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트렌드랩 강연에 다녀왔다.
김소희트렌드랩 에서 작년 연말 20대를 위한 무료 강연을 열었는데, 당첨이 되어서 다녀왔다. 당시에 도움을 많이 받은 강연이었는데 정리할 기회가 없었다. 강연은 압구정 640아트홀 이라는 도산공원의 소규모 아트홀에서 약 2시간 정도 진행됐다.
작년 3개월동안 각종 컨퍼런스를 다니면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말을 많이도 들었다. 거창한 말이지만 뜻은 뻔하다고 생각했다. 엔지니어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이 어떤 알고리즘을 만들고 분석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 강연을 듣고 나니 경영자를 비롯한 조직 전체의 사고방식이 바뀌는 과정으로 이해가 되었다.
이 강연이 특히 나에게 도움이 됐던 이유는 1)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회사 선택의 좋은 이정표가 되었고 2) 결국 다니게 된 IT 솔루션 회사의 미션과 비전을 더 명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현재 우리 회사의 mission statement에는 '고객사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돕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시장과 플레이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강연이었고 취준생에게도, 경영자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었다.
시장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트렌드 컨설팅을 오래 해온 김소희 대표님은 '경쟁 competition'이라는 패러다임이 지고, '생태계 ecosystem'이라는 패러다임이 뜨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경쟁사보다 잘하면 생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경쟁사보다 잘했는데 생태계 자체가 무너져서 망하는 경우도 있고, 생태계가 마구 성장해서 경쟁사도 나도 잘되기도 한다.
두 가지 사례가 있다. 하나는 1) 코닥의 사례. 필름 시장의 강자이던 코닥은 왜 망했나? 스마트폰으로 사진 공유가 쉬워지면서 필름을 인화해 사진을 보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 코닥에서 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을까? 아니다, 코닥은 누구보다 먼저 변화를 감지하고 거기에 대응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누구보다 빨리 진출했고, 자사의 강점을 살려 고기능 제품을 출시했다. 뿐만 아니라 필름 인화와 출력이라는 핵심 강점을 살려 디카 인화 출력을 해주는 키오스크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왜 망했을까.
코닥은 '우리 제품을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을까' 라는 경쟁 프레임에 갇혀, 생태계 전체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당시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를 출시하면서 사진 저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었다. 이는 사진 인화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코닥을 집어삼킬 만한 커다란 파도였다. 그러나 코닥은 애플을 직접적인 경쟁사로도, 유관 기업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생태계가 바뀌면 소비자도 바뀐다. 경쟁사가 움직이면 소비자가 바뀌고, 유관기업이 움직여도 소비자는 바뀐다. 이제 소비자만 봐서는 안되고 유관 기업, 경쟁사, 생태계에 참여하는 모두를 다 눈여겨봐야 한다. 내가 가진 강점보다는 시장의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누구한테 어떻게 팔 것인가'라는 기존 패러다임이 지고, 다음과 같은 질문이 부상하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내가 몸담고 있는 생태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두 번째 사례는 흔히 코카콜라의 경쟁사로 여겨지는 2) 펩시 콜라 의 사례다. 콜라 시장 만년 2위이던 펩시는 새 CEO인 인드라 누이가 취임하면서 매출액과 주가 면에서 모두 코카콜라를 앞섰다. 인드라 누이는 경쟁사인 코카콜라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대신 '음료 시장'이라는 생태계에 주목했다. 당시 스포츠 음료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펩시는 수많은 에너지 음료를 출시했다. 지금도 펩시라는 브랜드 안에 수많은 음료가 있고, 콜라에 국한되지 않은 사업을 펴고 있다.
인드라 누이는 이런 얘기를 남겼다.
지금은 초연결시대다. 경쟁자를 경쟁자로만 여기면 안된다.
내가 속한 생태계의 플레이어가 잘돼야 한다. 그러려먼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어떻게 시스템을 바꾸고 있을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애저(Azure)라는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기능을 제공한다. 이 중 많은 기능이 서드파티 앱의 형태로 제공된다. 우리 회사가 재무회계 시스템이 필요하다면, 애저에 들어가서 몇 가지 앱을 합치면 재무 회계 앱이 되는 식이다. 또 다르게 조합하면 이커머스가 되기도 하고, ERP가 되기도 한다. 흡사 레고와 같다. 각각의 앱은 앱을 개발한 회사에서 업데이트한다. 즉 각각의 플레이어가 진화하면서 애저라는 플랫폼 역시 무한 발전하는 것이다. 개별 세포들의 성장이 개체의 성장을 견인하는, 생태계의 개념과 맞물린다.
토푸기어(Tofugear)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쇼핑몰의 거울을 통해 터치만으로 옷을 입어보고 살 수 있는 기술을 기반으로 RFID, ERP등 각종 리테일 솔루션을 팔고 있다. 토푸기어의 CEO는 22살 여성이다. 전 세계를 돌며 고객을 모으고 있다. 그녀에게 솔루션을 직접 다 개발하고 업데이트하려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내가 개발을 왜 해? 이건 다 파트너십으로 모은 거야. 애저(Azure)에서."
남들이 쌓아놓은 성냥개비 위에 나의 성냥개비를 하나 얹으면 창업이 되는 세상. 그게 바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의 비즈니스 생태계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버에서 시도하는 클라우드 키친을 통해서 누구나 요리실력만으로 식당을 창업할 수 있다. 가게를 차리지 않아도, 조리기구를 사지 않아도 된다. 공유 주방 플랫폼에서 음식을 만들고, 배달 역시 우버의 플랫폼에 맡기면 된다.
웹 시장 역시 생태계 기반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한 때 수많은 웹 에이전시가 있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워드프레스로 사이트를 만든다. 워드프레스 내부에 여러 가지 앱이 있어, 사이트에 그대로 설치해서 사용하면 된다. 일명 플러그인이다. 워드프레스에 앱을 올려놓은 사업자들은 모두 자동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를 하고, 워드프레스 자체도 계속 자동으로 업데이트된다. 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웹사이트도 무한히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IT 산업은 이렇게 돌아간다. 윈도우 OS도, 어도비 프로그램도, 오피스 프로그램도 모두 자동 업데이트가 된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도 마찬가지다.
많은 디지털 리더들은 최고가 되기보다는 생태계가 되고싶어한다. 워드프레스, 애저가 되고 싶어한다. 내가 만든 생태계에 더 많은 플레이어가 들어오길 원한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모두 자신들을 '에코시스템'이라고 칭한다.
우리가 직면한 생산성의 문제
그런데 우리나라의 플랫폼들은 여전히 생태계가 되기보다는 최고가 되려고만 한다. 이런 환경에서 스타일난다와 같은 성공한 쇼핑몰 창업을 꿈꿔도 허들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카페 24가 제공하는 웹호스팅으로 쇼핑몰 사이트를 열었다고 치자. 쇼핑몰에서만 제품을 판매하다가 매출이 늘어서, 네이버에도 입점하기 시작했다. "쇼핑몰에 올리면 네이버에도 자동으로 올라갈 수 없어?"라고 묻지만 카페24는 안된다고 한다. 얼마 후 매출이 더 늘자 롯데몰에서 입점하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지금 네이버랑 카페24에 한번에 올리는데, 연동돼서 한 번에 올릴 수 없을까?" 안 된다고 한다. 이 사업자는 같은 제품을 네이버에, 카페24에, 롯데몰에도 올리는 노고를 매번 감내해야 한다. 여기에 인스타그램으로도 올리려고 한다면? 무신사도 입점하고 잘룰라도 입점한다면?
해외에는 카페24와 비슷한 Shopify라는 솔루션이 있다. API를 통해 여러 플랫폼에 한 번에 업로드가 가능하다. 플레이어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제임스 무어의 "Death Of Competition" 이론에 따르면 앞으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모든 기업은 다른 기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경제공동체에 속해 있다. 생태계는 플레이어에게 유용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플레이어는 생태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선순환이 일어나야 한다. 기업이 생태계를 형성하고자 한다면, 더 많은 플레이어가 영입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플레이어를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는 플랫폼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블록체인을 통해 농산물 원산지를 추적하는 기술이 대두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의 대형 마트인 월마트, 코스트코, 홀푸드가 모두 협업해서 블록체인을 연구하고 있다. 월마트, 코스트코, 홀푸드에 납품하는 한 명의 농부가 각각의 시스템에 모두 업로드하는 것은 너무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사이지만, 단말기와 시스템을 공유해 하나의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면 이 기술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은행마다 별도의 액티브X를 설치해야 한다.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협업하고, 표준 플랫폼을 구성하는 데 아직 익숙치 않다. 이렇게 해서는 노동집약적인 업무환경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다. 앞으로 더 큰 생산성을 위해서는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기업은 자신이 속한 비즈니스 생태계의 다른 플레이어로부터 얻는 기회에 집중해야 한다.
미래의 시장에서는 누가 무엇을 팔지 정해져 있지 않다. 지금의 강점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이 필요한 걸 만들어야 한다. 생태계가 주는 기회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가장 잘 실천한 게 샤오미다. 샤오미는 저렴한 스마트폰 제품 하나로 출발했다. 그런데 애플과 같은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려고 보니 매장을 채울 디바이스가 부족했다. 그래서 수첩, 노트, 탁자 위에 놓일 만한 조그만 소품 같은 것들을 구비했다. 샤오미는 직접 이 제품들을 제작하지는 않았지만, 제품을 제작하는 생산 공장들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었다. 또 양질의 공장들만 섭외해서 저렴하면서 퀄리티 있게 만들었다. 지금 샤오미를 가면 침대, 밥솥, 주걱 등 없는 게 없다. 해외 기사는 "샤오미는 점점 무지가 돼가고 있다"고 평했다. 애플의 경쟁사로 출발한 회사는 무지와 같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었지만, 매장 매출은 애플과 맞먹는 수준이 되었다.
비아그라 역시 신부전 개선제로 출시됐다가 발기부전 치료제로 더 알려졌다. 포스트잇은 풀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온 제품이다. 더이상 매출을 몇 프로 늘리겠다는, 시장의 톱이 되겠다는 구호는 의미가 없다. 소비자와 호흡하면서, 플레이어와 호흡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길이 열려가는지 보며 기회를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