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 쇼핑몰의 빅데이터 전략 엿보기
온라인 쇼핑몰에서 보기 힘든‘영상미 있는 광고’로 주목받은‘시크헤라’의 김종진 대표는 국내 온라인 쇼핑몰 시장이 2세대에서 3세대로 넘어오고 있다고 말한다. 다가오는 3세대에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핵심 고객의 니즈를 파고드는 업체가 승기를 잡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국내 온라인 쇼핑몰 시장은 1천여 업체가 경쟁하는 레드오션이다. 기존 업체에 네이버, SNS 등 플랫폼기업, 오프라인 유통기업까지 가세해 치열한 전쟁터를 방불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년 온라인쇼핑몰의 5년 생존 확률은 13.8%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7년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연매출 300억 원을 올리는 여성의류 온라인 쇼핑몰이 있다. 배우 성현아가 출연한 영화 같은 광고로 더 유명해진 ‘시크해라’다. 예고편만으로 구성된 참신한 광고에는 영화감독이었던 김종진 대표의 경력이 녹아 있다.
그러나 ‘시크헤라’의 진짜 경쟁력은 제품에 있다. 티몬 등 소셜커머스 여성복 매출 1위를 시작으로 오프라인 팝업스토어 하루매출 삼천만 원을 올리는 등 깐깐한 3040 여성소비자들로부터 제품력을 인정받았다. 여기에 온라인만의 강점을 살려 빅데이터 솔루션을 도입하고, 개개인의 기호에 맞는 맞춤형 제품제작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까지 파고들었다.
온라인 쇼핑몰로 시작해 하나의 패션 브랜드로 인정받는 ‘시크헤라’는 액세서리, 식음료 라인업까지 갖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공들여 준비한 ‘오마이팬츠’ 슬랙스라인이 입소문을 타“이런 브랜드 상 줘야 된다”는 구매후기가 올라왔을 때를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으로 꼽는 ‘시크헤라’ 김종진 대표를 만났다.
3040대 여심 파고든 것이 성공 포인트
시크헤라의 주 소비자층은 3,40대 여성이다. 김 대표는 3040 여성들의 복잡한 니즈를 제품에 녹여낸 전략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대의 마음을 갖고 있지만 출산을 하는 등 신체의 변화를 겪으며, 이런 변화를 커버해주는 편안한 옷을 찾으면서도 어느 정도 엣지가 있기를 원한다.아이가 생기기도 하고 모임도 많은 이들은 튀지 않으면서 스스로 돋보일수 있고 원단도 좋은 옷을 찾는다. 이러한 세세한 니즈를 7년간 축적한 데이터를 통해 파악, 디자인에 반영한다.
‘시크헤라’는 동대문에서 옷을 사서 오픈마켓에서 파는 형태로 처음 시작됐다. 처음 3년간은 매출이 아예 없었다. 김종진 대표는 “내가 좋아하고 내 눈에 예쁜 옷을 팔면 잘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의 옷을 원하는 가격대에 팔아야만 그들이 지갑을 연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 깨달았다. 그때부터 자신을 버리고, 소비자의 눈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자체적인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했다. 2년이 지나자 11번가, G마켓, 옥션의 여성복 매출 1등을 할 정도로 매출이 많이 올랐다. 여성의류 쪽만 100억 가까이 매출이 나왔다.
현재 회사 매출의 80-90퍼센트는 직접 제작한 옷에서 나온다. 나머지 10-20퍼센트는 시장에서 사입한 옷들이다. 김 대표와 직원들은 제품 기획을 위해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해외 출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해외컬렉션이나 런웨이를 참고해 컬러나 원단, 슈즈나 액세서리 등 전체적인 느낌이나 트렌드를 읽어낸다. 다양한 자료를 종합해서 시즌 전에 미리 방향을 결정한다.
이렇게 미리 움직이면 다소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원단 등이 시즌 6개월 전에 미리 시장에 나와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대한 시즌에 맞춰 제작을 진행하고, 꼭 제작하고 싶은 제품이 있으면 실을 직접 짜서 쓰기도 하는 등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시크헤라’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브랜드로도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기존 쇼핑몰보다 조금 높은 가격에 훨씬 좋은 원단을 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원단은 가격에 따라 품질이 천차만별인데, 고객들은‘이 옷이 얼마 넘으면 안 산다’는 심리적인 저항선이 있다. ‘시크헤라’는 좋은 옷을 만들면서도 가성비를 충족시키기 위해, 옷의 퀄리티를 먼저 맞춘 후 너무 비싸면 마진을 낮추는 방법으로 가격을 책정한다. 소비자들이 천원짜리 옷을 이천 원에 판매하는 것보다, 만 원짜리를 옷을 만이천 원에 판매할 때 가성비가 좋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시크헤라’의 경쟁력이 여기에 있다.
이처럼 트렌드와 니즈를 반영한 디자인과 합리적 가격대를 제시하는‘시크헤라’의 제품은 중국, 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도 인기가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상표권 문제가 생겨서 5천 개 온라인 업체가 ‘시크헤라’ 이미지를 내걸고 판매를 하고 있을 만큼 반응이 좋다. 싱가폴 시장에도 약 두 달 전부터 진출하자마자 순위권에 들었으며, 일본에서도 오프라인 매장 등 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종진 대표는 대만과 홍콩 등 중화권에도 조만간 진출할 계획이며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타겟을 정해놓고 니즈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방식을 쓰다 보니, 각 나라에도 딱 맞는 니즈를 가진 고객들이있다. 어느 나라나 3, 40대의 고민은 똑같다. 체형은 변했고 요란한 옷은 못 입는데 예쁘고 좋은 옷을 입고 싶고, 가격은 너무 비싸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분들이 ‘시크헤라’를 보고 내 브랜드를 찾았다고 느낀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결합,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맞춤형으로
‘시크헤라’는 오픈마켓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안정적으로 성장해 왔다. 티몬, 쿠팡,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 초기에도 여성의류 카테고리에서 매출 탑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김 대표는 가지고 있었다. 업체끼리 제살 깎아먹기 식으로 싸우는 소셜 커머스 생태계를 보며 ‘내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결국 ‘시크헤라’를 론칭해 온라인 쇼핑몰 시장에 진입했고, 7년차에 단일브랜드로 300억 원 매출을 올렸다. 그의 판단은 맞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셜커머스에서 남성복 및 빅사이즈 카테고리를 맡았던 동기들은 지금 모두 사업을 접은 상태다.
당시 “거의 막차를 탔다”고 생각한다는 김 대표는, 국내 온라인 쇼핑몰의 변천사를 3단계로 나눠서 설명했다. 기존 오픈마켓을 이용한 1세대 쇼핑몰은 사입한 옷을 가져다 팔았지만 컨셉이 없었고, 그 다음에 등장한 2세대 쇼핑몰은 컨셉에 맞게끔 큐레이션하는 능력이 있었지만 제작 능력이 부족했다. 김 대표는 “지금이 2세대 막바지에서 3세대로 넘어오는 시기”라고 짚었다. 3세대는 고객들이 원하는 작은 디테일을 상품에 녹여내서 직접 제작해서 팔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이며, 결국 그들이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온라인 쇼핑몰의 메가 트렌드는 ‘개인 맞춤’이다. 도매상에서 옷을 사입해 판매하는 기존 2세대 쇼핑몰은 이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동대문에서 개인 맞춤 옷을 구매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이제 여러 쇼핑몰 을 비교해, 비슷한 제품이면 가장 저렴하게 파는 곳에서 구매한다. ‘시크헤라’의 경우 브랜드 론칭 이후 7년간 쌓아온 소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좋아하는 디자인, 원단, 컬러, 핏 등을 꼼꼼하게 옷에 반영한다. 그렇게 하면 그 옷은 한 군데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찾는 고객이 생긴다.
‘시크헤라’는 이처럼 단순히 옷을 떼다 파는 쇼핑몰이 아니라 기획에 제작까지 하는 브랜드를 지향한다. 그러나 기존 의류 브랜드와는 차별점이 있다. 기존 브랜드들은 시즌 전에 미리 컨셉을 잡고 옷을 제작하다 보니 트렌드를 반영하는 속도가 느리다. 몇몇 하이엔드 브랜드를 제외하고 는 품질 면에서 독보적인 차별성을 보이지도 못한다. 그걸 깨달은 소비자들은 점차 기존 의류브랜드에서 트렌드를 기민하게 반영하는 3세대 쇼핑몰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자라나 유니클로 같은 패스트 패션 역시 트렌드를 기민하게 반영하지만, 아직까지는 광범위한 시장을 모두 같은 제품으로 커버한다는 한계가 있다. 지역별로 또한 나라별로 체구도 다르고 원하는 디자인이나 컬러도 다 다르기 때문에 현지화가 필요한데, 몸집이 큰 글로벌 SPA는 아직거기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에 반해 ‘시크헤라’는 한국의 3, 40대가 가지는 니즈를 파고든 로컬라이즈된 브랜드를 추구한다.
‘시크헤라’는 여기서 더 나아가 유통과 마케팅 전반을 모두 데이터 기반으로 맞춤화 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맞춤평 웹 페이지가 그 예다. 온라인에 쌓이는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고객의 검색패턴,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 좋아하는 패션 아이템, 구매까지 걸리는 시간, 실제 구매금액까지 모두 AI에 넣어서 고객을 약 20-30개 그룹으로 세분화(세그멘테이션화)하는 전략이다. 그래서 어떤 고객이 쇼핑몰에 접속했을 때, 어떤 그룹에 속하는 고객인지 먼저 분류하고 그 그룹이 좋아하는 가격대, 상품, 프로모션으로 메인 페이지가 뜨게 하는 식이다. 같은 사이트라도 접속자에 따라 30개의 다른 페이지가 보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스마트폰 이용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모바일도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관계관리)으로 전환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 전 고객을 대상으로 세일한다고 푸시알람이나 프로모션 문자를 보내는 건 이제 의미가 없다. ‘시크헤라’는 현재 고객 한명 한명이 원하는 프로 모션을 파악해서 나만 이런 혜택을 받는 것처럼 맞춤형으로 SMS를 보내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결국 패션 쪽도 데이터를 잘 활용해야 미래가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엔터테인먼트와 시너지 도모해 토털 브랜드로 도약
‘시크헤라’는 백화점에서도 러브콜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브랜드 자체마진이 30%대인데, 백화점 수수료로 30%를 지불하면 이윤이 안 남기 때문에, 백화점 입점은 보류중이다. 다만 김종진 대표는 오프라인 몰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옷의 원단이 좋기 때문에 만져볼 수 있는 오프라인에서 강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마시는 블렌딩 티,양말, 자체 제작한 액세서리 등 의류 외에도 다양한 제품이 있고, 리빙이나 다이어트 카테고리도 준비하고 있다. 오프라인에 ‘시크헤라’ 숍을 열게 되면 필요한 게 다 있는 토털 브랜드 숍이 될 전망이다.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여성 케어 브랜드로 나아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시크헤라’는 영화 예고편 같은 독특한 광고 영상으로도 주목받았다. 영화감독 경력이 있는 김종진 대표는 상품 이미지와 가격만 보여주는 기존 광고 대신 새로운 광고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번 영화 예고편 광고가 끝나면 디올이나 라코스테 같은 이미지 광고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쌓아온 경력을 활용하면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도 있다. 하고 싶은 게 명확하게 있는데 기술적으로 구현이 안될 때다. 그리고 산업이 발전하는 만큼 정책이 못 따라올 때 아쉬움도 크다. 대부분의 국내외 브랜드와 마찬가지로‘시크헤라’도 여러 원단 업체와 봉제 업체의 손을 빌려 제품을 제작하는데, 직접 원단을 사고 공장을 안 돌린다는 이유로 제조업 등록이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가장 기뻤던 순간은 잘 만든 제품이 고객들에게 인정받았을 때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시크헤라’의 밝은 앞날이 엿보이는 듯했다.
© 패션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