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경영 교보재
온 가족이 모여서 이번 주에 올라온 흑백요리사 5~7화를 봤다. 지난주 4화까지 볼 때는 재밌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5~7화 단체 미션은 팀워크나 리더십, 경영에 대해서도 교훈이 많아서 보면서 딸에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웃긴 건 하은이가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인데도 저기는 팀장을 잘못 뽑았다느니 저러면 안 된다느니 공감하더라.
팀 대결 미션에서 나온 인사이트 만으로도 한두 시간 특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내용이 많았어서, 스스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까먹기 전에 글로 남겨본다.
MEAT 대결 보면 흑수저 팀은 초반부터 육전을 어떻게 할지, 야채를 어떻게 올리고 어떤 소스를 곁들여서 어떻게 플레이팅 할지 구체적인 모습을 정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팀원 전체가 공유한 상태에서 요리를 시작한다. 반면에 백수저 팀은 '대충 어떻게 하다 보면 되겠지' 하면서 요리를 만들었고, 중간에 계속 방향이 바뀌고 정리가 안된다. 물론 백수저 셰프들은 개개인의 역량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을 정말 망치진 않았다. 다만 그 역량을 가졌으면 결과물이 그보다 훨씬 뛰어났어야 했고, 무엇보다 흑수저에 지면 안 됐다. 마치 1+1 = 3인 팀과 2+2 = 3인 팀의 막상막하 대결을 보는 것 같았다.
두 번째 SEAFOOD 대결에선 반대로 백수저 최현석 셰프가 대결 시작부터 메뉴를 다 정하고 바로 지시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팀원 모두가 최현석 셰프 머릿속에 있던 아웃풋을 명확히 알고 시작한 건지 잘 모르겠다. 사전에 백수저끼리 논의하는 모습이 편집된 걸 수도 있지만, 초반에는 최현석 셰프 혼자만 플레이팅 된 요리의 최종 모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역할을 분담한 느낌이 들어서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최종 결과물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리더 혼자라도 알고 있는 것이 훨씬 낫다. MEAT 백수저 팀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심지어 초등학생 딸도 보다가 답답하게 만들었다.
회사에 적용하자면 조직이 언제까지 어떤 결과물을 내고 싶은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걸 비전이라 부르든지, 사명이라 부르든지 간에 무언가 팀이 같이 공유하는 end image가 필요하다. 단순히 '매출 100억'이 아니라, 몇 년 후에 우리 제품은 어떤 모습인지, 우리의 고객은 누구이고 고객에게 어떤 반응이나 칭찬을 들을 것인지, 시장에서의 지위는 어떤지, 어떤 지역에 진출해 있는지, 우리 회사 직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회사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그려볼수록 좋다. 이 비전이 리더 한 명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여러 팀원들의 토의에서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 짐 콜린스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답한다. 예를 들어,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제헌회의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에 월마트나 포드자동차의 경우 창업자의 비전이 곧 회사의 비전이 되었다.
팀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는 있지만, 리더는 언젠가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결정은 단호하고 명확해야 한다. SEAFOOD 대결에서 불꽃 남자는 요리의 방향을 명확하게 정해주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은 이런데' 하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간다. 방향뿐만 아니라 리조또 조리를 언제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팀원 간 갈등이 생겼을 때도 불꽃 남자는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뿐 리더로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리더의 생각이랑, 조직의 의사결정은 다른 이야기다. 명확한 결정이 없으면 누구나 자기 생각을 떠들 수밖에 없다. 리더가 항상 좋은 결정만을 내릴 수는 없지만, 나쁜 결정보다 더 나쁜 것이 결정을 안 내리는 것이다. 알아서 정리되길 기다리는 리더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 밖에 리드할 수 없다. 백수저 정도의 전문가들을 리드하려면 잘못되면 내가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늦기 전에 결정을 내려줘야 한다.
팀 대결에서 각 팀마다 인상적인 참가자가 있었다. 에드워드 리는 최현석 셰프가 가리비를 3등분 해달라고 했을 때 너무 얇아서 오버쿡 될 것 같다고 했지만, 결국은 리더의 결정을 따랐다. 리더로 세웠으면 리더를 따라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철가방 요리사는 수분이 빠져나온다는 이유로 처음엔 야채를 고추잡채 식으로 다듬는 것을 반대했지만, 본인이 제안한 전분 방식에 대해 리더와 팀원들이 고추잡채가 더 낫겠다고 하자 그 말을 따른다.
리더의 결정이 꼭 옳다는 뜻은 아니다. 가리비가 실제 오버쿡 되어 요리가 망했을 수도 있고, 고추잡채에서 정말 수분이 나와서 육전이 눅눅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리더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면 조직에 갈등만 생길 뿐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는다. 결정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의견을 내되, 리더가 결정했으면 거기에 따라야 한다.
다만 애매한 부분이, 결정이 난 다음에는 아무 의견을 내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최강록 셰프는 매쉬포테이토 대신 감자앙(소스)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나중에 낸다. 결과적으로는 이게 더 좋은 결과를 내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인터넷 댓글을 보면 사람들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 리더인 조은주 셰프는 '둘 다 만들어보고 비교해 보자'라고 하는데, 일종의 A/B 테스트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조직에서는 A/B 테스트가 가능한 상황이 있고, 뭐든 결정하고 몰아붙여야 하는 상황이 있다.
정리하자면, 이미 결정했지만 다른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시점이 있고, 무조건 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 시점이 있다. 그걸 판단하는 것 또한 리더의 몫이다.
주어진 시간이 200분이면, 요리는 100분 이내에 버전 1이 나와야 한다. 팀원이 같이 먹어보고,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지 피드백하고,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 100개를 준비해야 한다. 대결에서 이긴 팀들은 공통적으로 1차 결과물이 빨리 나왔다. 20분이면 충분한 리조또도 플레이팅 20분 전에 한 번에 100인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초반에 1~2인분이라도 한번 만들어서 다른 재료들과 조합해 보고 피드백을 해야 했다. 그럼 누군가는 안단테 식감이 한국 사람(시식단)의 입맛에 어떨지 모르겠다고 적어도 의견 토의는 됐을 것이다.
회사에서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작게, 빠르게 만들어보고, 사람들의 피드백을 들은 뒤 이를 반영하고 보완해야 한다. 첫 직장이 전략 컨설팅이었는데, 15년 전에 배웠지만 아직 기억하는 말이 '중간보고는 프로젝트의 중간까지만 보고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6주 프로젝트면 3주 만에 프로젝트를 끝낸다는 생각으로 한 바퀴를 끝까지 돌려야 하고, 고객사의 의견을 받아 남은 기간 동안 더 정교한 제안을 만들어야 한다. 매장이든, 제품이든, 시스템이든 작은 규모로 먼저 만들어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수정/확산해야 한다. 짐 콜린스는 이를 '총 먼저 쏘고 그다음에 대포 쏘기'라고 표현한다.
SEAFOOD 대결에서 백수저 리더 최현석 셰프는 시작하자마자 재료를 쓸어온다. 그걸 보고 흑수저가 황당해 하지만, 어쨌든 심사위원도 인정했듯이 머리를 잘 쓴 것이지 반칙은 아니었다. 요리 중간에 대파가 모자라자, 이번엔 최현석 셰프가 흑수저 쪽으로 여러 번 넘어가서 대파를 얻어온다. 그걸 보면서 최현석 인성논란이 생기기도 했고, 흑수저 셰프들도 뻔뻔하다 이야기하지만 리더는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조직이 성공하려면 사람도 필요하고 자금도 필요하다. 그걸 확보하는 게 리더의 책임이다. 자원이 모자라면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성과를 낼 수 없다. 조직에서도 사업부 간에 사람과 자금에 대한 경쟁이 늘 있다. 보면서 요리사로서의 실력을 떠나 자기 사업을 해본 사람과 남의 식당에서 요리만 해본 사람의 차이구나 싶었다. 자기 자존심 내세우며 남에게 부탁하고 얻어내는 것을 꺼리는 리더는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