 생각이 늘어나서이다. 주제는 하나인데 그 하나를 파다 보니 이것도 얘기하고 싶고 저것도 얘기하고 싶고 이거다 싶었던 내 생각이 실은 그게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제목은 소제목을 만들고 소제목은 단락을 만들고, 거기다 생각은 꼬이고 이야기는 어느새 산으로 가고....

나는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쓰는 걸로 봐선 나도 충분히 말 많은 사람축에 끼어도 될 것 같다. 쓴다는 것도 글로 말하는 거니깐.


글을 쓴다는 게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리고 내 생각들 대부분이 정리되지 않았음도 새삼 느낀다.

건방진 얘기지만 예전엔 글 쓰는 게 쉽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름 잘 쓴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글이란 게 점점 어려워진다. 나름 잘 쓴다고 여겼던 생각은 아예 접어버렸다.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많이 받는 글이 잘 쓰는 글이라면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글이 잘 쓰는 글이라면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와 사실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글이 잘 쓰는 글이라면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글이 잘 쓰는 글이라면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고로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고 싶기는 하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되도록 나 자신에게 진솔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글이든 아니든 말이다.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최대치는 여기다. 글을 쓸수록 이 최대치가 얼마나 늘어날지, 아니면 여기가 끝일지는 나도 모른다. 글쓰기는 어렵다. 거기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많은 호응을 받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난 쓰는 게 좋다. 글을 쓰며 나와 이야기하고 나를 알아가고 흐릿했던 생각들이 조금씩 형체를 가지는 게 좋다.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잊었던 것들을 다시 상기해 내는 게 좋다.

그렇다. 나는 쓰는 게 좋다. 내게 중요한 건 그것이다. 그래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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