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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타로 Oct 27. 2018

휠라, 어글리슈즈 인기 속 유독 주목받는 이유

90년대 복고 트렌드의 귀환과 함께 수많은 패션하우스에서 크고 뭉툭한 ‘어글리 슈즈’를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국내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완판을 이어가는 휠라 ‘디스럽터’의 독보적 인기는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어글리슈즈 트렌드가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집어삼키는 가운데 휠라코리아에서 출시한 ‘휠라’의 ‘디스럽터 2’의 인기가 단연 독보적이다. 표백제를 넣은 것 같은 새하얀 컬러에 투박한 톱니바퀴 밑창, 아버지가 등산 갈 때 신을 것 같은 크고 뭉툭한 모양새에 화룡점정은 90년대를 떠오르게 하는 선명한 ‘휠라’ 모노그램 로고다. 1996년 출시됐을 때 불티나게 팔렸던 이 제품이 2018년 다시 한번 트렌드의 중심에 우뚝 섰다.


1990년대 인기 스포츠브랜드였던 ‘휠라’는 2000년대 들어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8년 포브스 기사에 따르면, 1997년에 휠라의 미국 내 판매량은 6억 8,700만 달러(7,690억 원)에 달했다. 매출의 큰 부분을 신발이 견인했다. 이에 이탈리아 본사는 미국 내 신발사업권을 회수해 직접 사업에 뛰어 들지만, 제품을 럭셔리로 포지셔닝하고 백화점 등 하이엔드 유통망에 들어가는 우를 범했다.


‘휠라’ 상표권을 구입해 글로벌 본사를 역인수한 휠라코리아의 윤윤수 회장은 신발수출 수년간 의 경험을 바탕으로 브랜드 회생에 돌입했다. 국내 OEM 제작방식을 통해 제작 단가를 낮추고, 풋라커나 J&C 페니 등 미국 내 저렴한 유통망에 제품을 보급했다. 한국 내에서도 소매 위주 유통에서 도매로 전환, ABC 마트 등 대형 유통망에 물량을 공급하면서 가격은 확 낮췄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안 헤리티지는 유지하면서 타겟을 1030으로 확장, 츄파춥스 등 젊은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밀레니얼과의 접점을 높였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했다. 휠라레이, 휠라베놈을 아우르는 어글리슈즈 삼대장의 첫 포문을 연 ‘디스럽터’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한국에서 100만 켤레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한동안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미국 신발유통매장 풋라커의 딕 존슨(Dick Johnson) CEO는 최근 ‘가장 잘 팔리는 제품’ 중 하나로 반스(Vans)의 스케이트슈즈와 함께 ‘휠라’의 디스럽터를 꼽았다. 디스럽터의 인기 덕분에 이번 분기 휠라의 미국 매출이 21% 상승하는 등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휠라의 최근 실적 개선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 번째는 패션계에 부는 90년대 레트로 열풍이다. 힙색, 페니백, 빅 로고, 둥근 선글라스 등 90년대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 아이템이 런웨이와 스트리트에 등장했다. 이와 함께 켈빈 클라인이나 타미힐피거, 닥터마틴이나 스티븐 마덴 같은 브랜드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90년대 한 축을 담당한 휠라 슈즈 역시 레트로의 물결을 타고 대중의 곁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는 로고의 부활이다. 펜디, 프라다, 루이 비통 등이 지난 시즌 로고를 강조한 컬렉션을 선 보였다. 레트로 열풍을 반영함과 동시에 브랜드 헤리티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특히 90년대를 연상 시키는 휠라의 빅 로고는 최근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아디다스, 버버리 등과 협업한 경력이 있는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는 2016년 런웨이 컬렉션에 휠라 로고가 박힌 제품을 선보였다. 올해 2월에는 펜디가 휠라의 타이포그라피를 반영한 로고를 사용했다. 로고가 크게 박힌 휠라 운동화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올라갔다. 글로벌 패션 데이터 플랫폼 리스트(Lyst)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가장 핫한 여성 패션 아이템 순위에서 프라다, 오프화이트, 샤넬 등을 제치고 휠라의 디스럽터 스니커즈가 2위를 차지했다.

세 번째는 어글리 슈즈 열풍을 불고 온 ‘고프코어’ 트렌드다. 고프코어(Gorpcore)는 그레놀라(Granola), 오트(Oat), 건포도(Raisin), 땅콩(Peanut) 등 아웃도어 활동 시 즐겨먹는 간식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아웃도어 의류를 활용한 패션을 뜻한다. 에슬릭과 레저를 합친 에슬레저 룩의 인기에 남들과 다른 ‘튀는’ 패션을 선호하는 밀레니얼의 성향이 맞물린 결과다. 베트멍과 발렌시아가가 지난 시즌 아노락을 활용한 컬렉션을 선보이며 신호탄을 당겼다. 이에 프라다, 나이키 등이 벌키한 어글리 슈즈를 내놓으며 가세했다. 휠라의 디스럽터는 6만원 대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약 900만원에 달하는 발렌시아가 트리플S가 부담스러운 일반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굴지의 하이패션 브랜드가 벌키한 어글리 슈즈를 저마다 만들어 내놓을 때, 우리는 이미 1993년부터 브랜드 DNA 속에 이 요소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루이스 콜론 3세 휠라 북미 헤리티지부문 사장의 말이다. 결국 수년간 쌓아온 브랜드 헤리티지와 이를 적극 활용해 젊은 세대를 공략한 휠라 코리아가 없었다면 지금의 인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휠라는 이제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옛날 브랜드가 아니라 가장 최신의 트렌드를 이끄는 브랜드다. 과거의 영광을 미래의 원동력으로 삼는게 이들의 목표다.


© 패션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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