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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Aug 15. 2022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오늘도 책을 만듭니다] 22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던 날, 결국 품고 있던 사직서를 제출했다. 꿈을 이룬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그만둔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다. 책을 만들면서 저자들이 고생 많았다, 고맙다,라고 말해주면 마음이 녹던 터였다. 하지만, 그 힘으로 버티다가는 내 몸이 녹아버릴 지경이었다. 사직서 제출 후 수리되기까지가 너무나 험난하여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뿐인가. 퇴사가 결정된 후에도 지방 출장을 다녀왔고, 워크숍에서 누적된 신입사원 장기자랑까지 했다.

사실 이 회사 입사 전에 했던 건강검진에서 문제가 생겼다. 입사하자마자 입원이 필요했다. 이제 막 들어왔는데 입원이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겨우 휴가를 내었고 이틀 만에 복귀했다가 장염까지 걸렸다. 먹지도 못하는데 쉬지도 못하고 매일 야근하니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깡마른 몸으로 정신력으로만 버텼던 날들이다. 내게는 꼭 필요했던 퇴사였다.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여행도 즐겼다. 글자 그대로 살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체기가 느껴졌다. 점심으로 평소에 잘 맞지 않던 음식을 먹어서 그런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몇 주가, 아니 몇 달이 지나도 이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1년이 넘도록 먹지 못했다. 위장이 멈추었다. 그동안 스트레스 공격으로 너무 힘들었는지 위장도 일하지 않았다.

살이 너무 빠져서 병원에서도 큰 병을 의심했다. 38kg이라는 내 무게를 지탱하기가 어려워 다리가 후들거렸다. 유명한 의사가 있다는 병원을 돌며 각종 검사를 해도 결과는 정상이었다. 불행인 건지 다행인 건지 내 몸 어디에도 이상한 낌새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당장 너무 아파서, 물 한 모금, 처방받은 약조차 먹을 수 없었다. 

부교감신경에 문제가 생겨서인지 소화기관이 말을 안 들으니 수면장애가 생겼다. 끝없이 이어지던 불면의 밤은 우울증이라는 친구를 데려왔다. 아프고, 일상생활이 깨진 것만으로도 우울한데 그 감정의 크기가 커지니 거울로 본 내 모습은 사람 같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 몇 명만 만났다. 그들조차 어쩌다 이렇게 됐어?!, 라며 안타까운 반응을 보이니 그 시선에 또 상처받았다.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던 책도 한 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뇌가, 그리고 내가 죽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매일 출근하던 시간에 밖으로 나가 걸었다. 별안간 줄어든 몸무게 때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목이 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여 바람 인형이 된 것처럼 온몸이 흔들렸다. 그렇게 걷다가 등산로를 발견했다. 다음날부터 산으로 갔다. 부지런히 오르고 하산하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활짝 웃으며 씩씩하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충격이었다. 어르신들보다도 더 어두운 표정으로 생기 없는 내 모습이 몹시 부끄러웠다. 그리하여 다음 날은 더 밝은 표정으로 산에 올랐다. 어제보다 한 걸음 더 걸으며 보람을 느꼈다.


맨밥을 조금 먹을 수 있을 때쯤 신기하게도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면 걷는 양이 늘었다. 곧 책도 읽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 가서 내가 아픈 이유를 책에서 찾아 읽었다. 그 정보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글루텐이 없는 쌀 베이킹에 도전했다. 정보를 찾고 경험이 늘수록 기록이 필요하여 죽어 있던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남겼다. 일상을 기록하니 점차 무용해 보였던 나도 쓸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망가져 피폐했던 2년이었다. 그동안 내가 얻은 건 가족, 친구 그리고 기록하는 습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을 쓰고 그걸 눈으로 다시 보던 게 나를 보살피는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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