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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만 Jun 06. 2023

환전

은행에서 생기는 일

돈은 계속 오염된다.  지폐든 동전이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집트 파운드화는 유독 지저분하다.  셈을 치르고 받아 든 잔돈들, 지갑에 넣기 꺼려질 지경이다.


은행에 아침 일찍 간다.  문 열기 10분 전이다.  창구 하나만 열어 운영을 한다.  바깥에 줄이 긴데 세월아 네월아다.  그나마 문 열기 전에 가야 일이 좀 수월하다.


문 앞에 앉은 안내 아저씨가 번호를 부른다.

"미야 와 아르바아"

내 차례가 왔다.  가져온 미국달러를 꺼내 창구에 내민다.


"익스체인지 민 둘라르 아므리끼 일라 기니 마스리"

창구 여직원이 계좌가 있는지 묻는다.  못 보던 얼굴이다.

"없어요."

창구 여직원이 옆에 슈퍼바이저와 쏙닥 거리다 돌아와 작성할 전표를 내민다.


얼마 되지도 않는 미국 달러 스무 장을 지폐계수기에 넣어 여러 번 센다. 그러다 세 장을 추려 도로 내민다.

"이건 받을 수 없어요."

"왜요?"

"지저분 한 건 안 받거든요."

새 돈은 아니지만 그렇게 더럽지도 않다.  실랑이가 통하지 않아 체념한다.


여직원이 200 파운드와 100파운드 뭉치를 내게 건넨 후 확인증에 서명하라 한다.  꼬질꼬질한 지폐들.  그중 찢어지고 낙서가 된 지폐가 절반 이상이다.  그걸 대충 추려서 창구에 밀어 넣는다.

"바꿔줘요."

여직원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이다.

"지저분 한 건 안 받거든요."


그제야 이해를 한 눈치다.

"이집트 돈은 원래 더러워요."

옆에 슈퍼바이저가 흘끔거리다 한마디 거든다.

"왜 새 돈 받고 헌 돈 주려고 해요?"

내 목소리가 조금 높아져 있다.  주변 방문객들이 나를 돌아본다.

여직원이 주섬주섬 돈을 세고는 서랍을 다시 연다.  그나마 좀 추려 놓은 뭉치에서 그만큼 꺼내 돌려준다.


이러고 싶진 않다.  괘심 해서 그랬을까?  아무런 답은 없다.  받아 든 지폐뭉치는 세상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 주머니 속을 또 전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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