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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사 Apr 17. 2024

내가... ADHD라니!!

여성의 ADHD, 조용한 ADHD, 고기능 ADHD


정말 내가.... "그" ADHD라고? 퍼뜩 머리속을 시쳐지나가는 이미지는 이랬다.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꽥꽥 소리를 지르며 마치 한마리의 익룡처럼 공공장소를 휘젓고 다니는 "남자 아이". 엄마도 선생도 통제 불가능한, "학습이 힘들고", 집중이 어려운 비글들. 적절한 훈육의 부재로 그저 버릇이 없거나, 행동의 교정이 필요한 문제아. 

우선 위 묘사에 대하여 모든 ADHD인과 그 가족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가 얼마나 이 질병에 대해 무지했고 편협했다는지 최대한 솔직하게 고해성사한 것이니 다소 불편하더라고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이기적이지만 평생 나랑은 상관없을 얘기라고 생각했다. 지금 내 행태를 보면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조용한 모범생에, 착한 딸로 자랐으며, 학습 성과도 높았고, 과제를 수행할 때 집중과 몰입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매우 몰입도가 높은 축에 속했다. 다들 날보고 독한년*이라 부를 정도였다. 

(독한년 에피소드 1)
30시간 동안 자지도 않고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먹으며 어마무시한 양의 번역 납기를 끝낸 직후 바로 피씨방으로 달려가 몇시간 동안 게임을 했다.
(독한년 에프소드 2)
초등학교 6학년 때 다이어트 책을 정독한 뒤 스스로 절식과 운동으로 15키로를 감량했다
.

자, 이제 혹시 나도 ADHD는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면, 혹은 주변에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디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라 치부하며 책을 덮지말고 계속해서 읽어보시길 권한다.      

물론 모두가 질병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인생은 ADHD의 진단 후 180도 바뀌었다. 과거 나는 혼란스럽고 불행했으며, 공황 발작이 종종 일어났다. 하지만 그렇게 허우적 되었던 과거가 억울하고 스스로에게 미안할 정도로 현재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스스로 조용한 ADHD의 유무를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듯 하다. ADHD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경계에 있거나, 후천적인 이유로 전두엽의 기능이 많이 저하된 사람들까지. 

만약 나와 같거나 비슷하다면 분명 그들은 이유없이 늘 우울하고, 만사가 귀찮아서 때로는 죽고 싶기도 하고, 종종 스스로의 멍청함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며 살아나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이 글을 공유하고자 한다.   

<나의
 조용한 ADHD 서바이벌 가이드> 렛츠고!    


그래서 조용한 ADHD가 도대체 뭔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좀 지겹더라도 먼저 이 ADHD란 놈에 대해서 살펴보자.

ADHD는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약자로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름에서도 나타나듯 크게 AD(주의력 결핍)와 HD(과잉 행동)로 이렇게 두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가 과거 알던 전형적인 ADHD는 과잉 행동의 증상이 높아서 진단이 매우 쉽게 되었으나, 조용한 ADHD는 과잉 행동보다는 주의력 결핍 양상이 도드라지며, 따라서 주변인들의 세심한 관찰이 없으면 어릴 때부터 진단이 어렵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여성들이 조용한 ADHD가 많으며, 따라서 과거 이 질병은 남자 아이들에게 주로 나타난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서른이 넘어서야 진단을 받는 성인 ADHD 환자들이 많은 것이다. 

참고로 ADHD는 뇌의 구조적이고 화학적인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후천적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도파민, 노프에피네프린과 같은 화학 물질이 적게 분비되는 질환이다. 이러니 우울할 수 밖에!!  

찬찬히 38년의 인생을 돌이켜보니 의심할만한 증상들이 많았다. 다음은 내가 정신과 상담을 가기 전에 정리한 노트이다. 


- 공부는 잘 했지만 허당이다.

- 물건을 잘 잃어버림 

- 시간 개념이 없음

- 우울증, 공황장애  

- 허둥지둥하고 부산스러움 

- 얘기했던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남 

- 중독 성향이 있음  (일, 게임, 만화 등) 


뭐 이정도야 현대인들은 누구나 있는 증상이라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 심각성이 남달랐다.  


소소한 것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어릴 적 매년 개교기념일에 혼자 학교에 갔다. 자꾸 숙제와 준비물을 까먹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기차표, 호텔 등 예약을 잘못하는 경우가 흔했다. 한번은 KTX 표가 아니라 새마을호를 끊어서 황당했던 적이 한둘이 아니다. 시간 개념이 없어서 약속 장소에 과하게 일찍 도착하거나 늘 조금씩 늦는다. 그래도 이건 귀여운 수준 아닌가? 


하지만 이 모든 출산 후 약 10배정도 심해졌다. 하루는 매주 진행되는 토요일 수업을 그냥 까맣게 잊고 가족들과 오키나와로 해외여행을 간 적도 있다.  


따르릉. 따르릉.


"어, 도현아. 왜 전화했어?"

"선생님, 오늘 무슨 일 있으세요?" 
"어? 아무 일 없는데?" 
"... 쌤. 오늘 토요일인데요?"
"앗, 토요일이구나. 근데? 쌤 보고싶어? ㅋㅋㅋㅋ"
"저... 오늘 수업 안해요?"

아뿔사. 아니 한 두번도 아니고, 매주 있는 수업을 어찌 까먹을 수 있는 걸까. 나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났다. 난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아닌데, 그리고 너무 사랑하고 아끼는 학생인데 이렇게까지 잊을 수 있다는게 공포스러웠다. 


정말, 이렇게 인간답게 100세까지 정상적으로 기능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치매가 오지 않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러한 심각한 에피소드들이 연달아 빵빵 터지고 나서 ADHD를 진단받았다. 그리고 나는 의외로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 내 뇌가 문제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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