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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Apr 07. 2018

<숲속의 작은 집>에 열광하는 세 가지 이유

어느  귀농자의 숲속 이야기

<숲속의 작은 집>이 첫 방송된 날, 포털 검색 1위에 오르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근 시청자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방송 프로를 보면 현재 그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엿볼 수 있다.

나영석PD의 '윤식당’이 그렇고, ‘나 혼자 산다’가 그렇고, ‘비긴어게인', ’효리네 민박‘ 등이 그렇다.     

‘윤식당’의 시청률이 최고 16%를 찍을 정도였으니 그 후속으로 어떤 작품이 나올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가 나에게도 있었다.

바로 어제 나영석PD의 <숲속의 작은 집>이 4.6%의 시청률로 테이프를 끊었다.     

<숲속의 작은 집>은 공공전기, 수도, 가스가 끊긴 오프 그리드(off-grid)의 생활을 숲 속의 아주 작은 공간에서 사는 모습을 모티브로 한 프로이다.

혼자 고립되어 생활하는 모습을 담았기 때문에 타이틀 역시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라고 붙였나보다.    

거기에 모든 것들이 최소한 있어야 할 것만 있는 그런 생활이다.

특이한 점은 배우 소지섭과 박신혜가 피실험자로 나오는데 이들은 각각 별도의 작은 집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두 배우가 만나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 이영석 PD는 “재미를 주려고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다. 재밌게 하려면 최소한 옆집에 살게 하거나 해야 재밌는 상황이 만들어 질 것이다.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으로 추구하고 싶었던 것은 대화가 아니라 자연의 소리, 이분들의 얼굴이 아니라 미니멀한 삶의 방식을 더 보여주고 싶었다.”며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풍요 속에서 귀함과 고마움을 잊고 살았던 우리들에게 한번쯤 지금의 내 모습이 얼마나 풍족하고, 가진 게 많은지도 함께 일깨워 주고 있다.

이처럼 자연에서의 소박하고 느림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숲 속의 작은 집>의 배경은 어떤 이웃도 없이 오로지 자연과 나만이 친구가 되어 나를 돌아보고, 자연의 귀한 울림에 귀기울이는 삶을 표현하고 있다.   

  

<숲 속의 작은 집> 내용 중 한 둘을 꼽자면,

두 피실험자는 차소리, 집 주위의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공사 소음에 아침잠을 깬다고 했다.

그러나  숲속의 작은 집에서는 해의 눈부심으로 그리고 새소리에 잠을 깬다.

자연알람인 셈이다.    

 

내가 처음 귀농했을 때, 나 역시 그 점이 참으로 귀하게 느껴졌다.

귀농 전, 도시에서는 사발시계의 철 두드리는 소리, 그 골 때는 소리에 잠을 깼다면 산골에서는 새소리에 잠을 깬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하루를 시작하는 정신이 멍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가만히 한 소리에 귀기울여 본 적이 언제였는지 묻는다.

도시에서는 하나의 소리를 듣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차소리, 길가의 광고소리, 공사장소리 등이 뒤엉켜 그저 하나의 굉음으로 우리 뇌를 괴롭힌다.   

 

그러나 <숲 속의 작은 집>에서는 소지섭이 물소리를 찾아가 개울가에서 물소리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의 소리만을 오롯이 귀기울이며 마음의 울림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어쩌면 하나의 소리라는 존재 그 자체를 잊고 사는 지도 모른다.  

   

왜 사람들은 이런 프로에 관심이 집중되는 걸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경쟁 속에 살아간다.

그런 경쟁 속에서 정서나 인디언들이 마음 속 마음이라 하는 영혼이 어찌 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란 말은 실제로는 성공을 위한 경쟁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경쟁을 하면서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을 뛰어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한다.”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옆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것이 잣대가 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머리에 흰띠를 두르고 끝없이 달려야 하고,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귀농 하자마자 살았던 오두막 풍경)

우리집 귀농 주동자 역시 그런 이유에서 현대자동차 지점장이라는 완장을 던지고, 난 한국생산성본부 선임연구원 자리를 내어 놓고 오지 산골로 어린 아이들과 함께 2000년에 귀농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너무나도 일찍이 터득한 거였다.    

(귀농하고 집짓기 전에 살았던 오두막)


그 당시 내가 “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 하느냐”고 물었을 때, 남편인 귀농주동자는 이런 말도 했다.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손에 쥐어지는 것은 많아질지 몰라도 가슴이 비어가기 시작하더라구. 그렇게 평생을 살면 억울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그 말에 더는 반대 안하고 우린 용감, 무식하게 둘다 사표를 내던지고 뒤도 안돌아보고 연고도 없는 경북 울진 오지 산중으로 귀농했다.    

아이들을 자연에서 책과 여행으로 키울 생각을 하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때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 유치원생이었다.

지금은 자연, 책, 여행으로 큰 아이들은 대학때문에 서울로 갔고, 이제는 청춘이 되었다.

(귀농하자마자 살았던 오두막의 겨울풍경이 다시 보니 그립네요. 지금은 새로 집을 지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현실마저 너무 암담하다.

뛰어넘어야 할 벽이 겹겹이 기다리고 있어 하나를 넘는다고 하여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예전에는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불행이나 불편을 감수하고 살았지만 지금은 ‘현재’를 중요시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휘게 라이프'나 '욜로 라이프'와 같은 용어들이 자주 언급되는 것도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많이 가져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느꼈던 과거 세대와는 달리 과연 많이 가져야만 행복한가 하는 의문을 하게 된 것이다.    

 

<숲속의 작은 집>은 헨리 베이빗 소로우(1817~1862)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이웃도 없는 외딴 숲속인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손수 짓고 살았다.

전세계인들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월든>이라는 책에 열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숲속의 작은 집>과 같은 프로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이 지쳐있고, 상처나 있다.

이런 지침을 해소해 주고, 너덜너덜해진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장소라면 어디일까?

자연 이상 없다는 것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현대인들이...

<숲 속의 작은 집>은 그 점을 철저히 감안하여 제주도의 드넓은 자연 속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예전 세대와 지금의 세대와는 행복의 가치가 다르다는 점에 착한했다는 거다.

지난 세대들은 대부분 많이 가져야 행복한줄 알았다.

물질적 만족이 곧 행복의 전부라고 알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많이 갖기 위해 치열하게 몸과 마음을 닦달하기 보다는 조금 적게 가져도 소소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름지고, 발음도 어려운 고급진 음식 등을 먹어야만 행복하다고 보지 않는다.

소박한 음식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느릿느릿 준비하는 시간도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소박하게 차려진 음식이라도  그것도 행복한 삶의 한 방법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 없는 것 없이 모두 갖춰진 멋진 집보다는 꼭 필요한 것만 있어도 영혼이 고단하지 않으면 좋다는 등의 미니멀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려 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방송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배우 소지섭과 박신혜가 같이 생활하거나 바로 이웃으로 생활하는 게 아니다.

각자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내 자신을 들여다 볼 시간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직장생활에 정신이 없고, 친구들을 만나고, 무엇을 정신없이 배우고....


이처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뜰을 들여다 보며 나의 잘못도 꺼내보고, 나를 응원도 해보고, 내가 내 상처도 꺼내 약을 발라주고 하는 더 중차대한 시간을 갖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숲 속의 작은 집>은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와 친해지고, 나를 알아가는 그런 기회를 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숲 속의 작은 집>과 같은 프로를 통해 우리는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을 투영하면서 행복을 대리 경험하고 상처난 곳에 아까징끼를 발라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숲속의 작은 집>과 같은 프로가 많아져서 지친 현대인들에게 마음 안에 ‘호롱불이 켜진 작은 다락방’과 같은  안식처를 하나씩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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