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post mortem - 1
최근에 겪었던 일련의 일들에 대한 개인적인 post mortem이다. 자세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조직 개편을 준비하고 있었고, 원래의 취지와 다르게 오해가 쌓이면서 직원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이 생겼다. 결국 다른 경영자 분들과 논의 끝에 이번 조직 변화를 취소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을 기록해 놓으려 한다.
사실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다. 개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던 시기에 직원들에게 변화의 취지와 의도를 설명했더라면 불만은 있을지 몰라도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개편안이 확정된 상태도 아니었고, 직원들에게 미리 이야기해서 혼란을 만들기보다는 인사팀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상 직원들이 각 지점에 흩어져 있어서, 한 장소에 모으기도 어렵고(현장을 비울 수 없는 조직이다), 메일로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어렵고, 팀장급만 모으기에도 의도가 제대로 전달될지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런 생각은 어차피 다 핑계다. 10년 이상 이 부서에서 일한 직원들도 많이 있었는데, 이 정도의 변화라면 어떻게든 직접 설명했어야 했다. 조직 개편이 취소되고 나서, 70여 명의 팀원들을 전부 면담하기로 했다. 전국을 돌면서 지역마다 3~10명씩 모아서 우선 어떻게 된 일이었는지, 원래 취지가 뭐였는지 설명했고, 의도를 떠나서 소통이 매끄럽지 않아 불안과 오해가 생긴 점을 사과했다. 그리고 조직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설명하고, 1:1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하면서 조직이 개편될 수 있다는 사실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본부가 아니라 다른 부서 통해서 소문으로 들었던 것이 가장 속이 상했다고 한다. 나도 이 부분이 가장 잘못한 점이라 생각하고, 후회하고 있다. 지금 사업부에 온 지 이제 1년 정도 되어가지만, 이 사업부는 원래 인사 통해서 공식적으로만 소통해야 하나보다 기다린 게 또 다른 변명이자 패착이었다.
다행인 점은 그래도 2주간 전국을 돌며 직원들의 속상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린 것 같다. 1:1로 이야기하는 시간에 솔직히 불안했다, 마음에 안 들었다,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설명을 들으면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이해가 됐고,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열심히 해보려 한다, 이렇게 이야기해 준 사람들이 많았다. 또 하나 얻은 것은, 조직 개편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구조적인 문제점 외에도 이 팀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불안요소들을 알게 되었다. 원래도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관할해야 하는 팀 중 하나였지만, 이번 이슈가 생기면서 좀 더 명확하게 팀 전체에 대한 관리 책임이 생겼다. 한 번에 다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들이지만, 앞으로 계속 현장을 돌며 적어도 반기에 한 번씩은 전체 직원들 얼굴 보고 이야기하며 같이 해결해보려 한다.
면담 중에 한 직원이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이번 일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는데, 아까 전체 미팅에서 미안하다, 사과한다 말해줘서 다 풀렸다고. 자기는 회사 다니면서 윗사람이 사과하는걸 처음 들어본 것 같다고 했다.
물론 회사의 다른 리더들이 그동안 한 번도 사과를 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주로 리더들만 모인 자리에서 사과를 하지 않았을까? 잘못 없다고 억지 부리는 것보다는 낫지만, 리더들에게만 사과한다고 그게 현장에 있는 모든 직원들에게 전파가 되지는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사과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직접 말하거나 메일이라도 직접 보내는 것이 좋다.
뉴스에서 보던 사례를 생각해 보자. 잘못한 사람이 언론에서 사과를 하거나, 인스타에 반성문을 올린다. 또는 판사에게만 반성문을 제출한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게는 사과를 하지 않는다. 그럼 왜 당사자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다른 데다 사과를 하냐는 댓글이 달린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영향을 받은 사람에게 직접 사과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제는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 생각하지만, 예전에는 아랫사람에게는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사과하면 약점을 잡힌다고 생각하거나, 속된 말로 가오가 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혹시 잘못한 게 있다면 빨리 사과하는 것이, 문제를 키우지 않고 가장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이다.
솔직하게 소통하라든지, 빨리 사과하라든지, 지금 피드백하는 것들 대부분 몇 년 전에도 생각하고 글로도 썼던 내용인 것 같다. 즉, 몰라서 한 실수가 아니다. 알고 있지만 미리 고민하지 않을 때 잘못된 행동들이 나오게 된다. 리더는 무대에 오르는 배우처럼 계산된 행동을 하고 고민해서 말해야 한다. 남을 속이라는 게 아니라, 행동과 말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계속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랫사람이었을 때는 윗사람이 이렇게 소통했으면 좋겠다, 저렇게 행동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막상 본인이 윗사람이 되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이 딱히 악해서가 아니다. 옛날에 윗사람을 의식했던 것만큼 지금 아랫사람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원래 훈수 둘 때 수가 더 잘 보이듯이, 남에게 조언할 때는 생각하는 것을 자기가 행동할 때는 까먹는다. 이번 일을 겪으며 글 쓰고 강의할 때 양심에 찔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좀 더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볼 질문.
1. 직접 소통하지 않아서 상대방의 오해나 불안을 키운 적이 있는가? 직접 대화하지 않고 다른 사람/다른 부서를 통해서 전달했던 이유는?
2. 본인이 잘못했지만 사과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어떤 마음에서 사과를 미루고 있었나?
3. '내가 윗사람이 되면 이렇게 해야지' 생각했던 것 중에 지금 그렇게 안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