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앳더리버 Jun 06. 2020

난 못키울 것 같아요..

특수교사의 인권 감수성

1.

  얼마전 일이다. 온라인 개학이후 학교에 급식이 제공되지 않아 도시락을 싸오거나 음식을 주문해 먹는 기간이 있었다. 특수학급에서 삼삼오오 선생님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차 한잔하면서 육아를 이제 막 하시는 선생님과 어느정도 아이를 키워 베테랑 엄마에 속하는 선생님들 등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육아 이야기가 나오고 아직 미혼인 동료 특수선생님에게 아줌마(?) 선생님들의 임신과 육아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이 이어졌다. 난 멀뚱멀뚱 듣고만 있었는데 어느새 산전검사이야기가 나오더니 이런 말들이 오갔다.


"그냥 일반 아이도 키우기 힘든 세상인데 장애아이는 ..아휴 얼마나 힘들까"
"저는 장애아이는 못키울거 같아요. 정말."
"그렇지 그렇지 선생님이 특수교사니깐 더 잘 아시겠네"
"그래, 그러니깐 몸 건강할 때 애 낳고, 산전검사도 빠짐없이 다 받고 해야되"


 자연스럽게 대화를 마쳤고, 나도 우리 학급으로 돌아왔다. 너무 찜찜했다. 곱씹어 보면 볼 수록 이건 아닌데, 아닌 것 같은 대화인데 너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따뜻한(?) 조언으로 마무리되 아무말도 못하고 돌아왔다.


2.

  작년 함께 근무했던 동료 특수교사에게 전화가 왔다. 작년 맡았던 특수학급 학생이 핸드폰 게임 결제로

1년동안 천만원 이상을 결제했다는 이야기였다. 올해 어머니께서 너무 이상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동료특수교사가 결제 내역을 보니 그랬다는 것이었다. 기가막힌 충격에 우선 구제 방법을 찾아보고, 동료특수교사와 해결책을 논의했다.

  그 학생의 부모님은 두분 모두 지적장애를 갖고 있다. 학생은 그냥 하고 싶은 게임을 매일 결제했고, 카드값이 나오거나 해도 부모님이 인지를 못했던 것이다. 참, 어찌해야할꼬..  앞으로도 걱정이다. 이 가정을 위해 매년 부모지원이나 교육, 실질적인 복지 지원을 시도하고 있지만 부모의 반대나 담당자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제대로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소에도 부모님께서 아이의 투정이나 문제행동을 적절히 컨트롤하지 못해 이 동네에서는 이 가정을 모르는 분들이 없을 정도이다. 몇년 전 가정방문을 했을 때 아파트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들께서 나를 붙잡고, 이 아이때문에, 부모때문에 내가 넘어지고 다쳐 입원까지 했다는 푸념을 듣기도 했었다. 2년동안 그 가정을 봐왔지만, 참 쉽지 않았다. 여러 전문가들이 힘을 모았지만 제대로된 효과를 보지 못했던 안타까운 가정이었다.


3.

  얼마전 3월과 지난주에 비슷한 기사가 났다. 발달장애아이와 엄마가 차에서 동반 자살했다는 기사다. 시점과 장소는 달랐지만, 주도한 인물이 보호자인 엄마이고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었다는 점은 동일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너무 안타깝다. 이러면 안되지만 엄마의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된다'
'동반 자살은 아동학대이자 살인 행위다. 키우기 어려운 장애아이라고 살인이 용납될 순 없다'


  기사 댓글은 위 두가지 정도의 내용으로 갈리는 듯 했다. 극명하게 갈리는 의견.


4.  

  나같은 특수교사들 또는 장애인을 근거리에서 만나는 장애관련 종사자들의 경우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장애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기회가 많다. 장애인 가족 당사자들보다야 더 많이 경험하겠냐마는 어설프게 나마 그들의 삶을 알고 있다. 치열한 삶을 매일 고군분투하며 살아내고 있는 가정들도 있고, 한편으론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평온해 보이는 삶을 사는 가정들도 있다.

  얼마나 치열할까. 평범한 가정에 별탈 없이 정규 학교과정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해 취업을 해온 내 삶도 돌아보면 꽤나 많은 굴곡과 눈물로 점철된 삶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애'라는 낙인으로 살아가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삶은 섣부르게 판단할 수 조차 없을 것이다.

  이번주만해도, 코로나19 상황으로 아이 건강이 염려되 이번학기 학교를 보내지 않겠다고 요청하신 부모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장애아이 키우는게 너무 힘들어요 선생님. 정말 많은 부모님들이 죽고싶은 심정으로 살아가지만 저는 신앙의 힘으로 버티고 있어요"


라며, 쓴 웃음을 보이신 어떤 부모님이 있었다. 자주 대화를 나눈 일도 없었던 신입생 부모님이지만, 잘 모르는 특수교사에게 덤덤히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부모님의 솔직한 속마음이 느껴졌다.


5.

  특수교사로써 장애학생 교육을 하는 것과 특수교사가 장애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특수교사와 장애아이 부모를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특수교사가 부모가 되어 장애아이를 낳고 기를 것인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고, 각자 판단할 부분이지 꼭 이래야 한다는 원칙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장애 또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 말 안에 우리의 정체성도 함께 녹아져 드러나게 된다. 특수교사인 이상 특수교사 정체성을 배제하고 장애, 장애인에 대한 언급은 있을 수 없다.

  얼마전 총선에서도 인천 어느 지역의 후보가 해당 당 대표가 그 후보 사무실을 방문하니 "여기 촌구석까지 오시고 참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했다는 기사가 나가고, 그 후보는 뭇매를 맞고 낙선했다. 지역 대표인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이 해당 지역을 '촌구석'이라고 표현한 것은 해당 지역을 '촌구석'이라 생각해왔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촌구석에 사는 촌놈들'이라고 생각해왔구나 라고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사고 과정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특수교사들의 '장애'에 대한 말들은 장애에 대한 특수교사의 사고와 철학이 담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특수교사들이여 모두 말조심하자.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돌아보면 대학 내 특수교육 전공 커리큘럼을 보면 장애인 인권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부족한 인권 감수성으로 장애학생을 대하는 우리 특수교사들. 매일, 매달 어떤 수업을 해야 좋은 수업을 할까 고민하는 우리들이지만 어쩌면 더 깊숙하고, 원론적인 고민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마음이 불편한 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