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교장선생님이 학교장이 되어 가장 힘든 일이 뭐냐고 웃으며 물으시더니 본인은 풀과의 싸움이란다.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풀이 자라는 운동장을 바라보는 일이 더 어렵고 힘들다. 한 때 천 명이 넘었다던 옛 명성은 어디로 가고 아이들 대신 풀들이 운동장을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풀 약도 못 치는 운동장은 비가 온 다음 날이면 초록이 더 선명해지곤 한다. 사람의 발길이 닿으면 저절로 없어질 텐데 겨우 마흔일곱 명의 발길이 골고루 닿기에는 넓어도 너무 넓은 운동장이다.
시골에 아이들이 없다. 2018년 출생률이 0.98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고 한다. 시골 학교에 근무하다 보니 이런 물리적인 숫자보다 더 심각하게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출생률의 감소는 시골 학교에는 치명적이다. 도무지 학교 주변에 아이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해 늦가을 입학 대상자 명단을 받고 거주지가 불명확한 학생을 확인하기 위해 학구 내 마을을 찾았다. 마을에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침 길가에서 메주콩 타작을 하고 있는 연로하신 할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아저씨가 보였다.
"어르신, 이 근처에 혹시 입학할 아이가 있는 집이 있나요?" "내가 올해 쉰여섯 살인데 이 동네에서 제일 어려요."
아저씨의 답변에 할 말을 잃었다. 입학생은 고사하고 농사일을 이어갈 사람조차 없는 것이 시골마을의 현실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콩알을 몇 개 주워드리며 이렇게 콩알처럼 먼 곳에서라도 주울 수 있는 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골학교에 다니면 장점이 참 많다. 학급당 인원수가 적으니 20~30명이나 되는 도시보다 교사의 가르침과 보살핌을 알뜰히 살뜰히 받을 수 있다. 수요자의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은 알곡 같다. 우리 학교는 4학년까지 돌봄교실을 운영하는데 연중 쉬는 날도 거의 없다. 학교버스도 연중 운행하며 점심과 간식까지 무료로 제공받는다.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은 또 어떤가? 제주도 수학여행, 도시문화체험, 스키캠프, 속리산 캠핑 등은 2박 3일간 이루어지고 1박 2일 학교 축제 등 다양한 행사는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물론 전액 무료다. 벌써 6년째 운영하고 있는 스키 캠프 덕분에 학생들의 스키실력도 수준급이다. 가족단위의 스키캠프를 가려고 했을 때 치러야 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얼마나 매력적인 프로그램인가!
시골이 문화적으로 소외된다는 것은 옛말이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가능한 지금 도시에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농촌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만 정주여건이 문제라고들 한다. 이것은 학교의 몫이 아니다. 지역자치단체가 나설 일이다. 동문회와 지자체가 나서서 주택을 제공하자 학생 수가 크게 늘어난 괴산 백봉초의 사례는 부럽기만 하다. 더 늦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사는 게 너무 팍팍해서 결혼도 안 하겠다, 아이도 안 낳겠다고 한단다. 그들에게 살면서 아이 낳고 키운 일만큼 삶의 즐거움과 보람을 준 일도 없었다 말하고 싶다. '결혼 안 해도 괜찮아, 혼자 즐기며 살아, 아이 낳기도 키우기도 힘든데 둘만 재미있게 살아.'라는 말은 쉽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엔 한 명당 노인 3명까지 부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데 몇 안 되는 저 아이들의 어깨에만 이 무거운 짐을 지워서야 되겠는가?
저 넓은 시골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의 뛰노는 함성소리가 커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이곳저곳 팍팍 밟고 다녀서 운동장의 풀이 살아남을 수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