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독서클럽
책을 산다. 산 책을 다 읽지는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지 못한다. SNS 하느라, 짧은 영상을 보느라 통 집중할 수 없다. 사두고 읽지 않는 책이 집에 그득하다. 그래도 책을 산다. 당장 읽지 않아도 언젠가 읽기를 바라고, 내가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책을 팔고, 또 책을 쓸 수 있을 테니까. 책이 팔리지 않는다면 책은 쓰이지 않는다. 책이 쓰이지 않으면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고, 한 자 한 자 한 줄 한 줄 문장을 더듬는 동안, 대뇌 피질에 아름다운 주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산다.
서점에서만큼 큰 손이다. 예전에는 종이봉투에 책을 가득 담아 돌아오는 길이 좋았다. 요즘은 책 상자가 현관 앞에 놓여 있으면 기분이 펴진다. 책을 사는 데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좋은 일을 하나 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하루가 상쾌해진다. 아무래도 좋다. 책을 산다.
누구나 책을 사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관찰한다. 저 사람은 책을 사는 사람일까? 어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저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은, 가치관은 어떤 책으로 이루어졌을까? 책을 사거나 읽을 것 같은 사람들, 좀 더 알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독서클럽으로 매월 만나고 있다. 우리 모임은 그저 책을 산다. 매월 한 회원이 살 책을 추천하면, 회원들은 그 책을 사서, 식당에서 모인다. 책에 대해 오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추천자는 내가 누군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책을 고르고, 우리는 그 책을 사고, 또 읽으면서, 그 사람을 좀 더 알게 된다. 우리 모임의 슬로건은 ‘책은 사고, 사람은 읽는다’
요즘은 책 모임을 만들라 주변에 권하고 있다. 이미 있는 독서클럽에 들어가도 좋고, 새롭게 만들어도 좋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들면 어떻고, 조카들과 만들면 어떤가. 책을 사기만 하고 안 읽으면 또 어떤가. 책을 사는 바람에, 사람을 읽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데. ‘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니 당신도 쓰윽 훑고만 가라’고 잔나비 청년들도 노래하지 않았나.
책은 어렵고, 무겁다. 가끔은 한숨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게 당신을 어떻게든 올려줄 거라는 거.
-사소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