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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흐 함 Jan 03. 2024

남의 세상이 아니다. 너와 나의 세상이다

<절반세대가 온다> 서평

사회도 환경도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절반세대가 온다>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적게 되었습니다.


나는 현재 3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자리에 서 있는 한국에 살고 있는 결혼 3년 차 일하는 여성이다. 이 말에는 많은 것을 내포한다.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보면, 아이를 가질 시기라는 것. 주변에 이미 유치원생, 초등학생 나이 정도의 아이를 둔 또래 친구들이 많다는 것. 30대 중반이면 이미 노산이며, 아이를 가질 것이면 빨리 가지라는 말을 들을 나이라는 것.



30대 중후반 기혼 여자의 소망과 현실

나는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하였고, 남편은 아이를 가질 것이면  두 명 이상이 좋겠다고 하였다. 친구의 아이 둘이 같이 노는 것을 보고, 내가 남동생과 크고 작은 것을 논의하는 모습을 보니, 형제 없이 아이 혼자 이 세상에서 자라는 것이 가혹해 보이기도 한다. 역시 아이는 둘 이상이 좋겠다는 남편의 생각에 공감했다.



이런 소망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언제 아이를 가져서 키우냐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특히 손이 많이 가고 이때 육아 휴직을 하거나 일을 그만둔다는 말을 주변에서 전해 듣는다. 시시 때때로 아이에게 전화를 받고, 사무실을 뛰어 나가는 회사 동료들을 본다. 나와 남편 둘 다 아직은 사회에서 자리 잡는 중이다. 현실적으로 아이를 가지고 키우는 환경을 준비하는 것이 앞으로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라 예상한다. 그때 되면 나의 몸은 아이 하나라도 가질 수 있을까. 아이 둘은 커녕 하나라도 낳아서 기르겠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도저히 현실적이지 않은 듯하다.



청년과 여성의 목소리

온갖 매체에 청년과 여성의 목소리는 부재한 채 인구문제를 다루며 출산율에 대해 데이터로만 ‘요새 그렇다더라’라는 목소리만 있는 것에 화가 났다. 여성의 목소리는 어디 있고, 청년의 목소리는 어디 있는 것이지?  도대체 왜, 어떤 의사 결정을 거쳤길래 비슷한 정책과 논의만 반복하여 내놓는 것인가? 아인슈타인의 남긴 말마따나, 똑같은 정책을 내면서 어떻게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참 이상하다.


미친 짓이란, 매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Insanity: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 알버트 아인슈타인


어차피 다가올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당사자는 제쳐두고 비교적 적은 영향을 받을 기득권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정치판은 미래 세대에 필요한 진짜 변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반짝하고 당장의 표을 얻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답답했다. 청년의 목소리에 주목했다는 <절반 세대가 온다> 홍보에 ‘드디어!’라고 속으로 외쳤다. “제발 좀 변하자.”



책 <절반세대가 온다>의 프롤로그는 청년의 목소리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대한민국 저출생에 따른 인구 위기가 해결되지 못하는 근본원인이 ‘화자’의 오류에 있다는 것을 개 달았다. 수백조 원을 쏟아붓고도 백약이 무효한 저출생 대책을 만든 건 기성세대였다. 문제 진단부터 대안까지 그들끼리, 그들만의 리그에서 정해지고 있었다. p9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책에서 다루는 논의는 어느 것도 몰랐던 의외의 사회문제가 아니다, 한국에 살거나 한국사람이라면 모두 매일 매체를 통해 접해온 사회 이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얽혀 출산율 저하와 인구 위기라는 결과를 낳았다. 출산율 저하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자체가 아니다. 너무 당연하게도 그 이면의 근본적인 원인들이 보지 않고서는 상황이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견해로 이 책은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다음과 같은 주제에 주목한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돌봄 협력 대신 갈등이 심화되는 남녀 갈등,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불평등  

    경쟁사회로 인해 행복하지 않은 성장 과정으로 인하여 사라지는 희망  

    아이 낳고 기를 기회를 더 좁게 만드는 정상가족 기반의 기대와 제도  

그리고, 인구 문제에 의해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대응하는 급하게 밀려드는 이민에 대해 다룬다.

추가로, 드문드문 민주주의 운영 방식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현재 한국 사회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낳지 않을까 심혈을 기울여 일부러 그러한 환경만 쥐어짜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한 사람이 자라면서 끝나지 않는 무한 경쟁으로 인해 희망이 사라지게 만들고, 정상가족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남녀에게 각각 최대한 많은 부담을 지운다.



남녀갈등, 노사 갈등, 정상가족(다양성), 이민자문제 모두 사적인 자리는 고사하고 매체에서도 정치권에서도 혐오로 번질 수 있다며, 대화 테이블에 올리기에 꺼리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라는 것이다. 예민하기에 혐오로 번지거나, 예민하기에 등한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는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곪고 확장한다. 예민한 주제를 마주 하는 방법은 없을까?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활을 함께하는 동반자에게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생활동반자법‘을 최초로 발의했다. 2014년 전선미 새정치 민주연합의원이 초안을 마련하였지만, 당시 종교계와 보수 성향 시민 단체의 반대에 막혀 발의조차 못했다. 2023년이 되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가족구성권 3 법(생활동반자법, 혼인평등법, 비혼출산지원법)을 발의하였다…(중략)… 총선을 준비에 돌입하게 되면 표 계산에 들어간 정치권이 논란이 될 만한 법안을 논의할지 장담할 수 없는 처지이다. P153



이쯤 되면 현재 한국 민주주의 자체에 의문이 생긴다.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보다 표 계산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면, 표의 득실을 위해서는 혐오 정치에 편승해야만 한다면, 필요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 정치가의 주요 업무가 표의 득실을 계산하기 위한 것이 아닌 정말 시민들을 대표하여 시민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하는 환경이 부재한다는 말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원하지 않아도 매번의 선거는, 서로를 헐뜯고 특정층의 분노 심리를 자극하는 극단적인 포퓰리즘의 줄다리기가 펼쳐질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시민들의 시야를 가리는 정당들의 현수막 싸움 자체가 이러한 현상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다.



많은 전문가들이 다극화를 극복할 대안으로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수용할 것을 제안한다. 시민이 직접 정책을 제시하고 참여하면 대의제의 한계인 과소, 과다 대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략)…
여러 나라가 2000년대 들어 대의 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추첨과 숙의를 결합한 시민의회를 시도하고 있다 -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p87



이기는 자가 있어야 하는 게임에서는 지는 자도 반드시 존재한다는 말이다. 누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닌 모두가 혜택 받을 수 있는 판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변한 나라, 변하지 않은 전제

책은 사이즈에 맞지 않는 기대를 가진채 운영되는 나라를 먼저 보여준다. 1970년도에 비해 출산율이 20년 만에 절반이 되었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1970년도 이전에 태어난 기성세대의 접근법과 사고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80-100만 명씩 태어난 기성세대가 만든 구조/제도/정책이 작동하는 상황에서 40만 명이 노동시장에 들어오고 결혼을 하게 된다. - 조영태 서울대 인구 정책 연구센터장 p40



정책은 더 많이, 더 크게, 쓰는 것은 알아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에 대응하여 지자체도 중앙정부도 부랴부랴 더 많은, 더 과감한 지원금을 내건다.’, 2024년에도 저출산에 대응하는 더 많은 돈을 내거는, 더 오랜 기간을 쉴 수 있는 많은 정책들을 발표했다. 어떤 지자체는 아이를 낳으면 몇만 원을 준다더라.‘라는 기사는 최근 쉽게 볼 수 있고, 최근 억 단위까지 내거는 지자체도 나타났다. 반면, 결혼한 지 n연차된 여성 직장인인 지인으로부터 면접 때 “애 낳을 계획 이신가요?”라고 물었다는 회사에 대해 들었다. 30대 중반에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나는, 면접자가 같은 질문을 내게 묻는다면 솔직하게 아이를 낳고 싶다고 대답해야 할지, 혹은 아이 낳을 생각 없다고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였다. 내 주변에서도 아이를 가진 후 커리어를 멈추거나 아이가 좀 큰 후에 본인 사업하는 여자 선배나 또래들은 점점 늘어난다. 혹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거나.



제도만 보면 우리나라 육아지원책은 다른 나라에 비해 뒤쳐진다고 보기 어렵다  - 강민정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p167
‘제도가 있으니 쓰라’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쓰는 사례가 주변에서 계속 나와야 ‘쓰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회사 리더급들이 솔선수범하는 것이라고 그는 조언했다. p172



정책도 만들고 나서 지속적으로 돌보고 키워야 필요하지 않을까. 친구가 독일에서 회사 채용 면접을 보았는데,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서는 회사에 좋은 출산지원 정책들이 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내가 들은 말도 아닌데, 그 말에 괜히 고마워서 울컥하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도 많은 직원들에게 아직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많았다. 육아를 가장 우선시하고 서로 도와주는 분위기였기에, 성별 관계없이 동료 모두, 아이를 픽업하는 시간은 미리 스케줄에 표시해 두었고, 아이가 아파서 미팅에 못 오는 것에 대해서는 동료들끼리 서로 이해해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책에서도 회사가 달가워하지 않을까 임신 사실을 알리기를 고민하는 직원들에게 임신 축하 선물 제도와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쓰는 육아 지원책과 함께 도입함으로써, 만족도도 퇴사율도 줄여 시너지를 냈다는 사례나 모두가 쓸 수 있는 복지 제도로 서로 돕는 분위기를 조성한 국내의 중견 회사 사례를 소개한다.



낳은 이후에도 필요한 지속 가능할 환경

우리 부부에게 맞벌이는 당연하고 필수적이다. 연금에 기댈 수 없는 우리에게 기댈 수 있는 것은 가능하면 길게 지속할 수 있는 커리어이다. 둘 다 중소기업에 다녔던 우리 부부는 한 명의 벌이로는 부족하고 누구 한 명에게 커리어를 놓으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아이도 우리의 커리어에도 안정적 직장이 아이를 갖기 전제 조건이다.


육아휴직한 여성의 62.4%, 남성의 71%는 300인 이상의 대기업 소속인 반면, 50인 미만의 사업장 직원은 남성 13.7%, 여성 22.9에 그쳤다. P167
경제적 불평등 심화도 주요한 사회적 요인이 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분배 현황과 정책적 시사점(2001)’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 불평등 정도(지니계수)와 합계출산율은 역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즉, 경제적인 불평등이 누적될수록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추정할 수 있다…(중략)… 특히 남성은 소득 수준별로 혼인 가능성에 큰 차이가 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p129



몇 년 전, 친한 친구의 둘째 임신 소식에 친구의 가족들조차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는 얘기를 건너 들었다. 친구 소식에 나도 솔직히 마냥 축하해 줄 수가 없었다.



바뀔 수 있다는 믿음과 관심 그리고 변화

현재 살기 좋은 나라로, 전 세계의 부러움을 한껏 받는 어느 북유럽에 방문하였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거리에 아이만 달랑 있는 유모차들이 카페 밖에 서 있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왜 그러냐 했더니, 그 나라에 몇 년째 거주하고 있던 친구가 이 나라 사람들은 아이를 도시 전체가 같이 키운다고 하더라. 지나가는 사람도 아이를 돌보고 잊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북유럽 미담은 귀에 딱지가 날 정도다. “그건 북유럽이니까 가능하지." 그리고는 덧붙인다. “한국은 글렀어.” 동시에 한국이 독립 이후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 대국이 된 모습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엉망진창이 된 미래의 영국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그린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 Years and Years>에 등장하는, 대가족을 책임지고 품어야 했던 할머니는 정치도 금융도, 경제도 사회도 엉망이 돼버린 상황에 대해 가족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다른 나라 탓, 경제 탓, 등등 서로의 탓으로 비난만 하다가, 이 작은 거 하나쯤이야라고 하다가, 나 쯤이야라고 무관심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바뀌기 위해서는 관심이 필요하고, 배워야 하고, 논의해야 하고, 마주해야 한다.



이건 너희 모두의 잘못이야.
Its all your fault.
이게 우리가 만든 세상인 거야.
This is the World we Bu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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