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이 희망(hope)이다.
'홉이든'은 홉 농사를 짓습니다.
3년 간의 자전거 세계여행을 마치고 귀농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습닌다. 신선한 홉을 생산하고 맛있는 맥주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께선 아래의 홉이든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www.hopeden.com
농장체험을 위해 떠난 3년 간의 세계여행. 관심 품목 위주로 다양한 농장을 다녔다. 칠레 블루베리, 페루 커피, 콜롬비아 카카오, 코스타리카 오렌지, 니카라과 바나나, 불가리아 장미. 한국에 적용해 볼 만한 품목이 없다. 블루베리 시장은 이미 한국도 포화 상태고 다른 작물은 기후가 맞지 않다. 그렇다면 홉은 어떤가?
세계 3대 홉 가운데 하나인 테트낭(Tettnang)을 알게 된 것은 독일 뮌헨의 어느 펍에서였다. 지도를 폈다. 홉 생산으로 유명하다는 테트낭 일대는 스위스 국경 근처로 뮌헨에서 아우토반 1시간 거리다. 홉이란 작물에 대한 지식 하나 없이, 맥주에 대한 지식 또한 하나 없이, 다짜고짜 그곳으로 달렸다. 휑~하니 찬바람만 날린다. 2월의 겨울 들판에 남은 것이라고는 빈 밭을 지키는 나무 기둥뿐이었다. 휙 둘러보고 테트낭 지역 맥주만 달랑 사들고 돌아왔다.
빈 들만 보고 온 것이 영 아쉬워 인터넷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고것 참 희한한 작물일세. 키가 6미터 씩이나 자라는 덩굴 식물로 독일에서는 수확에서 가공까지 협동조합 체제로 완전 기계화가 되어 있단다. 미국은 한 발 더 나아가 홉 생산 벨트를 이루고 품질 표준화를 이뤘다고 할 정도니 뭐 할 말 다 했구나 싶었다. 궁금증으로 시작한 홉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커다란 벽에 눌려 금세 멀어져 갔다.
아이슬란드를 끝으로 자전거 여행을 끝내고 마지막 여행지 영국에 도착했다. 불가리아 장미농장에서 꽃을 따며 친분을 이룬 영국인 친구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빠듯한 이 친구, 여행과 맛난 맥주를 위해 일한다는 말에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 주변은 모두 수제 맥주 광이었다. 우연이겠지. 지방에 살고 있는 다른 친구를 찾아갔다. 그녀와 남자 친구도 맥주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느꼈던 수제 맥주 열풍과는 다른 분위기였고 취하려고 마시는 한국의 기존 술 문화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우리나라 맥주는 물 탄 것 같이 맛이 없고 배만 불러.”
“술을 맛으로 먹냐? 취하려고 마시는 거지. 어서 소주나 부어.”
왜 그리 취하고 싶은 걸까? 우리도 그랬다.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걸까? 술이 하룻밤 도피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여행은 최고의 현실 도피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2017년 11월. 귀국하던 날. 세 번의 새해를 국외에서 보내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내가 나고 자란 곳. 여행 중 수 없이 밝혀 왔던 한국인이라는 꼬리표. 더 이상 증명할 필요 없는 곳으로 간다. 같은 종착지를 두고 먼 우회 도로를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세상을 돌아보며 얻은 소득은 이 세상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사실이다. 그 얘긴 내 삶은 내가 열어 가는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의 여행은 내일을 열기 위한 수많은 오늘들이었기에 그 깨달음은 참으로 소중하다.
기내에서 맥주 한 캔을 손에 들었다. 아주 천천히 음미했다. 늘 마시던 그 평범하던 맥주. 원래 이런 맛이었나. 맛이 좋네. 맥주 맛이 아니라 마시는 사람의 그 뭔가가 바뀐 탓일 게다. 설령 그 맥주가 맛이 덜하더라도 입맛에 맞는 맛을 찾아 마시면 된다. 요즘엔 입맛대로 만들어 마실 수도 있다. 그것도 좋지만 직접 만들 필요 없이 맥주 잘 만드는 사람을 가까이 두면 된다. 그렇다면… 홉 생산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은데!
“우리 홉 농사 지어보는 거 어때?”
그렇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소정의 모의가 이뤄졌다.
우리나라엔 생소한 작물인 홉. 반갑게도 이미 5-6년 전부터 고군분투해 온 선구자들이 있었다. 2017년 말 기준으로 소규모 생산 농가가 스무 곳 된단다. 앞뒤 따져볼 것 없다. 무작정 연락을 하고 방문 약속을 잡아야 했다. 연락처를 얻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마저 어떤 곳은 심하게 방어적인 자세를 보여 가고 싶은 맘이 없어질 정도였다. 우리 같이 귀찮게 하는 사람이 적잖이 있었나 보다.
두 군데서 값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모두 5년 이상된 어엿한 농부로 국내에 어렵게 홉을 정착시킨 공로자였다. 이야기마다 그간의 고군분투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홉은 6미터 이상 자라는 덩굴 식물이기에 지주대 설치가 필수다. 목재 구하기가 어려워 고민 끝에 건축용 쇠파이프를 설치했는데 몇 해 안 가 휘어 버렸다는 사연, 모두가 종근 수입에 매달릴 때 씨앗을 구해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결국 발아에 성공했다는 얘기, 지방 사회에 섞여 들어가기 위해 겪었던 고초 등. 짧은 만남에 그간의 시행착오와 소중한 경험담을 스스럼없이 들려주시어 무척 감사하였다. 초보 농군에게 큰 도움이 아닐 수 없다.
농장 견학을 통해 우리만의 강점을 재발견했다. 농업 경험 전혀 없이 어렵게 시작한 홉 농부에 비하자면 우리는 좋은 상황이었다. 바로 반 세기 넘도록 농사 하나만을 해오신 부모님이 계신다는 사실이다. 물론 홉을 직접 들여오거나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한 영어 능과 해외 현지 경험이 필요하다. 그 부분은 여행을 통해 어느 정도는 근접 가능하다 본다면, 농사 장인 두 분은 초보 홉 농군에게 천군만마 그 이상이다. 게다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시지 않는 분들이다. 우리의 역할은 연세 드신 부모님을 돕고, 한평생 다져오신 농업 노하우를 이어받아, 배우고 익히는 일. 그리고 세대 간의 간극을 이해하고 조율해 가며 가족과 농업을 아우르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겠다.
PS. 홉 농부 여러분의 귀중한 경험과 소중한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농사를 잘 지어 그들 곁에 나란히 서는 그날을 향해 분발하겠습니다.
‘홉 농사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판로가 없다는 것’
국내엔 아직 재배 농가가 많지 않아 희소성이 있다. 그리고 수제 맥주 시장의 급격한 성장 추세로 시장성이 있어 보이지만 국산 홉의 수요 전망은 미궁 속이다. 제조사들은 수입산을 선호한다. 미국, 호주, 독일 등에서 들여오는 수입산에 비해 아직 국산 홉은 품질 검증도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도 낮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양조장이 만들어가는 마니아 층을 타깃으로 하는 독특한 수제 맥주 문화는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그렇기에 생협을 이용한 계절 맥주에 대한 실험과 요구도 늘어나는 추세다. 200 종이 넘는 품종과 400여 가지의 성분이 어떻게 특유의 향과 맛을 내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에 여전히 연구가 필요한 작물이다. 멜라토닌과 유사하게 홉 성분 중에는 졸음이나 수면유도를 위한 진정 효과가 있으며, 샛노란 꽃가루 루플린에는 천연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맥주 시장뿐만 아니라, 앞으로 의학, 미용, 식품 분야에도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농업은 단시간에 답을 얻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하물며 생소한 작물을 이제 알아가기 시작한 우리에게 미래가 불확실한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홉이 주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올 첫해는 건강한 홉을 재배하고 튼튼한 뿌리를 얻는 것이 목표다. 소량 수확하게 된다면 직접 재배한 생홉을 넣은 맥주를 즐기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2018년 1월 초. 귀농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이 몇 가지 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해당 면사무소를 찾아 전입신고를 하는 것이었다. 위장전입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면사무소에서는 이장에게 연락하여 확인을 거친다. 전화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시골 생활의 예의가 아니다. 말쑥하게 차려 입고 이장님을 뵈러 갔는데 다 알아요 하는 얼굴이었다. 이미 부모님으로부터 어느 정도 전해 들은 듯하다. 얼마 후, 농업경영체 등록을 할 때에 이장님의 도장이 필요해 또 한 번 뵈었는데, 귀농 귀촌에 있어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이장의 역할과 기능은 매우 중요하단 걸 알 수 있었다.
귀농 지원 정책에 대한 상세 내용을 듣기 위해 의성군 농업 기술 센터를 찾았다. 담당 직원의 응대는 대체로 충실하였다. 가장 궁금했던 주택 및 사업 자금 신청 절차는 나중에 직접 해 봐야 감이 올 것 같다. 나눠 준 홍보물은 귀농 정책뿐 아니라, 우리 지역의 일반 현황, 귀농 귀촌 현황, 농산물 재배현황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귀농인 커뮤니티 연락처도 받아두었으니 언젠가 문을 두드려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