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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Apr 04. 2024

드로잉 카페, 마음 열기 좋은 곳

친구랑 드로잉 카페에 갔다. 친구는 그림을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좋아한다. 진짜 속마음, 감정들을 담아서 그리기 때문에 나는 친구의 그림들이 좋다.


햇빛이 강렬했던 카페 테라스를 떠나서 (커피를 막 즐기는건 아니지만 콘판나는 예술이었다) 근처의 드로잉 카페에 오픈 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카페에서도 허락해주셔서 친구와 나는 원래 2인석인 곳을 하나씩 차지하고 그림을 그렸다.


예전에 마을에서 활동가로 일할 때, 그리고 내가 이런저런 예술치유 프로그램들에 참여했을 때 보면 어른들이 가장 당황하는 과제 중 하나가 "원하시는 대로 그려보세요"다.


흰 도화지, 색연필, 오일 파스텔, 물감같은 재료들을 앞에 두고 뭔가를 그리라고 했을 때 편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림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래방이 대중화된 것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유형으로 남는 그림을 통해서 자신이 평가받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에 많은 시간을 쏟는 동안 그림은 나 자신의 것이 되어가는데 결과물이 초라하면 기분이 안좋을 때도 있다.


나도 그림이 익숙하지도, 편하지도 않지만 뭐가 됐든 그리는 순간에는 명상하는 것처럼 마음이 비워진다는걸 알기 때문에 좋아하는 편이다. 다양한 색과 배치, 과정에 몰입하다보면 잡생각이 멀리 떠나버린다.


친구와 각자 그림을 그리면서 커피를 마시면서보다 더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지도 않고, 각자의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더 열렸나보다. 요새 이런거 너무 슬펐다고 징징대기도 하고 친구에게 (약간 조심스러울수도 있지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나쁜 인간들 뒷담화도 했다.


취중진담이라고 하던데 나한테는 그림 그리면서 나눈 말들이 더 진담이었다. 이래서 예술치유라는게 있나보다. 조명이긴 했지만 빛이 좋았고 물감들도 좋았고 같이 그려준 친구도 좋았다. 시간은 엄청 빨리 가버렸다.


나는 수국을 그렸고 친구는 데이지를 그렸는데 나중에 꽃말을 찾아보고 같이 한참 웃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각자 기분에 맞는 꽃들을 고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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