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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Oct 03. 2022

기회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오늘도 책을 만듭니다] 23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없어서 한 끼 밥을 겨우 먹는데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계속 놀 수는 없지. 모아둔 돈도 바닥나고 있었다. 다시 일하기 위해 한곳 두 곳 지원하기 시작했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정말 뭘 해도 안 될 때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듯, 아무리 이력서를 넣어도 그 어디에서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 심지어 경력직이었는데도 말이다. 수십 장의 이력서를 쓴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큰 고배를 마신 것도 처음이었다. 늘 잘한다는 소리만 들었던 내 자존감은 하루가 다르게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공고를 발견했다. 교육 기업에서 초등학교 교과과정의 문항을 제작하는 일이라고 했다. 계약직이었다. 편집자를 우대한다고 하니 지원서를 냈다. 보수는 최저시급. 지금 몸 상태로는 야근이 필수인 책임감 넘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몸을 지켜보자는 마음이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와... 이게 얼마만의 합격 통보인지 세상이 달라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면접 일정을 맞출 수 없었다. 속상하지만 일정상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 생각하면 면접일 조정이 가능하냐고 왜 물어보지 않았나 모르겠다. 그땐 일을 하고 싶었지만, 반면에 다시 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렇게 보름쯤 흘렀을까. 어느 월요일 오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기 지원하셨던 네모 회사입니다. 혹시 취업하셨나요?”

“아, 아니요?”

“그럼 혹시 오늘 면접 보러 오실 수 있을까요?”

“네? 오늘이요?”

“혹시 다른 일정 있으세요?”

면접을 보러 오라니 분명히 기분이 좋기는 한데, 지금 당장이라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오전에는 일정이 있어서 빠르게 준비하고 가도 오후 3시쯤 될 것 같은데요, 괜찮으세요?”

그렇게 면접을 봤다. 담당자와 개인 면접이라 무겁지도 않았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지금 바로 업무 시작하실 수 있을까요?”

“지..금 바로요?”

당황의 연속이었다.

“다른 분들은 오늘부터 출근하셔서 업무 시작하셨거든요. 그중 한 분의 계약 내용이 저희와 맞지 않아서 갑자기 한 자리가 비었고요. 그러니 같이 업무 배우셔서 바로 시작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아니 갑자기 면접을 보자고 해서 왔는데, 바로 업무 시작하고 퇴근하라니... 이게 무슨 일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을 지나는 듯 답답하기만 했던 내 기류가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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