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다, 옛이야기가 생각났다. 십몇 년 전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친구의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일 수도 있고. 혹은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일 수도.
1.
그러니까 나의 친구의 친구는 말이야,
어느 추운 저녁 퇴근길이었어. 친구의 친구는(혹은 친구의 친구의 친구는) 택시를 잡고 있는 그녀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그 남자, 썩 훌륭한 조건은 아니었어. 그럼에도 친구의 친구는 그 친구를 사랑했지. 그 남자, 추운 겨울 거리에서 코트 깃을 세우고 벌게진 얼굴로 손을 불어가며 필사적으로 택시를 잡고 있었어.
택시를 잡으려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방향에 맞는 승객만을 태우려는 택시들 속에서 그 남자 30여분 동안이나 그렇게 잡으려고 손짓만 한채 서 있었어. 처음 10분간, 친구의 친구는(혹은 친구의 친구의.. 그만할게) 그 남자가 안쓰러웠어. 그러나 갈수록 날카로와지는 겨울 바람을 피해 코트를 여미며 그 남자의 뒤에 서서 바라보면서 무척 서글프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아 이 남자랑 결혼하면 앞으로도 이런 서글픈 저녁을 몇 날이고 보내야겠구나'
그 순간, 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계속 메아리치고 있었어. 고개를 아무리 저어도. 그래서 그 여자 그다음 날로 남자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대......라고 내 친구는 말해주었다.
2.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들은 그깟 택시 하나 못 잡았다고, 남자와 헤어지는 야박하고 경솔한 여자라고 그 여자를 탓할른지도 모른다. 또 어떤 마음 따뜻한 사람들은 그렇게 택시를 못 잡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맞으며 거리에서 택시를 잡는 그 남자의 뒷모습에 감동할지도 모른다. 아마, 좀 더 현실적인 이들은 '콜택시' 번호를 알려주려고 할지도 모른다. (요즘은 카카오 택시라는 놀라운 테크가 있군요)
그러나 대부분은, 특히 여성분들은 내가 그러했듯,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남자가 택시를 잡지 못하고, 여자를 뒤에 세워두었던 30분은 그 여자가 평소 그 남자를 보면서, 저 남자에게 인생을 걸어도 좋을까를 망설였던 그 숱한 시간들에 대한 결론을 이제는 내야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거다.
얼마만큼이나 충분한 시간이었나 하면,
하루키는어느 봄날 오후 진구 구장에서 야쿠르트팀 어떤 타자가 친 경쾌한 이루타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소설을 써야겠구나' 결심했다고 하니까, 그 남자가 택시를 잡았던 삼십 분은 하루키 같은 소설가가 삼십명이나 나올 수 있을 만큼이나.
3.
가끔 술에 취해 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려 서 있을 때, 오늘처럼 갑자기 추운날 늦은 퇴근 길, 거리의 청춘들을 볼때, 뜬금없이 이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지금도 거리에서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택시를 잡지 못해, 그들의 여자를 추운 거리에 세워둘까. 그래서 그중의 얼마가, 그 남자와의 이별을 결심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