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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스텔라C Nov 22. 2021

당신의 주기적 기억 상실

1.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후배가 말했다.

"원래 십일월이 이렇게 춥나요? 올해는 유난히 추운  같아요."


초겨울이잖아.


 "그래도 올해만큼은 아니었던  같은데..."


아냐, 작년에도 추웠어. 작년의 작년에도.. 심지어 천구백팔십오  십일월 사일에는 첫눈이 왔다고. 그해에 내가 죽을 만큼 좋아했던 선배랑 첫눈을 봤거든.  여하튼 첫눈이 올만큼 추운 날씨야. 십일월은.  

그리고  어느 겨울방학은 영하 이십 도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개학을 늦춘 적도 있었어. 요즘은  정도로 춥지는 않잖아. 지구가 따뜻해지고 있다니까.


"그런데  해마다  추운  같죠?


그래, 나도 해마다 더 추운 것 같아. 그건 두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혹은 둘 다이던지. 하나는 우리의 몸이 점점 쇠약해가기 때문이고, 둘은 우리가 작년의 추위를 기억 못 하기 때문이라는 것.  


2.

집으로 늦은 퇴근을 하는 길에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감기  나았냐는 그녀의 말에 그렇다 했더니,


" 감기가 나을만하면  걸리고 나을만하면  걸리고, 미치겠어. 올해는  이러니?"


 기억에  매년 그랬던  같은데.  나을만하면  걸리고 나을만하면  걸려서 겨울 내내 감기였어.


"그래도 올해는  심해"


그런가? 그녀는 매년 겨울 언제나 '감기' 상태였는데, 본인께서 올해는 다르다며 박박 우기고 있으니, 믿어야 할까 살짝 망설였으나, 그녀가 어느 해에는 감기로 입원도 했다는 사실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3.

친구 하나는 최근 그녀의 일상적 기억상실이 얼마 전 그녀가 했던 전신마취  탓인 것 같다고 고백했다. 물론, 그녀는 전신마취를 하기 전에도 깜빡깜빡했었다.


4.

매년 작년보다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작년에도 나는 지루해했었다.  재미있는  없어? 하고 말버릇처럼 물었었고.  작년에도 추워했지만, 올해는 작년을 잊은  추워하고 있고, 감기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주기로 걸린다고 떠들지만, 얕은 감기 기운은 작년에도 있었을 것이다.  기억력은 스무  넘어서부터 깜빡 깜빡이고. 그렇지만 올해가  새롭게 깜빡 깜빡이다. 요즘은 사람 이름에 너무 약해졌다.


우리는 너무도 기억할 것이 많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학교에 다닐 때처럼 학교라든가, 학년이라는 구획으로 구분되지 않으므로 작년의 기억이 작년인 채로, 재작년의 기억이 재작년인 채로 잘 정리되어 기억되지 않고, 그저 과거와 섞여, 너저분한 옷장 속처럼 엉크러 져 있다. 그래서 매해 새롭게 춥고, 새롭게 감기에 걸리고, 새롭게 깜빡하며, 새롭게 지루하게 살고 있다.


매년  전까지의 괴로움은 잊어버리고 올해의 괴로움이 가장 크다고 주장하는  우리들의 주기적이고도 일상적인 기억상실은  우리의 낙천성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비관적이기 때문일까?  


나는 현재의 괴로움에만 진지하다는 점에서 낙천에 한표 던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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