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이든'은 홉 농사를 짓습니다.
3년 간의 자전거 세계여행을 마치고 귀농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습닌다. 신선한 홉을 생산하고 맛있는 맥주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께선 아래의 홉이든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www.hopeden.com
주요 작물을 홉으로 정하기에 앞서 전문 농부이신 부모님께 상의를 드려야 했다.
“홉?! 그게 뭐로?”
“넝쿨과 다년생 식물인데요, 다 자라면 6미터도 넘어요. 대롱대롱 달리는 꽃을 수확하는 거고요. ‘루플린’이라 불려지는 노란 꽃가루가 맥주의 쌉쌀한 맛과 향긋한 풍미를 내는 성분이에요.”
사진과 영상을 곁들여 열 올려 가며 소개해 보지만 부모님은 고개를 갸우뚱하신다. 난생처음 들어본 농작물인 데다 판로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말씀을 끝낼 분들이 아니시다. 남들 하지 않는 작물을 해야 한다며 일단 새로운 작물을 반기셨고, 더 나아가 실무를 거론하시는 게 아닌가.
“6미터나 자라는 거라면 지주대를 튼튼하게 잘 해놔야 할 낀데…
종근 파는 사람은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이라 카드나”
새로운 작물에 대한 관심은 지칠 줄 몰랐고 마침내 봄이 오면 시험생산을 해 보자며 이야기를 마쳤다. 우리 지역의 기후와 토질에 잘 맞길 기도하면서 한 걸음걸음 내딛는다.
몇몇 홉 농가를 둘러보았지만 지주대에 대한 고민은 깊어만 갔다. 왜냐하면 농가별로 방법이 제 각기 달랐기 때문. 방부목 두 개를 이어 놓은 곳, 전신주를 세워 놓은 곳, 직경 넓은 건축용 쇠파이프나, 파이프 하단에 콘크리트를 추가로 시공해서 세운 곳.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두고 고민했다. 먼저 자재 조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버지께서 거래하는 농자재 철강업체를 방문해 견적을 내보았다. 방부목이나 전봇대는 일반적으로 구하기는 힘들었고 설령 찾았다고 해도 가격 부담이 클 것 같았다. 쇠파이프가 현실적인데 햇수를 거듭할수록 더해지는 홉 덩굴의 하중에 휘어질 열려가 있고 강풍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시멘트 시공된 파이프는 주문제작을 해야 했고 가격도 부담되었다. 결국 원형 파이프 대신 사각관으로 결정하고, 자재를 덧대 상부를 잇는 구조로 부실한 하부를 보강하기로 했다.
부모님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설계도를 그렸다. 드론으로 홉을 심을 밭을 촬영하고 가 실측을 하여 파이프와 간격을 조율했다. 텔레비전에 설계도를 띄워 놓고 부모님과 열띤 토론의 시간도 가졌다. 여러 번 수정을 거치면서도 부모님과 머리를 맞대 조율해가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홉을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까’
네 사람의 생각은 같다.
농장 견학도 하고 홉 농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시작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한단 말인가. 어떤 방법으로 시설을 만들고 종자는 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언제 심고 언제 수확하는 걸까? 홉의 질병과 병충해는 어떤 것이 있지? 관수 시설은 어떻게 하지? 공부를 해야 하는 수밖에. 인터넷을 뒤지니 외국 서적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주저 없이 주문하고 일주일 뒤에 책을 받았다.
4권의 책 중 2권은 꽤 쓸만했다. 홉 농부로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정보가 다 들어 있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 한국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또 다른 숙제를 안고 있지만 뭔가 한발 나아가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 나도 홉 농업에 대한 책을 쓸 날일 기대해본다.
생각지도 않던 씨앗 발아를 하게 된 건 어느 홉 농부의 말씀 때문이었다. 종자 발아로 자란 것은 종근에 비할 바 아니라며 적극 권장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홉은 싹틔우기가 매우 어렵다. 어렵다고 하니 더욱 도전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게다가 발아 경험이 많으신 어머니께서 자신감을 내비치신다. 한번 해 보자며 씨앗이나 얼른 구해 오라신다. 해외 유명 사이트를 통해 홉 씨앗을 주문했다. 까다로울 것만 같던 수입 절차는 홉 농사 선배님들의 과거 검역 이력이 있어서 우리는 비교적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제일 처음 도착한 홍씨는 미국에서 온 것이었다. 3종으로 5개씩 들어 있었다. 아! 나도 모르게 짧은 외마디가 나왔다. 어쩌란 말인가 텃밭에 심을 것인가. 난 진지하게 홉 농부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허탈한 가슴을 쓸어내리고 발아에 집중하기로 했다. 수량도 넉넉지 않았고 춘화처리로 4~6주를 하기엔 마음이 급했다.
침종 처리 하루하고 화분에 옮겨 심었다. 이때가 3월 중순. 이들을 A그룹으로 지정했다.
두 번째 도착한 것도 홍씨도 미국에서 온 것이었다. 1종으로 200개였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실험을 할 수 있지.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좀 넉넉하였기에 그룹을 두 개로 나누어 한 그룹(B-1)은 침종을 하고 한 그룹(B-2)은 휴면타파를 시도하였다. 침종은 이틀간 두었다가 3월 하순에 파종하고 휴면타파한 것은 4주 뒤인 4월 하순에 파종하였다. 이들을 B그룹으로 지정했다.
세 번째 어렵게 구한 홍씨는 일본에서 온 것으로 7종 350개였다. 이들은 모두 휴면타파 4주간 처리한 뒤 모종 포트에 옮겼다. 이때가 4월 말이었다. 이들을 C그룹으로 지정했다.
이제 하늘에 맞기는 일만 남았다. 마침 종자 판매 안내문구가 떠올랐다. 과연 우리는 어떤 결과를 맞이할 것인가.
발아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초보 농부의 발아 성공률이 90%인 경우도 있고 경력 30년 농부의 발아 성공률이 10%인 경우가 있는 것도 자주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종자는 발아 난이도 별 다섯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