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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앳더리버 Jun 21. 2020

영화<컨택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린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나

1.

     sf하면 ‘공상과학’으로 ‘원더키디’를 떠올리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분명 만화에서는 개인 우주비행선과 레이저 총을 쏘며 디스토피아 세계에 살고 있던 2020년 배경이었는데 현실은 전염병 창궐로 마스크 없으면 돌아다닐 수 없는 2020년 현재에 살고 있다. sf 소재로 쓰여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가깝지만 조금 멀기도한 미래의 있을법한 일들과 지금도 우리가 고민하는 여러 문제들을 이질감없이 조합해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앞으로의 우리는, 우주를 자유롭게 다니며, 신체 기능이 월등이 좋아지는 사이보그가 될 수 있는 우리는, 종류와 소재가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결국 인간의 속성을 지니는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고통과 고민,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 무언가와 씨름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챕터에서 릴리는 유전병의 흉터로 상처받고 괴물 취급받는 삶을 벗어나기 위해 지구 밖 ‘마을’을 건설하며 유토피아를 꿈꾼다. 지구에서는 흉터가 있다는 자체만으로 마음껏 멸시하고 혐오할 수 있는 하나의 낙인이었다면 ‘마을’에서는 서로의 결점들을 신경쓰지 않았고,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  어쩌면 작가는 혐오로 가득 찬 지구와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마을’을 대조하며 현실의 불합리함을 이분법적으로 나타내 시대를 고발하는 글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장애가 있건 없건 존재를 배제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세상. 이상적인 세상이라는 것에 모두 공감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토록 이상적인 ‘마을’이지만 왜 불완전한 지구로 간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최근 ‘차별금지법’이 정치계에, 소수자들에게 뜨거운 감자다. 차별적인 발언, 행동 또는 차별을 방조한 행위 등을 실질적으로 법적 제재를 한다는 내용이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법이 제정되어 실행될 경우 차별적인 행위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점점 제재의 장벽들이 증가해 차별의 행위가 실제 줄어들지 모르겠다. 표면적으로는 이상적인 ‘마을’의 형태에 가까워질지 모른다. 하지만 존재를 배제하지 않지만 순례자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차별의 소거’가 인간을 만족시키는 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소설의 작가는 ‘사랑’을 이야기했다. 너무 낭만적인 단어일지 모르겠지만 ‘사랑’보다 인간의 속성을 더 잘 들어낸 단어가 있을까?

  

2.

     이 지점에서 소설은 영화 <컨택트>와 맞닿아 있다.


드니 빌뢰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

     언어학자로 외계생명체(햅타포드)와의 소통 임무를 받고, 대화를 시도하던 루이스는 인간의 선형적인 시간개념이 아닌 햅타포드의 비선형적인 언어처럼 과거-현재-미래의 시제가 혼재된 것을 느낀다. 햅타포드의 표현으로, 햅타포드의 ‘시간’개념을 선물 받은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엇갈려 미래가 보이기도 하면서 루이스는 딸이 암으로 죽게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영화 후반에 루이스는 독백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든 것을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

       미래를 볼 수 있어 딸의 죽음을 알지만, 불행한 미래를 바꾸기 위해선 현재의 딸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면서도 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너무도 사랑하는 딸이기 때문에 죽을 것임을 알지만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한다.

       차별과 배제가 없고, 존재자체를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마을’이지만 불완전할 지라도 ‘사랑’을 추구하려 지구에 남는 순례자들처럼, 그리고 미래를 보게 되어 외계 생명체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길지라도 사랑하는 딸의 존재를 가장 우선시하는 루이스처럼 ‘사랑’은 인간에게 어떤 능력보다 중요한 가치일 수밖에 없다.    


3.

     첨단 과학이 발전해 신체 한계를 넘어 대다수 사람들이 사이보그가 될지라도, 유발 하라리가 말한 ‘사피엔스’종의 종말이 오지 않는 이상 불완전한 인간이 보이는 한계와 갈등은 비슷하지 않을까? 농업혁명 후 제국이 세워진 이후부터 계급이 존재하고(필연적이 아닌 특정 계층의 필요에 의해서), 남들보다 더 가지려고 하며,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고 싶어하는 습성은 우리가 웜홀을 발견해 다른 은하계의 행성을 왔다갔다 할 수 있다 한들, 외계 생명체와 조우해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한들 크게 다를까? 우리들은 앞으로 어떤 가치를 쫓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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