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패션위크 참가였습니다. 티비에서만 보던 모델들이 눈앞을 걸어다니는게 신기했고, 연예인 분들이 왔을땐 많은 포토분들이 플래시를 팡팡 터트려주셔서 어두운 쇼장이 대낮같이 환해지기도 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패션 인플루언서 분들이 멋있게 앞자리 앉아계시는 모습도 봤구요. 몇몇 브랜드는 앞으로도 계속 쇼를 챙겨볼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한국에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이너 분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인터뷰로 만나보고 싶은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어떤 바이어 분이 서울컬렉션 트렌드를 스트릿 + 아방가르드로 딱 나눠서 정리해주시더라구요. 물론 둘중 어느 쪽에 들지 않는 독보적인 브랜드도 있지만 얼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방가르드한 쪽을 바이어들이 많이 찾으시는 것 같더라구요. 스트릿은 애매하게 했다가는 해외쪽 따라했다는 평을 받기 십상이나... 그래도 한국만의 느낌이 있다고 전 생각했습니다.
트레이드가 일어나는 지하 쇼룸도 슬쩍 가봤는데, 해외에 이미 알려진 브랜드들은 쇼룸도 복작복작했습니다. 푸시버튼은 역시 인기가 많았고요. 부리는 아예 외국인 직원 분이 바이어 응대를 맡고 계셨습니다.
시즌마다 컬렉션 내시고 쇼 하시는 디자이너 분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리뷰 쓰시는 기자분들, 사진찍으시는 포토분들에게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아래 리뷰는 그냥 대략적으로 이런 브랜드가 있었고 이런 느낌이었다는 것만 참고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DAY 1
THE CENTAUR
예란지 디자이너가 2008년 론칭한 더 센토르의 이번 컬렉션 주제는 ‘공산주의적 감수성과 프로페셔널리즘의 꽃망울’이다. 블랙과 화이트 베이스의 컬러에 네온, 그린, 민트, 연한 스카이블루 컬러를 활용해 스포티한 소재와 페미닌한 밀리터리룩을 섞었다. 실크 소재의 의상으로 여성스러운 감수성을 드러냈으며, 레깅스, 브라톱, 조거 팬츠로 스포티함을 가미했다. 플로럴 패턴 바디슈트와 트레이닝 슈트를 매치시키거나 드레스 안에 와이드팬츠를 매치해 믹스매치룩을 선보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이름을 딴 더 센토르는 매번 상반된 개념을 아슬아슬하게 충돌시킨다. 이번 컬렉션 주제에 대해 예란지 디자이너는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프로페셔널리즘이고, 지금 우리에게 서려있는 공산주의자적 감수성으로부터 매력적으로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로 위로가 되는 옷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전했다.
DOZOH
잘 재단된 미니멀한 화이트 룩에 점차 원색의 컬러가 가미된다. 쇼 후반으로 갈수록 무대는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지난 시즌 교도소 컨셉으로 쇼를 선보인 디자이너 조동욱은 이번에는 사이보그 팩토리로 팬들을 초대했다. 공장에서 사이보그의 몸통과 팔, 다리, 관절 등이 조립되는 과정을 보며 의상들도 사이보그의 부품처럼 각각 조립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밝힌 그는, 자켓과 소매의 일부가 탈착해 다른 의상에 조합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버튼 장식 소매 벨트로 밀리터리 룩의 무드도 가미했다. 선명한 컬러감과 아노락, 후디를 통해 스포티즘을 표현했으며,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공장 사이보그의 어두운 느낌을 살렸다. 도조는 이번 시즌 여성복 비중을 전보다 늘려 바이어나 소비자의 여성복 니즈를 충족시키고자 했다. 또한 남성 모델들에게 플리츠 스커트와 롱드레스를 입혀, 성별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중성적인 룩을 제시했다.
KUMANN YOO HYE JIN
쿠만유혜진의 이번 시즌 여성복은 미니멀하면서 흔하지 않은 테일러링의 진수를 보여줬다. 부드러운 어깨라인의 볼륨 소매가 주를 이뤘으며, 무릎길이의 팬츠와 스커트로 전체적인 라인을 잡아줬다. 곡선의 소매라인과 직선의 허리 및 스커트 라인이 조화를 이뤄 지루하지 않은 실루엣을 만들어냈으며 메시 소재, 쟈가드 원단 등 다양한 소재를 덧대 변주를 줬다. 단색의 룩에는 셔링을 잡아 포인트를 주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짧은 기장의 트러커 재킷은 새롭고 신선한 시도로 주목된다. 웨어러블과 아방가르드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놓치지 않는 쿠만유혜진의 이번 시즌 테마는 ‘네오 리얼리티: 리얼리티의 재구성.’ 현실에서의 착용가능성은 살리면서도 건축적이고 구조적인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이번 컬렉션을 한 마디로 잘 설명해 준다.
R.SHEMISTE
여러 겹을 덧댄 체크는 노마드의 느낌을 물씬 풍겼고 펑키한 캐모플라주 자켓에 매치한 꽃무늬 레이스는 절망 속에 피어나는 희망을 보여주는 듯했다. 알쉬미스트의 이번 컬렉션 주제는 ‘War is Over, Get Real World.’ 전쟁 포로로 잡힌 부유한 계층의 사람이 가지고 있던 루비를 집어삼키고 배변하는 과정을 통해 전쟁 후의 재기를 다짐했다는 에피소드가 컨셉 카드에 담겼다. 전쟁이 불러온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고자 한 이번 컬렉션은 다양한 소재와 패턴, 디테일이 겹겹이 레이어드 된 그런지룩으로 선보여졌다. 데님과 모슬린의 조화, 애니멀 프린트와 플라워 패턴의 교차가 전쟁의 상처와 전쟁 후 삶을 향한 희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원지연과 이주호 디자이너는 스트릿 무드를 감각적으로 풀어내면서도 고유의 컨셉을 통해 피스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했다. 슈즈 브랜드 캠퍼, 갤럭시 휴대폰, 쌤소나이트 러기지와의 콜라보레이션은 쇼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CARUSO
전통 옷을 팝한 색감으로 재해석하고, 독특한 실루엣과 디테일을 연출했다. 장광효의 남성복 브랜드 카루소는 500년 전 김시습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은 여성들에 대한 애도를 컬렉션에 담아냈다. 그러나 컬렉션은 마냥 비애로 차있지 않다. 전통 색상인 비취색과 청동색에 와인, 퍼플, 핑크를 섞어 생동감을 줬다. 베이비핑크색 자켓에는 하늘색 소매로 포인트를 줬다. 발목이 드러나는 로퍼에는 색동 방울을 달아 경쾌함을 더했다. 퇴계이황을 닮은 인물 프린팅은 글리터를 더해 눈길을 끈다. 얼핏 심심해 보이는 데님과 자켓에는 한복의 곡선을 연상시키는 라인을 자수로 넣었다. 컨템포러리한 실루엣과 완벽한 컬러 배합은 절로 아름답다는 탄성을 자아낸다. 장광효만이 연출할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다.
DAY 2
YOUSER
이무열 디자이너의 유저는 이번 시즌 매끈한 소재와 레터링으로 미래적인 감각을 살렸으며, 아웃도어에 사용될 법한 스트링을 다방면으로 활용해 해체주의적인 기조를 이어갔다. 루즈하게 밑으로 내린 허리선과 골반에 두른 힙색, 버킷햇으로 스트리트 무드를 강하게 드러냈다. 자칫 촌스럽거나 지저분하지 않게 스타일을 잡아준 것은 네이비, 화이트의 기본 컬러에 네온 컬러를 매치한 깔끔한 컬러 감각. 쇼의 오픈을 알린 뒷배경의 네온 컬러 조명과 머천다이즈라는 레터링이 들어간 첫 번째 드레스가 유저의 이번 시즌 컬렉션 테마인 ‘과대포장’과 ‘과대광고’를 시각화했다. 현대사회에 흔한 과대포장과 과장광고를 표현하기 위해, 벌키한 라인의 오버사이즈 상의와 앞뒷면이 다른 언발란스 룩이 선보여졌다. 또한 나이키와의 협업으로 영한 감각을 살렸다. 스트링은 장식적인 요소로 늘어뜨리기도 하고 데님의 윗단과 밑단을 지그재그로 연결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MUNN
‘낯설게 하기’라는 철학으로 매 시즌 전개하고 있는 한현민 디자이너의 뮌은 이번 시즌 ‘Remembrance(추억)’라는 주제로 90년대 문화를 런웨이에 펼쳐놓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컬렉션은 90년대를 주름잡던 재패니메이션이나 워크맨, 겜보이, 동네축구를 모티브로 잡았다. 런웨이를 빠르게 오간 모델들은 워크맨을 가지고 놀던 90년대 소년을 모던하게 재해석한 모습이다. 쓰리 버튼의 스트라이프 정장을 오버사이즈로 입거나, 정장 아래 반바지를 입고, 축구조끼를 뒤집어 입거나, 아노락 밑에 꽃무늬 반바지를 매치하는 식으로 현실의 일상과 가상세계를 혼합했다. VR 헤드셋과 얼굴을 덮은 가면은 영화에서 VR게임을 하는 모습에서 착안했다. 충전재 대신 꽃잎을 넣은 패딩과 원색의 레터링이 들어간 쌀포대는 브랜드의 ‘낯설게하기’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한현민의 이번 컬렉션은 90년대를 그만의 방식으로 재조명한 결과물이다.
PUSHBUTTON
올해 런던패션위크에 참가한 박승건 디자이너의 푸시버튼은 이번 컬렉션을 통해 브랜드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총집합했다. 양쪽이 다른 비대칭 실루엣, 남녀 구분이 없는 젠더리스 룩, 어깨 퍼프가 강조된 오버사이즈 실루엣, 속임수 패션이라고 불리는 트롱프뢰유까지, 푸시버튼만의 독특한 디테일이 SS 시즌에 맞는 화사하고 달콤한 컬러와 함께 런웨이를 채웠다. 실루엣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비조(Tab) 의상부터 한 쪽을 잘라낸 언발란스 바지, 패니백처럼 보이는 치마, 앞뒷면이 다른 머스타드 색상의 드레스가 이목을 끌었으며, 비디오게임 그래픽이 들어간 티셔츠는 브랜드가 사랑하는 80년대를 불러낸다. 소재와 패턴의 믹스매치가 쇼의 재미를 더했고, 스커트를 입은 남성모델, 양갈래 포니테일의 여성 모델들은 긴 다리를 드러내며 몽환적인 관능미를 발산했다.
SONGZIO HOMME
한 시즌 앞서서 2019SS 컬렉션을 선보인 다른 쇼들과 다르게 송지오옴므는 ‘씨 나우 바이 나우’ 시스템을 도입해 바로 구입할 수 있는 2018FW 컬렉션을 선보였다. 오프닝은 늘 그랬듯 배우 차승원이 장식했다. 한쪽 소매만 끼운 자켓에 반대쪽 어깨에는 남성 얼굴의 자수가 수놓였다. 송지오옴므 컬렉션은 동양적인 우아함을 갖춘 ‘도령’을 뮤즈로 삼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화려하고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내면을 갖춘 남성을 꽃 자수 등으로 표현했다. 옷깃을 과장해 넓힌 피코트와 여유로운 실루엣의 카멜 코트, 허리선에 맞춰 늘어뜨린 벨트는 동시대적인 감각을 예리하게 잡아냈다. 송지오만의 디테일이 돋보이면서도 데일리로 입기에 손색이 없고, 거기다가 우아함과 클래식함까지 놓치지 않은 이번 컬렉션 역시 도회적인 남성을 그려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HAN CHUL LEE
제네레이션 넥스트를 거쳐 텐소울로 발탁된 디자이너 이한철의 한철리는 이번 시즌 두 번째로 서울컬렉션 무대에 섰다. 이번 컬렉션에서 한철리는 깔끔하게 떨어지는 테일러드 실루엣을 보여줌과 동시에 절개선과 소매 끝단을 장식한 일정한 간격의 단추와 스터드 장식, 진주와 스터드를 연결한 목걸이를 통해 원부자재와 액세서리의 힘을 보여줬다. 특히 모든 룩에 반복 변주된 목걸이는 전체 컬렉션에 통일감을 부여하는 데 한 몫 했다. 고급스러운 실크 셔츠 혹은 클래식한 재킷에 워커와 스터드 목걸이를 더하자 펑크 룩이 완성됐다. 작업복을 떠올리는 화이트와 블루 데님 소재가 눈에 띄었으며 칼로 베고 지나간 듯한 날렵한 슬릿 디테일이 디자이너의 개성을 살렸다. 붉은 에나멜 레터링이 들어간 항공 점퍼, 캐모플라주 바지와 베스트는 전체적인 룩에 스트릿의 무드를 더했다.
DAY 3
MOHO
모호는 이번 패션위크 통틀어 가장 실험적인 쇼를 선보였다. 지난 시즌 제네레이션 넥스트 쇼를 거쳐 서울컬렉션에 갓 데뷔한 디자이너의 패기가 느껴지는 쇼였다. 이번 시즌 이규호 디자이너가 모호를 통해 내보이는 컨셉은 ‘숭고(The Sublime)’다.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적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규호 디자이너는 ‘불쾌에서 나오는 쾌, 불쾌와 쾌가 혼합된 강렬하고 모순된 감정’을 숭고라고 정의했다. 어떤 형상적인 이미지의 떠올림도 배제하고 철저하게 색, 재료, 선, 배열을 구성으로 환원하는 형식을 사용했다. 모델들은 얼굴에 페인팅을 하고 오간자 소재의 의상, 보형물을 넣어 부풀린 유틸리티 팬츠와 석고로 몸체를 본뜬 듯한 상의를 입고 무대를 걸었다. 팔에는 아티스트 손종준이 만든 기계 장치를 착용해 로봇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추상주의 패션이라는 작가의 브랜드 정의답게,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KIMMYJ
김희진 디자이너의 키미제이는 이번 시즌 분단된 한반도에서 최근 맞는 변화를 컬렉션의 큰 주제로 잡았다. 분단된 땅 양쪽에서 시작된 변화가 전세계로 파급되는 현상을 ‘기묘한 변화’라는 뜻의 ‘기환’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날염 프린트가 흩뿌려진 반투명 후드, 겹겹이 주머니를 단 셔츠와 재킷, 독특한 질감의 밸루어 팬츠와 부츠컷, 카고 팬츠, 가죽 팬츠에 매치한 군용 워커가 컨셉을 드러냈다. 전반적으로 컬러와 실루엣이 지난 시즌보다 절제된 데 비해 몸에 꼭 맞는 옷에 프린트와 소재로 변화를 줘서, 한반도에서 조용하고 느리게 꿈틀대는 변화의 기운을 담아내려 한 듯 보인다. ‘본질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연구하고,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브랜드 소개에 걸맞게, 조용하지만 본질적인 변화를 밀리터리 웨어와 스트릿웨어의 믹스매치를 통해 감각적으로 보여줬다.
BIG PARK
어깨가 둥근 볼륨 소매, 러플 장식과 하늘거리는 플레어스커트, 옅게 흩뿌려진 플라워와 백조 프린팅으로 봄의 태동을 알리는 듯한 컬렉션이었다. 박윤수 디자이너의 빅팍은 이번 시즌 ‘콘 아페토’라는 테마로 스위스 레만 호수 여행 중 마주한 동식물과 낭만 가득한 풍경을 아트워크로 풀어냈다. ‘콘 아페토(Con Affetto)는 애정을 갖고 연주하라는 음악 지시어다. 19번째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하는 빅팍은 2012년 브랜드 출시 이후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 패션위크를 오가며 빠르게 성장했다. 이번 컬렉션에서도 시그니처 오버사이즈 자켓과 물흐르는 듯한 스커트 헴라인, 꾸뛰르적인 실루엣을 통해 빅팍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여기에 생동감 넘치는 컬러 나염을 입힌 스트라이프와 도트 패턴, 백조, 꽃, 나뭇잎 등의 패턴으로 자연이 선물한 마음의 여유, 치유의 시간들, 새로운 경험에 대한 낭만적인 열정을 담았다.
YCH
윤춘호 디자이너의 YCH의 이번 컬렉션 테마는 ‘빨강머리 앤’이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싶어한 빨강머리 앤의 로망을 담아 로맨틱 컨트리 룩을 완성했다. 하얀 레이스가 달린 네이비색 꽃무늬 셔츠에 연한 데님바지, 퀼팅 브라운 백을 매치한 룩은 시골의 소박함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드러냈다. 셔링과 레이스, 파스텔컬러를 가미한 룩이 이어지며 컨트리 감성을 모던하게 재현했다. 안경, 볼드한 귀걸이, 끈과 스트랩을 활용한 글래디에이터 샌들이 포인트로 활용됐고, 트렌치코트, 시폰 레이스, 리본을 목에 묶은 오프화이트 컬러 모자는 전원지역의 우아함을 표현했다. 광택 있는 가죽 소재의 점프슈트와 원피스도 모던하게 응용한 컨트리 룩의 재해석이었다. 티셔츠의 ANNE이라는 래터링도 컨셉을 직관적으로 보여줬지만, 하이라이트는 풍성한 검정 레이스와 베이비블루 리본으로 양갈래 머리를 표현한 것. 윤춘호의 옷을 좋아하는 많은 셀럽이 프론트 로를 채웠으며 뷰티유튜버 이사배가 메이크업에 참여했다.
BOURIE
조은혜 디자이너가 2014년 런칭한 브랜드 부리는 부유할 ‘부’와 다스릴 ‘리’로 이뤄진 한자어다. 브랜드 이름에 맞게, 부리의 옷은 날아오를 듯 산뜻하면서도 잘 정리된 테일러링을 강점으로 삼는다. 이번 시즌의 쇼노트에는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는 차분한 거실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S/S시즌에 비해 한결 차분해진 컬렉션을 암시하는 듯했다. 실제로 블랙을 메인으로 하는 모노톤의 단선적인 피스들이 런웨이를 훑고 지나갔지만, 지루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특유의 선이 고운 테일러링, 비대칭 디테일, 아방가르드한 셔링과 주름이 브랜드만의 개성을 톡톡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넉넉한 실루엣의 젠더리스한 스타일은 시크함을 극대화시킨 것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패턴을 최소화했지만 포인트로 들어간 선홍색 스트라이프와 촘촘한 레오파드, 얇은 격자무늬는 쇼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DAY 4
DOUCAN
두칸의 최충훈 디자이너는 한 번 보면 뇌리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유니크한 옷을 디자인한다. 두칸은 강한 오리엔털 판타지 감성을 바탕으로 화려한 프린트를 전면에 내세우는 브랜드다. 이번 시즌의 테마는 ‘37.2 Breathtaking!’으로 잡았다. 열정적 사랑에 빠졌을 때의 체온이 37.2도라고 보고 이런 원초적인 사랑의 아름다움을 컬렉션에 담고자 했다. 이번 시즌 사용한 도트 패턴과 플라워 패턴은 전과 다름없이 화려하면서도 로맨틱하고 감성적인 무드를 한껏 자아냈다. 진한 블랙과 선명한 레드의 조합, 아이라인과 립을 강조한 메이크업은 자포니즘에서 영향을 받은 듯했고, 하늘거리는 플리츠 스커트와 태슬을 단 액세서리는 보헤미안의 느낌을 풍겼다. 디자이너가 가진 판타지와 예술세계를 가감없이 보여주면서도 벨트와 스트랩, 오프숄더 등의 디테일을 통해 여성들이 한번쯤 시도해보고 싶을 춘하시즌 스타일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컬렉션이었다.
D-ANTIDOTE
해외 프레스나 바이어라면 디앤티도트의 쇼를 통해 서울의 밤에 한껏 심취했을 것이다. 네온사인이 현란한 서울의 밤거리를 표류하는 듯한 화면을 바탕으로, 래퍼 및 댄스 크루와 협업한 무대가 연출됐다. 박환성 디자이너의 디앤티도트는 ‘SEOULONDON’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통해 젠더 플루이드한 스트릿 패션과 하이 컨템포러리 럭셔리를 아우르는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컬렉션의 컨셉은 ‘The Storm&Stress(질풍노도의 시대)’로, 2000년대 영국 하위문화 대표 아이콘인 차브(chav)를 차용해 한국형 차브를 탄생시켰다. 휠라와 협업한 이번 컬렉션은 힙색, 조거팬츠, 운동화로 스포티하게 연출했으며 휠라의 네이비 컬러에 네온 컬러를 포인트로 섞어 춘하 시즌에 어울리는 스트릿 무드를 연출했다. 길게 늘어뜨린 벨트에는 역동적인 레터링을 삽입해 컨셉을 살렸다. DJ의 비트에 맞춰 춤을 추며 등장한 박환성 디자이너를 보니 그가 탄생시킨 한국의 차브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KYE
디자이너 계한희가 이끄는 브랜드 카이는 감각적 디자인과 예술적 모티브를 상업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으로 주목받는다. 뉴욕에도 진출해 이름을 알리고 있다. 유니크한 디테일과 컬러 감각이 돋보이는 카이의 이번 컬렉션 주제는 ‘현실로부터의 도피(I’m going to my happy place).’ 데님, 코르셋, 싸이하이 부츠가 편안하면서 멋스러운 이지웨어로 재탄생했다. 펑키한 느낌을 주는 펀칭과 스티치는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컬러와 실루엣으로 풀어내고, 부들부들한 소재의 데님은 고무줄 바지로 만들었다. 패치워크한 데님의 찢어진 헴라인까지 부드럽고 유해보이도록 연출해, 디스트로이드 진의 이미지를 위트 있게 비틀었다. 컬렉션의 주 컬러는 팬톤에서 발표한 올해의 컬러인 울트라 바이올렛을 연하게 중화시킨 라일락 컬러. 한땀한땀 바느질한 듯한 스티칭의 트렌치 코트, 어깨선과 팔선을 루즈한 셔링이 연결하는 로맨틱한 원피스는 유행예감마저 든다.
LIE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여성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Amelia Earhart)가 2000년대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라이의 이청청 디자이너의 이번 시즌 영감은 여기서 시작됐다. 그가 상상한 아멜라이 에어하트는 전문직 여성의 강인함을 유지하면서도 페미닌하고 컬러풀한 룩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투버튼 코트와 깃이 올라간 숏자켓, 항공점퍼가 컨셉을 절묘하게 표현했고, 파스텔 색상이 패치워크된 상의는 하늘에 떠있는 것 같은 여유와 감성을 담아냈다. 얇은 스트랩을 목에 감아 포인트를 준 룩은 승무원을 연상시켰으며, 어깨와 골반에 나긋한 셔링을 달아 비행을 연상시키는 룩도 이어졌다. 하이웨이스트 팬츠는 다양한 컬러와 실루엣으로 변주돼 커리어우먼의 데일리룩을 제시했다. 국내브랜드 최초로 뉴욕과 파리에서 동시에 컬렉션을 진행한 이청청 디자이너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포브스, 뉴옥 타임즈, 나일론 등 현지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CHOIBOKO
디자이너 최복호는 맞춤복 시대, 기성복 시대에서 온라인 소셜미디어 시대까지 상전벽해를 겪어온 패션계에서 하나의 브랜드를 45년간 이끈 거목 같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45주년 기념 컬렉션의 테마를 ‘소나무’로 정한 것도 놀랍지 않다. 다만 걸그룹 소나무와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선보인 점, 쇼의 대제를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리부트 개념을 적용해 ‘CHOIBOKO REBOOT’로 정한 것은 신선하다. 브랜드만의 가치와 정체성은 지키되,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실제로 컬렉션에는 수년간 입체패턴을 연구한 최복호의 경력이 십분 발휘되면서도, 라이프웨어로 진화하는 패션의 현주소가 반영됐다. 기존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아티스틱한 프린트가 네오프렌 소재를 만나 선을 제대로 살린 옷으로 탄생했다. 여기에 편안함을 가미한 루즈핏 실루엣에 플랫폼 슈즈를 매치해 애슬레저 트렌드를 겨냥했으며, 가방, 스카프, 인형을 활용해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쇼를 완성했다. 하나의 테마를 코트, 재킷, 베스트 등 다양한 복식으로 풀어 보여주는 패턴 인버전 방식을 사용해 새로운 의복 생산 방식까지 제시했다.
DAY 5
LANG&LU
2013년 론칭돼 화려하고 개성 강한 옷으로 돋보이고 싶은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해온 랭앤루의 이번 컬렉션 역시 컬러와 경쾌함으로 가득했다. 박민선, 변혜정 디자이너가 정한 이번 시즌 주제는 앨리스의 원더랜드를 패러디한, 즐거움으로 가득찬 펀더랜드(funderland)다. SNL 안용진 작가와의 콜라보 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과감한 그래픽과 팝컬러, 풍성한 볼륨과 러플의 향연이 펼쳐졌다. 80년대 레트로 감성을 표현한 디스코 음악이 쇼장을 채웠다. 춘하 시즌에 맞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트럼프, 다이아몬드, 마블링 등을 과감한 패턴으로 풀었고, 빅사이즈 리본과 퍼프소매로 동심의 세계를 표현했다. 스윔수트 위에 시스루의 드레스와 레인코트를 매치한 룩도 돋보였다. 반짝이는 비즈 스커트와 촘촘한 러플로 장식된 파티룩이 연이어 나오다가 마침내 러플로 온몸을 감싼, 걸어다니는 파티용품같은 드레스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랭앤루의 강점이 확실히 드러난 유쾌한 컬렉션이었다.
BNB12
B급 정서의 복고 패션을 선보이는 BNB12(비앤비트웰브)는 ‘불나방과 함께 춤을’ 이라는 테마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불나방 사이공 클럽’이라는 글자를 배경으로 8090시대의 댄스가요와 레이저가 흘러나왔다. ‘춤’이라는 흘림체를 춤추는 사람으로 그래픽화한 패턴이 사용됐고, 슬릿 디테일의 통이 큰 누빔바지 같이 한복에서 차용한 소재와 디자인이 반복됐다. 모시나 오간자 소재, 도깨비 프린트가 자주 등장했고 천연색을 사용한 체크 셔츠는 창호지를 떠올렸다. 오방색 점을 찍은 메이크업도 위트를 더했다. 뒤로 갈수록 벨바텀 팬츠, 화려한 비즈 장식의 드레스, 벨벳 자켓 등 옛날 가요주점에서 입었을 법한 레트로 의상이 나왔다. 성인 모델과 키즈모델이 입은 하트모양의 누빔 볼레로를 봤을 때, 비앤비트웰브가 표현하고자 했던 건 가무의 민족인 우리 민족의 춤을 통한 화합이 아니었을까. 분명한 건 디자이너의 자유로운 생각을 맘껏 펼치겠다는 브랜드의 방향을 확실히 표현했다는 점이다.
GREEDILOUS
박윤희 디자이너의 그리디어스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옷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 팝스타 비욘세가 입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컬렉션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영국 팝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와인하우스처럼 뒷머리에 볼륨을 넣고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린 모델들이 런웨이를 걸어나왔다. 강렬한 원색의 컬러가 화려한 프린트를 만들어내며 80년대 복고 감성을 재현했다. 소매 끝이나 스커트 밑단에 페플럼 장식을 사용해 글래머러스한 실루엣을 만들어냈다. 쇼의 막바지에는 박윤희 디자이너와 방송을 통해 친분이 있는 배우 신현준이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데칼코마니 프린트 수트를 입고 걸어나와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솔직하고 자유분방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 했던 사람”이라는 박윤희 디자이너의 설명처럼 그라디어스는 또 하나의 워너비 여성상을 트렌디하게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UL;KIN
이성동 디자이너가 이끄는 업사이클링 브랜드 얼킨은 패션계의 화두인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브랜드다. 폐기된 미술 작품을 패션 가방으로 업사이클한 것을 시작으로 의류 라인까지 추가해 토털 브랜드로 전개하고 있다. 이번 시즌 컬렉션의 테마는 ‘Ever So Deep’으로 고요한 물속 깊이 누워 수면을 올려볼 때 더욱 깊숙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경험에서 착안했다. 무대에 오른 옷들은 체인과 물결 모양의 패턴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워싱된 데님과 윈드브레이커, 주름진 스웨이드 부츠 등 흘러내리는 듯한 실루엣의 광택 있는 옷들과 블루 계열을 활용한 컬러감으로 물이 흐르는듯한 컨셉을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잔잔한 체크무늬는 빈티지한 감성을 더했고, 패치워크된 옷들과 아트피스를 재활용한 가방은 브랜드의 핵심 철학을 그대로 옷으로 구현했다. ‘Ever So Deep’이라는 컨셉은 결국 자신을 돌아보고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자는 디자이너의 제안이다. 가치 소비를 하고 가심비를 추구하는 요즘 소비자들에게 얼킨은 하나의 완성된 컬렉션으로 이를 제시했다.
BEYOND CLOSET
비욘드클로젯의 이번 시즌 테마는 'viBe:vacation in Berlin'(바이브: 베를린에서의 휴가)다. 도시 속 휴가를 즐기는 디지털 노마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고태용 디자이너에 따르면 그는 베를린에서 보낸 휴가 기간 동안 업무와 여가 사이의 허물어진 경계를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그는 오피스웨어와 리조트룩의 경계를 허문 듯한 믹스매치 룩을 통해 컨셉을 표현했다. 정장 블레이저에 스윔팬츠나 조거팬츠를 매치하거나, 트렌치코트 안에 후드를 매치하는 식으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드러냈다. 컬러는 그레이, 베이지, 카키 등 도회적 무드를 주는 기본 컬러에 원색을 섞었다. 깔끔한 실루엣의 니트에는 그래픽으로 포인트를 주고, 치노팬츠와 같은 포멀한 아이템에는 여러 겹의 상의를 레이어드해 자유분방한 감성이 돋보이게 했다. 배우 겸 모델 이성경이 브랜드 여성 단독 모델로 참여해 컬렉션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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