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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앳더리버 Dec 16. 2020

격리통지서

누구도 격리를 원하진 않는다

 지난 토요일 오후 여느 주말처럼 잠시 외출 뒤 집에서 저녁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강남을 갔다와서 그런지 저녁은 차분히 먹고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때, 학교 교직원 톡방에 반갑지 않은 톡이 울렸다. 주말, 직장에서 오는 연락을 누구든 반가워하지 않듯 나도 톡이 왔다는 확인만 한채 내용을 확인하진 않았다. 저녁시간이 되고, 저녁을 먹고 있는데 톡이 왔다는 진동이 계속 울렸고, '뭐길래 이렇게 주말 저녁에 연락을 하실까..'하며 무심히 톡을 확인했다. 내용인 즉슨,


<수능감독을 다녀온 선생님들께 알려드립니다. 감독을 한 당일, 감독관 중 한 선생님이 수능 다음날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습니다. 현재 역학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감독을 다녀오신 본교 선생님들은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가급적 외출을 삼가하여 주시기바랍니다>


OMG!!! 순간, 몇개의 파노라마가 스쳐갔다. 수능감독 후 감독비를 받아 100원짜리 하나까지 확인하며 흐뭇해하던 그날, 감독 다음날 재택근무 후 서울 본가를 방문해 부모님과 점심을 먹었던 기억, 그리고 강남 한복판을 걸어다녔던 오늘 낮.


감독관 대기실 특성상 오랜 시간 같은 장소에 머무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밀접접촉자가 되는 것은 확실했다. 역시나 토요일 밤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라는 문자가 왔고, 일요일 오전 검사를 받았다. 다음날 다행히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밀접접촉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2주간 자가격리가 불가피하단다. 올해 뉴스에서만 보던 '자가격리자'가 이제 본인이 대상이됐다. 코로나19가 이제 내 삶까지 영향을 미치다니.. 본격적인 격리생활의 서막이었다.


자가격리..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격리통지서가 오고, 곧이어 격리물품이 왔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컵라면 두박스, 즉석밥.. 엄청많이, 각종 반찬, 휴지, 물.. 그리고 몽쉘통통까지! 당까지 신경써주시는 디테일함에 감동할 즈음..

'이거 뭐.. 진짜 한발짝도 나가지 말라는 무언의 시장님의 압박?'이 느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루 3번 내 몸상태를 '자가격리자' 전용 어플에 보고해야했고, 30분이라도 보고가 늦으면 이내 담당공무원의 전화가 왔다. 심지어 몇일에 한번 꼴로 내가 실제 집에 있는지 확인하러 집 앞 문까지와 전화를 걸어 여부를 확인했다.

(이거 다 인력인데, 공무원들이 많이 고생하시구나.. 새삼 생각이 들었다)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며 나름 여유있게 2주간을 보내겠구나(동료들에 미안하지만) 하며 행복감(?)을 감추는 것도 잠시. 사흘, 나흘이 되니 '좀이 쑤신다?'는 말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몸은 편한데 뭔가 답답하고, 평소 많이 많이 하고 싶었던 책읽기, 영화보기, 낮잠자기도 이내 지루해졌다. 좀처럼 집중도 안되고 전체적으로 루즈해지며 의욕이 떨어졌다. 재택근무라 하루 1-2시간 정도 하던 특수학급 원격수업을 zoom으로 똑같이 집에서 진행하는데도 학교에서 만큼의 텐션이 올라오질 않아 화면으로 보는 내 모습이 누가봐도 하기싫은 표정이었고, 당연히 아이들도 즐겁게 참여하지 못하는 듯 했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자유를 만끽해야하는 존재구나.. 새삼 생각이들면서 문득 이미 격리에 준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떠올랐다.


누구도 격리를 원하진 않는다.


올해 '격리'라는 단어를 평생 가장 많이 들어보고, 격리를 직접 겪어봤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 이미 격리하고 있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타의에 의해서 또는 건강때문에, 누군가의 시선때문에 장애인, 노인, 임산부, 만성질환자, 환자 등 많은 이들이 평범한 삶과 동떨어져 사회 귀퉁이 어딘가에 격리된채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사정은 모두 다르겠지만, 원해서 격리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겪은 '자가격리'는 격리된 이유, 격리 기간, 격리물품 등 최소한 왜 격리되어야 하는지, 격리의 끝은 언제인지 충분히 아는 상태에서의 격리였다면 위에서 말한 '타의에 의한 격리'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다수가 충분한 답을 알지 못한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뿐이다.


격리가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처럼 고육지책으로 격리를 해야만 이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상황이 분명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격리가 이들에겐 필요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격리당하고 있는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단순해지고 쉬워진다.


2018년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통계를 보면 중증장애인의 약 20프로가 한달동안 외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외출이 장애를 더 악화시켜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외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서, 제대로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외출할 엄두가 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 시선이 불편해서 외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격리생활이 불가피하다라는 생각은 조금은 맞기도하지만 한편으론 핑계에 불과한 말이다.    


올해 코로나19로 요양원과 시설의 많은 노인과 장애인들이 확진되고, 죽었다. 뉴스에 요양병원 집단 감염 기사가 나오고, 이들 중 몇명이 위독하며, 몇명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보면 나부터도 '취약한 사람들이니 그랬구나.'라고 담담히 생각했었다. 어쩌면 '건강한 사람들이 죽지 않고, 이런 취약한 사람들이 죽어서 다행이야'라며 무의식적으로 안도했을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누구도 격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쩔수 없는 상황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격리는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이미 오랜 세월을, 평생을 사회와 격리된채, 그럴만한 존재로 인식되어 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풍족한 격리생활을 위한 격리물품이 아닌, '격리되지 않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당연하다' 여기는 인식과 이들을 바라보는 적당한 따뜻한 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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