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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May 18. 2024

보험을 해약하다

생활비가 빠듯해.....

오늘 10년쯤 넣고 있었던 종합보험 하나를 해약했다. 이로써 남은 보험은 치아보험, 자동차보험, 운전자보험, 이렇게 세 개가 되었다. 치아보험도 이번 달 내로 해약할 생각이니 최종적으론 두 개의 보험이 남는다.

이유는 하나, 생활비가 빠듯해서다.

없는 사람일수록 보험은 있어야 된다지만 한정된 수입에 대출이자와 카드값을 내고 나면 매달이 마이너스라 곧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치게 될 지경이 되어 어쩔 도리가 없는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지금까지 일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나의 경제는 늘 빠듯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카드값은 밀렸다 갚았다를 반복하며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대출금은 원금은커녕 이자만 내기도 버거운 지경이다. 치아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빨 몇 개는 빠진 채로 있어 입 속엔 늘 시원한 바람이 불고(여름엔 좋다), 지난겨울 갑작스레 균열이 발생한 욕실 타일은 아직도 보수를 못해 현대 미술처럼 집 한편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제목은.... 무너지지 않는 너와 나?). 그 광경이 얼마나 강렬하냐면 얼마 전 집을 방문했던 친구는 '무너지지 않는 너와 나'를 보고 두 눈이 동그래진 채 약 3초간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더랬다.

좋은 소식도 있다. 오늘 해약한 보험이 약간의 환급금이 있어 숨통이 조금은 트인다는 것이다. 그것도 잠시겠지만.




그렇지만 나는 잘 살아가고 있다.

적은 나이도 아니고 또래의 평균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으며 매달 통장에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돈들을 속수무책 지켜보고 있지만 잘 살아가고 있다. 웃을 땐 웃고 힘들 땐 쉬고 바쁠 땐 바쁘게 살아간다.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 매일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고, 되도록 나와 주변을 잘 살펴보려고 한다. 만나는 친구에겐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건네기도 하며 다음 달을 생각지 않고 통 크게 밥도 한 번씩 사곤 한다.  

나는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있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넉넉하지 못한 것도 괜찮다. 살다 보면 넉넉할 때가 있을 수도 있고 또 그럴 때가 오지 않는대도 어쨌든 밥은 굶고 살지 않을 것이니 괜찮다. 살아가는 건 결국 내가 하는 것이니 내가 잘 살고 있으면 그걸로 괜찮다.

그렇다고 인생을 함부로 살겠다는 건 아니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내 밥벌이는 쉬지 않고 할 것이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길만한 게 있다면 또 그렇게 할 것이다. 남의 것을 욕심내지 않을 것이고 댓가가 없는 것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은 있다. 신용불량이나 차압 같이 경제적 압박이 거세질 것 같은 불안도 있고 앞으로 더 나빠지면 어쩌지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다.

욕심도 있다. 여행도 가고 싶고 안 가본 해외도 나가보고 싶고 멋을 부리고 싶기도 하며 편리한 가전제품을 사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괜찮다. 생각해 보면 괜찮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설사 괜찮지 않을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괜찮을 이유가 더 많기 때문에 괜찮다.

그래서 나는 앞날이 그리 두렵지 않다. 지금이 괜찮으니 앞날도 괜찮을 것이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건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비밀 하나가 있다.

내가 괜찮으니 여러분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괜찮은 건 여러분이 괜찮아서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은 참 괜찮은 인생이다.

농담이나 비유가 아니라 진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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