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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한 Jul 18. 2020

일용직 아르바이트, 나레기, 엄마.

난 오늘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말도 없이 빠져버렸습니다. 

지금 이 문자를 받으신 분들은 17시 무단결근하신 분들입니다. 무단결근 하시면 안된다고 항상 말씀드리는데, 사정이 생기면서 사전에 미리 일찍 연락 부탁드립니다. 무단결근으로 인해 다른 분들이 출근하지 못하세요. 무단 결근 하시면 안됩니다.


문자가 왔다. 일용직 물류창고 회사의 문자다. 어차피 초과인원을 뽑기에 나쯤은 출근 안해도 다른 지원자들로 빈 자리 메꾸겠지. 이기적으로 생각했다. 근데 꽤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이었나보다. "나쯤은"부터 "겠지"까지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마켓컬리인들. 각자 사정이 다르겠지만, 8시간 노동에 9만원 준다고 해서 해맑게 지원하는 우리 일용직 마켓컬리인들. 저처럼 귀찮아서 안 나가신 분들, 꽤 되시나봐요?


매번 나가야한다고, 월세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나가야 한다고 지원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알바자리는 매드맥스 세계관의 물만큼이나 귀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물류창고가 우릴 받아준다. 품어준다. 0도에서 5도 사이의 창고가 말이다. 


그 곳에선 모두가 정신없이 움직인다. 저들은 움직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여름에 챙겨온 후드티와 패딩으로 온 몸을 싸매고 2,3,3시간단위로 우리는 저온창고에 들어간다. 이 과정을 출근하기 30분 전부터 해보아라. 공황장애 약 두 봉지를 입에 털지 않는 이상 그만큼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일이 없다.


그래도 9만원 때문에 나간다. 17시부터 25시까지 일하면 9만원을 준다. 업무연장은 필수 아닌 강제지만 그만큼 더 들어올 돈에 마조히스트마냥 웃는다. 이번주 월세는 냈고, 다음주 월세까지는 디데이 4주다. 이번 주 안나갔으니 3×9=27. 월세용 통장에 있는 9만원을 합쳐 36만원. 비상금 통장에서 조금만 보태 월세를 내면 된다. 되겠지. 아니 되야 한다.


집에서 나가야 하는 시간은 오후 3시 20분. 방 안에 멍하니 누워 방금 사용한 스핀홀 텐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 짧은 자기위로를 보장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이 친구와 본 영상에는 아름다운 누나가 등장했다. 힘든 하루 끝에 퇴근한 남편을 위로해주는, 이쁜 누나였다. 나도 나중에 저런 누나의 위로를 받고 싶다. 위로가 끝나기 전까지 봤던 내용이 천장에서 연기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휴대폰을 보았다. 오후 3시였다.


결국 난 나가지 않았다. 대신 잠을 잤다. 요즘 살도 찌고 나태해지는 것 같아서 하루 30분 운동을 시작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온 몸이 피곤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데 오히려 더 몸이 힘들다. 전신운동과 자기위로의 도움으로 몸에 힘이 빠지며 영상의 기억이 차츰 사라져가고 있었다. 왠지 억울해 욕을 내뱉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 이를테면 살빼기, 독서, 영화, 글쓰기, 포트폴리오작성, 이력작성을 하려면 24시간이 아니라 1주일도 부족하다. 결국 잠을 줄여야 한다는 말인데 나는 3대 욕구 중 수면욕이 1순위다. 돈이 부족하면 시간이 부족해 돈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깨진 독에 물 붓기다. 돈과 시간이 진정되면 몸이 고장나 아프다. 몸을 뉘이면 다시 돈과 시간이 부족해지고. 이게 뭐야. 이게 베스트 라이프인가? 


잠들기 직전 잠 줄이면서까지 일하는 우리 엄마가 잠시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역시 대단하다. 김도영씨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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