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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사 Feb 19. 2020

02. 피난일기 - 소음과 매연의 도시

그리고 분보남보와 고수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니 기도 안 차 헛웃음이 나왔다. 밖은 오토바이 경적소리로 시끄러웠고, 매연으로 뒤덮여 뿌옇게 흐렸다. 한국의 미세먼지에 지친 분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말리고 싶다. 


웬만하면 장기 여행으로 하노이는 가지 마세요특히나 올드 쿼터에서 한 달 살기!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던 과거의 우리를 찾아가 마구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윤건) "호치민이 하노이보다 조금 더 낫지만 그래도 한국에 비해서 대기질 오염 수치가 높습니다. 링크 참고하세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날 새벽에 도착했으니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1일 차였다. 자, 계산을 해보자. 우리가 총 50일을 머물기로 했는데, 오늘이 아직도 첫날 아침이니... 어라, 이제 50일 남았네? 하하하. (절규.) 


실제로 길거리에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눈, 코, 귀가 물리적으로 아파왔다. 매연은 눈과 코를, 소음은 귀를 무차별 공격하며 아주 잠깐의 외출로도 우리를 매우 지치게 했다.        


빵빵. 빵빵. 빵. 빵빵빵. 빵. 빵빵빵빵. 뛰뛰빵빵.   

  

위 링크의 영상은 베트남이 월드컵 8강에 진출했을 때의 영상이라 좀 과장된 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체감상 정말 매일매일 저렇게 시끄러웠다. 오토바이 경적은 누가 누가 더 크나 싸움이라도 하듯이 경쟁적으로 울려댔는데, 그것은 추월을 할 때나 다른 차에 가까이 갈 때 ‘나 지금 지나갑니다.’의 의미였다. 


“오 마이 아이즈. 오 마이 이얼즈, 오 마이 노우즈. (눈, 코, 귀가 너무너무 아파요.)”     


숙소 앞 풍경. 

믿기 힘들겠지만 자전거가 버스에 치이는 충격적인 광경도 목격했다. 올드 쿼터에는 교통체증이 심해서 차가 쌩쌩 달리기는 힘들다. 그렇게 천천히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달리던 버스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을 살짝 들이받았고, 그 사람은 자전거와 함께 힘없이 픽, 하고 길바닥으로 쓰러졌다.      


"오빠 어떡해. 사람이 버스에 치였어."

"어라, 저 사람 그냥 가는데?"


세상에! 버스 기사는 차 밖으로 아예 나와 보지도 않았고, 교통사고의 피해자는 옷을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버스에 치이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듯. 아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마, 정신 바짝 차리라. 까딱하면 골로 간다.” 


그 순간 남편이 나의 손을 꽉 잡으며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얼마나 든든하던지. 분명 자신도 겁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하노이에 있을 때는 투닥투닥하다가도 길을 건널 땐 항상 손을 잡고 다녔던 것 같다. 나중에 결혼 생활에 위기의 순간이 온다면 다시 하노이를 찾으리라. 죽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똘똘 뭉치고 손을 잡고 다녀야 하니 말이다.    


다시 올드 쿼터 이야기로 돌아가자.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바로 음식! 하노이의 구시가지에는 저렴하고 맛있는 먹거리가 많았다. 로컬 대상의 숨은 맛집에서는 한 끼 가격이 1500원 ~2000원 꼴이었으니 식비가 매우 저렴했다. 우리 부부가 부산에 살며 즐겨먹는 돼지 국밥이 한 그릇에 8천 원 정도이니, 약 1/4 정도의 가격이었다. 


흐흐, 그럼 하노이의 음식을 정복하러 떠나 볼까나?  렛츠 고! 


우리는 무시무시한 오토바이 군단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 15분가량을 걸었다. 다행히도 어젯밤 지저분해 보이던 길도 아침이 되니 훨씬 더 깨끗한 모습이었다. 따뜻한 태양 아래에서 본 하노이는 반짝거리며 언뜻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조금씩 첫날밤의 충격과 공포가 조금씩 사그라들 때 즈음, 우리는 꽤 유명한 '분보남보'라는 소고기 국숫집에 들어섰다.  


윤건) “분보남보는 남부 지방의 소고기 국수라는 뜻입니다. ‘분‘이 국수, ’보‘가 소고기죠. ’남‘은 뭐 안 찾아봤지만 남부를 뜻할 것 같네요. 굳이 북부에 와서 왜 남부의 소고기 국수를 첫 끼로 먹었는지 모르지만 꽤 맛있었습니다.”     
분보남보, 두 번째 갔을 때 찍은 사진. 

우리의 첫 끼는 정말로 꽤나 맛이 있었다. 시킨 두 개의 메뉴 중 먼저 나온 남부의 소고기 비빔국수를 한 젓가락 수북이 떠서 우물우물 생각 없이 씹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렇게 맛있을 수가! 너무나 맛이 있어서 나는 이마를, 남편은 무릎을 탁 쳤다.


“오 마이 갓. 코리엔더(고수) 만세.”     


소쿠리에 가득 담겨 나온 향채 더미에는 고수, 차조기 같은 것들이 종류별로 수북이 쌓여있었고, 이파리를 똑똑 따서 국수에 넣고 비벼 먹으니 향긋함과 짭짤 달큰한 맛이 한데 어우러지며 천상의 하모니를 선보였다. 이어서 나온 가함투옥박(Ga Ham Thuoc Bac)이란 한약 맛이 나는 삼계탕도 먹을 만했다.      


하지만 행복에 젖은 우리와는 달리 옆 테이블의 한국 가족은 입에 맞지 않는 듯 보였다. 아래와 같은 대화가 들려왔다. (참고로 분보남보에는 한국인 손님이 굉장히 많다.)


[별론데?]

[이게 뭔 맛이야?]


물론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도 향채를 빼고 드셨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향채가 국수와 어울려 입에서 폭발하는 느낌이 드는데, 그걸 빼면 그냥 국수에다가 채소 조금에, 고기와 느억맘(젓갈)을 비벼 먹는 밍밍한 맛일 터이기 때문이다. 


“고수가 주는 행복은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영어로는 코리앤더(coriander), 스페인어로는 실란트로(cilantro), 중국에서는 샹차이, 태국에서는 팍치, 그리고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자우 무이(Rau mui)로 불리는데, 마늘이나 후추처럼 세균을 죽이는 항균 역할을 하니 맛도 있고 일석이조입니다.”      


어이쿠, 고수 전문가 납셨네. 사실 남편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고수를 먹지 못했다. 결혼 후 몇 년 후에야 부산 서면의 라라관이라는 마라탕 전문점에서 고수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베트남에 오기 전에 고수를 먹게 되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우리의 주식이었던 분짜.

참고로 같은 식당에 두 번째로 갔을 땐 향채를 주지 않았다. 달라고 했더니 퉁명스럽게 없다고 했다. 약간 기분이 상하기도 했고, 관광객 대상 식당이라 비교적 높은 가격(3천 원 정도)이었기 때문에 세 번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더 맛있는 분짜 맛집을 발견했다! 길을 걷다가 워낙 냄새가 좋아서 홀린 듯이 들어갔는데 세상에, 그 맛이 끝내줬다. 가격도 더 저렴하고, 심지어 향채도 그득하게 한 소쿠리를 준다. 다음 회에 정보를 풀도록 하겠으니 관광객이 붐비기 전에 꼭 가보시길.       


밥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역시나 교통 무법천지였다. 하노이에서 지냈던 기간 동안 가장 많은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나 길 건너기. 그래서 윤건 선생의 길 건너기 노하우를 전수해 드리며 마무리 짓고자 한다.      


남편은 기특하게도 미리 한국에서부터 인터넷을 보고 하노이에서 길 건너는 방법을 터득해 왔는데, 나는 처음 일주일 정도는 신호등이 없는 길을 아예 혼자 건너지 못해 편의점에 우유 같은 걸 사러 갈 때도 항상 남편을 끌고 다녔다. 그럼 길 건너기의 달인의 꿀팁을 들어보자.        


윤건) “차가 오는 방향을 보고 천천히 걸어가면 오토바이 혹은 차가 알아서 피해 갑니다. 절대 뛰거나, 갑자기 멈추면 안 됩니다. 그리고 뒷걸음질 치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어요. 중앙선까지 가서는 차가 반대로 오기 때문에 꼭 반대 방향을 보고 걸어가세요.”      


그럼 모쪼록 버스에 치이지 않고 무사히 길 건너시길 기원하며...      


일기 끝.      


하노이 여행의 장단점. 

1) (-) 단점: 환경(소음, 매연, 교통혼잡)

2) (+) 장점: 먹거리(맛도 있고 저렴하지만 청결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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