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성인의 삶
'사상초유'라는 단어가 요즘 무색하다. 차라리 영화속 이야기라면 오히려 더 믿어질 것 같다. 한 주, 두 주 개학이 연기될 때는 뭔가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가도 이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뭔가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러다 연기가 반복되면서 불안감이 무감각함으로, 무뎌짐이 게으름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일상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며 지내는 요즘, 조카 두명을 키우며 하루하루 뭘 할까, 뭘 먹을까 고민하는 형네집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궁금했다. 올해 학교를 옮겨 전입학교 학생들은 아직 보지도 못한 상태라 몇일에 한번씩 각 부모님과 통화하고 안부를 물으며 빠른 시일내의 기약을 하는 것으로 마친다. 지난 학교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역시나, 예상했던데로 별생각없이 기나긴 방학을 무력하게(?) 즐기고 있었다. 게임하고, 놀러나가고, 핸드폰 게임 하고... 선생님 안보고 싶냐는 말에 '네'라는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무심한 한마디를 하며 통화를 마치고 문득 올해 성인이 된 지난 제자들이 떠올랐다. 나름 애정을 많이 쏟으며 지금까지 부모님과도 관계를 유지하던 친구들.
'얘네들 어떻게 지낼까? 아니, 이제 앞으로 어떻게 지내지?'
성인이 되면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일자리를 구하거나 다른 공부를 하거나 나름의 계획으로 앞으로의 삶을 준비한다. 불안하고 책임이 더해지는 삶의 시작이다. 하지만 일반 학생들과는 다르게 장애학생 특히, 지적장애 혹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학생의 경우는 그 불안한 삶 마저 쉽게 누릴 수 없다. 일반 성인과는 다른 차원의 꿈이 있고, 다른 삶이, 다른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닐텐데 성인이 되면 그런 욕구들은 거세당하고 만다. 마치, 평범한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거나 재벌가와 결혼해 부유한 삶을 누리며 사는 그런 판타지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것처럼.
'어머니, 몇년 후면 00이 성인이에요. 혼자서도 지낼 수 있는 연습이 많이 필요해요'
이 얘기를 부모님에게 항상 가장 많이 해왔던 것 같다. 학교 교육과정도 최대한 '자립생활'에 초점을 맞춰 계획해왔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면 교사들은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학교에 있을 때 그 친구들은 내가 중학생 때 생각했던 것들, 또는 현재 중학생들이 느끼는 여느 감정들과 다르지 않았다. 또래들이 재밌어하는 문화에 똑같이 반응하고, 그 문화를 항유하고 싶어하고 함께 즐기고 싶어 했다. 게임에 빠지고, 여학생들과 몇마디라도 나눌 때면 부끄러워 광대가 뽈록 튀어나오거나,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는 실컷 부르는며 맛있는 음식을 사먹고 싶어 용돈을 모으기도 하고... 하지만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들이 얼마나 이런 삶을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을까.
일상이 잠시 멈춰, 고요하고 지루하며 반복되고 기약이 없는 잠깐의 요즘을 보내면서 성인기가 시작된 우리 아이들, 이미 시작되어 잠깐이 아닌 일생을 기약이 없는 삶으로 채워야 할지도 모르는 그들이 생각이나 더 또렷이 지금 내가 가르쳐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