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롭게 5] 정 필요하다면 내 삶에서 내리겠어.
피아노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어.
피아노엔 88개의 건반이 있어.
모두에게 똑같이
건반은 유한하지만, 우리는 무한해.
이 건반들을 가지고 우리가 만드는 음악은 무한해.
난 이게 좋아.
이걸로 내 인생은 충분해.
트럼펫을 팔려고 악기상에 들어온 맥스는 피아노 속에 있었다는 금이 간 음반을 보며 전설의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로 1900년대 미국으로 향하던 버지니아 호에서 태어나 한번 도 육지를 밟지 ‘않은’ 친구 ‘데니 부드먼 T.D. 레몬 나인틴헌드레드’ 말이다.
시네마 천국의 감독으로 유명한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이름만으로도 충분조건이 되는 이 영화는 내가 자극적이고 복잡한 이야기들에 빠져있을 때, 힐링은 물론 정체 모를 향수까지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6.5톤짜리 세상에서 내리지 못한, 사람들 말대로 엉덩이 밑에 바다가 없으면 연주를 못 하는 운명이 된 그의 피아노 솜씨는 천재적이다. 그 안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들은 모두 ‘아메리카’를 외치며 배에서 내릴 손님들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에게는 그의 존재를 알아주는 트럼펫 연주자, 맥스 튜니가 있다.
그들의 우정이 시작되는 넘실거리는 파도 속에서 펼치는 현기증 나는 피아노 연주 장면은 압권이다. 밖의 요란함과 공포가 음악과 만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파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한 얼굴로 즐겁게 연주하는 그 모습은 볼 때마다 행복하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트랩만 건너면 된다고, 그러면 모든 것을 얻는다며, 빨리 내려서 예약된 명성을 쫓으라고 난리다. 나도 그를 배에서 밀어낼 최고의 힘은 그것이라 동의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한 여성이 나타나는 순간 역시 결정적 요인은 사랑이었다며, 드디어 배에서 내리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분명 육지에서 그녀와 함께 ‘인생은 광대하다’라고 외치는 파도 소리를 듣고 싶어 할 거라고 장담했다. 그랬건만, 결국 그는 그녀를 떠나보내며 처음이자 마지막 녹음 음반을 부순다. 하지만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기에 열병 같은 그리움에 끝내, 분명 그녀를 따라갈 거라 내심 기대했다.
그 소리
큰 함성과 같아
‘인생은 광대하다’라고 네게 말하는
일단 그 소리를 듣게 되면
뭘 하며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될 거야.
그는 내 예상대로 육지에서만 들리는 그 소리를 따라 마침재 트랩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발길을 돌려 올라오는 모습에 지켜보던 사람들만큼이나 허탈했다. 하지만 당연히 두려울 거라고, 관성에서 거스르기 힘든 법이라며,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오해를 사과했다. 그는 배 안에서 세상을 꿰뚫고 있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안에서 계속 곡을 만들고 연주했다는 그는 세상을 초월한 도인 같았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트랩의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게 막았던 것은 지금까지 봤던 것들이 아니라,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고.
유한한 피아노로 연주하는 무한한 음악이 아니라, 무한한 세상 속에서 더는 연주할 곡이 없다는 그의 말엔 감히 이해 못 할 슬픔이 있었다. 그는 세상 사람들처럼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무한한 꿈을 꾸며, 무한한 재화를 누리려는 부류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너무 큰 육지라는 배에 올라타기를 거부하는 소신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까지 남들이 생각하는 그저 좁은 배에서 어쩔 수 없어 버텼던 연주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오롯이 표현하고 기쁘게 삶을 연주했던 진정한 전설의 피아니스트였다.
그리고 말한다. 정 내려야 한다면, 이 삶에서 내리겠다고. 그의 이 작은 고백은 끝없는 욕망을 부추기는 외부 세계를 향한 선전포고처럼 들렸고, 폭발하는 배보다도 더 크게 울렸다.
난 존재하지 않았어.
맥스, 네게만 빼곤
내가 여기 있는걸
아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Zoom in]
- 배틀이 끝나고 피아노 줄에 담뱃불을 붙여서 상대에게 주는 장면
- 폭파 전에 친구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면서 음반을 트는 장면
- 맥스의 눈물, 마지막 포옹 장면
- “저 위에도 피아노가 있었으면!”
- 마지막 피아노 치는 손가락 장면
[음악]
말해서 무엇하랴, 듣다 보면 그가 참여한 다른 영화들이 또 보고 싶어 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o9HG16AeJQE
https://www.youtube.com/watch?v=nTuyn84RY74&list=OLAK5uy_nCLaShpYuAGg8ERmrQg2tnBNvBNsHkuJA&index=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