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롭게 10] 나는 서글픈 그물을 당겼다.
우리나라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때문이었는지 책장에 꽂힌 네루다 시집에 눈길이 갔다. 정현종 시인의 번역 때문에 충동구매를 했던 기억이 난다. 왜 영어본으로 번역했는지 살짝 의문스러웠지만, 마르케스 말대로 이 책은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
그는 칠레 대통령 후보까지 올랐지만, 다른 후보자를 추대하고 사퇴한 후 다음 해 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지지하던 아옌데 정권이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무너지고, 같은 해 73년에 사망했다. 그의 정치적 행보로 그는 칠레의 저항 시인으로 꼽히며, 이것은 그의 시와 영화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영화 또한 정치적 상황으로 이탈리아로 추방된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
저도 시인이 되고 싶어요.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단순하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힘이 ‘시’기에 특별하다. 이탈리아의 한 어촌 마을, 수도시설 하나 제대로 없는 편리함과 먼 이곳에는 불평이 없어서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가난하고 무식한 어부의 아들인 순수한 청년은 원래 고기 잡는 일 즉, 돈 버는 일에 재주가 없다. 그는 몰랐지만, 마음속에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던 게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마음의 물꼬를 단숨에 열어줄 누군가가 나타난다. 칠레의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 그렇게 그는 운명처럼 정치적 망명으로 도착한 시인의 편지 배달을 할 우체부로 임시 고용된다. 그를 위해 존재하는 단 하나의 우체부가 된 것이다. 그는 이 유명한 시인을 통해 영화를 볼 수 있는 박봉뿐만 아니라,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를 정복할 용기와 수단, 바로 시를 얻는다.
이제 자넨 시인이야.
이제 골목이 아니라 해변을 거닐며 주변을 살피게 되고, 그렇게 은유를 알아간다. 우체부는 시인을 통해 은유를, 은유를 통해 시를 배우며 성장한다. 그리고 유명한 시인이 아닌 친구가 되고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다. 네루다가 칠레로 돌아간 이후 그의 마음은 베아트리체를 만날 때와 또 다른 색의 그리움으로 가득해진다. 그 절절함으로 그는 시인에게 보낼 섬의 아름다움을 녹음하기 시작한다.
1번. 칼라 디 소토의 파도, 작은 파도
2번. 큰 파도
3번. 절벽에 부는 바람
4번.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
5번.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6번. 신부님이 치는 교회 종소리
7번.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8번. 파블리토의 심장 소리
이 영화의 원작은 칠레의 2014년 국립문학상 수상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ármeta)의 1985년 소설, 『불타는 인내(Ardiente paciencia)』다. 이 제목은 영화의 성공 후 상업적 이유로 『네루다의 우체부(El cartero de Neruda)』로 바뀐다. 하지만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1983년에 스카르메타는 소설을 내기 전, 피노체트 망명 시절 독일에서 16년간 영화 교수로 재직한 경험으로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포르투갈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네루다가 말년을 보냈던 이슬라 네그라에서 우체부와 나는 시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마이클 래드포드 영화와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익숙한 장면이 종종 보인다.
이 영화는 우체부 역할의 이탈리아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Massimo Troisi)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원작을 읽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판권까지 샀고, 각색에도 참여했다. 결국 촬영도 그의 고향 나폴리 근처 프로치다와 살리나스에서 했다. 순수한 눈빛과 병약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데, 이유가 있다. 그는 건강이 안 좋아서 촬영 도중에 쓰러졌고, 하루에 한 시간 정도만 촬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자전거를 자주 타고 등장하지만, 모두 그의 모습은 아닌 셈이다. 죽음을 대비해 대사를 미리 다 녹음할 정도였다니 그 상태가 매우 심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영화 속 슬픈 결말처럼, 촬영이 끝나고 12시간 후에 심장마비로 죽어 그의 유작이 되었으니, 이래저래 이 영화는 그에게 운명이었다. 네루다 역은 모두가 사랑하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필립 누아레(Philippe Noiret)가 맡았다. 지금도 파블로 네루다를 떠올리면 그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니 좋은 건지, 아닌 건지….
시인과 시, 편지, 지중해, 자전거만 보여도 이 영화가 떠오른다. 시와 편지로 사랑을 전하는 이 영화는 그것이 구식이 된 세상에서 갈수록 더 빛나는 보석으로 남을 것 같다.
[Zoom in]
-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 단어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바다처럼.. 그게 운율이야. 멀미까지 느꼈어요.
- 전 사랑에 빠졌어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 시 한 편도 쓰지 못하면 어떻게 노벨상을 받겠어요?
- 이 섬의 아름다움은... 베아트리체 루소
- 전 선생님이 모든 아름다움을 갖고 가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저를 위해 남긴 것이 있는 걸 알겠어요.
[음악]
음악은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포크 음악가, 작곡가인 루이스 바칼로브(Luis Bacalov)가 맡았는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꽉 찬 뮤비 같기도 하다. 땅고(Tango)와 칠레의 춤곡인 꾸에까(cueca)의 변주곡을 녹인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 어떤 화면과 만나도 잘 어울릴 정도로 매력적이다.
*il(남성 단수 정관사)+Postino(우체부)
https://www.youtube.com/watch?v=D4QYOKKZ4a8&list=OLAK5uy_kNqP6YW5pyAl715DiHoloD5IC0uhDe0Io&inde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