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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ndo Nov 06. 2024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영화롭게 11] 제가 이걸 왜 하는 거예요?

막걸리가 보내는 모스부호를 페르시아어로 푼다? 일부로라도 걸려들고 싶은 그물 같은 조합이다. 상상력 가득한 재기 발랄한 이야기일 거라며 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막걸리병으로 뒤통수를 한 대 맞았다. 그것도 강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멍한 눈빛의 동춘이는 힘내라는 힘 나지 않는 응원을 들으며, 영어와 수학, 페르시아어, 논술, 미술, 창의 과학, 한국사 학원까지 뺑뺑이를 돌고, 작은 키도 문제라며 성장 주사를 맞으러 다닌다. 하지만 표정만 보면 엄마와 함께하는 이 이인삼각이 좋은지 싫은지 짐작할 수가 없다. 가엽다는 생각이 민망할 정도로 이런 일상에 큰 불만이 없어 보인다. 익숙함과 무의욕 사이에서 바람도 흔들 수 없는 연못 같다. 출렁이며 오락가락하는 건 어른들 뿐.


그런 동춘이 앞에 막걸리 한 병이 떨어진다. 소화전에서 굴러 나오다니 이보다 귀여운 만남이 또 있을까. 그리고 이 막걸리는 동춘이와 달리 생명력을 과시하며 계속 뽀글거린다. 창의 과학 학원에 다녀서인지 동춘은 이것이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임을 알아챈다. 그리고 우연히도 과학 시간에 모스부호를 배웠다. 그리고 우연에 우연을 더해 페르시아어 전형 준비반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 영리한 어린이는 그 소리를 모스부호로 바꾸고, 페르시아어로 해독한다. 그리고 다시 한글 번역기에 돌린다. 그러자 정말 막걸리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영화 『컨택트』가 떠올랐다. 막걸리처럼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우주선, 그리고 그 안의 외계 생명체와 언어학자인 주인공이 소통을 시도하는 영화 말이다. 막걸리의 말을 듣기 위해 세심하게 경청하고 해석해 내는 과정이 루이스 못지않지 않아서였을까. 그때까지도 이 막걸리가 외계 생명체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내 무의식은 이미 알았던 걸까!  


동춘은 이렇게 막걸리와 소통을 시작한다. 로또 번호도 받고, 더 큰 통으로 옮겨주기도 하고, 영어 발표 대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페르시아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 언어 천재로 천재발굴단 섭외 전화까지 받는다. 그렇게 막걸리가 내주는 숙제를 하나씩 완성해 나간다. 하지만 동춘이 옆에 막걸리만 있는 건 아니다. 털복이와 숭이는 부모님과 선생님께 질문을 멈춘 동춘이가 질문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들이다. 고비마다 나타나서 함께해 준 그들은 동춘이 페르시아어 발표를 하고 나서 사라진다. 동춘의 심장이 조금 단단해졌다는 뜻일지도.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여전히 어른들의 손에 눌려있다. 엄마는 막걸리를 버리고, 동춘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자동차 창문조차 마음대로 열 수 없는 동춘이는 결국 문제아가 되어 상담 센터로 끌려온다. 하지만 동춘이는 드디어 부모님을 거스르고 자신의 의지로 뭔가를 하기 시작한다. 막걸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금 남은 막걸리 통을 유모차에 태워 말했던 시간, 장소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언어 장벽이 허물어진다. 더는 복잡한 해석 과정이 필요 없다. 막걸리가 동춘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같은 언어로 대화한다. 이제 완전히 같은 편이 된 것이다. 비밀 들을 준비 완료.       


그리고 드디어 막걸리가 알려줄 시간이 다가온다. 상상도 못 한 곳, 양조장에 도착한 동춘은 그간 초등학생이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 다른 종에 적응하기 위한 테스트였다니! 그리고 마침내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그리고 밖에는 동춘이처럼 막걸리를 든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 영화는 어른들이 대답하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질문을 대신 막걸리가 답하는 영화다. 기막힌 방법으로. 동춘의 마지막 선택이 섬찟한 건 괜한 오버일까? 회피와 포기인가, 사교육 해방인가, 아니면 성과의 보상?, 그것도 아니면 미지의 모험 선택인가…. 부모님의 슬픈 얼굴을 떠올리면서도 내린 선택이 영화스럽다고 생각하다가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싹했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 기왕 했던  컨택트 생각을 다시 해본다. 언어학자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하다가 미래를 보았다. 해석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헵타포드 언어처럼 시간에 벗어난 건 아닐까, 순차적인 시간의 언어가 아니라 과거에 미래까지 통합된 언어 말이다. 동춘이가 동전을 떨어뜨리며 그 어두운 통 안을 들여다볼 때 과거뿐만 아니라 갈수록 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더 많은 학원에 다니는 미래까지 본 게 아닐까? 루이스는 자신의 불행한 미래, 그 운명을 받아들였지만, 동춘이는 당당하게 그것을 거부한 게 아닐까? 환하게 웃던 동춘이의 모습을 끝까지 오해하고 싶어 진다.     


이래도 저래도 내 오해가 계속되는 건 늦은 시간 길에 늘어선 학원 차들과 피곤한 눈으로 편의점에 서서 컵라면을 먹는 아이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능하다면 여기저기 뺑뺑이를 돌고 있는 아이들에게 막걸리를 한 병씩 굴려주고 싶다. 진심으로. 막걸리가 다 알려줄 테니까. 이유라도 알면 좀 더 견디기 쉬울지도 모르니까…. 



[Zoom in]   

- 힘내라, 김동춘!

- 엄마는 동춘이가 많은 도전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 내가 가면 너도 갈걸

- 이래도 네네, 저래도 네네

- 국영수도 아닌데

- 동춘이 스스로 결정하는 거야

- 그럼 우리 엄마·아빠도 이 계획에 동의하는 거야?     



[음악]

동춘이가 음악까지 잡아먹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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