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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Dec 14. 2021

'살구'  이야기



어릴 때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고향의 봄(작사 이원수, 작곡 홍난파)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 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한 여름 신작로를 따라 걸어가면 어디선가 익은 과일 냄새가 풍겼다.

살구 냄새, 복숭아 냄새가 풍겨 오며, 가던 길 멈추고 숲길 사이로 몸을 돌렸다. 살구는 작으면서 단맛이 약해서 주로 복숭아를 따서 먹곤 했다. 시골 인심은 어떤 아이가 와서 먹더라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단 풋익은 과일을 따서 먹다 버리면 혼을 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살구 한 바구니를 주셨다. 작년보다 2배 이상 살구가 열렸다며, 잼을 만들거나, 술을 담구라고 주셨다. 아마 술꾼인 아버지를 두고 한 말이다. 엄마는 살구잼을 만들어도 잘 먹지 않는다며, 술을 담가 두고 잔칫날이나 특별한 날 내어오곤 했다. 가끔 매실주를 사다 먹을 때면 술병 안에 매실을 볼 때마다, 살구가 생각나기도 했다. 


살구는 여리다. 작은 상처에도 진물이 나오고 섞기 쉽다. 가끔 백설공주가 잠에 든 이유가 혹 작은 상처에도 약하기 때문에 잠을 재운 게 아닐까 상상할 때도 있다. 살구는 손으로 양쪽 볼을 잡아당기면 그 안에 씨앗이 보인다. 잘 익은 살구는 틀니 없이 잇몸으로 사는 할머니에게 선물하고 싶을 정도로 씹지 않아도 된다. 살구는 겉과 속이 같다. 살구색을 요즘은 피부색 대신으로 쓰는 말이라고 한다. 살구색을 햇빛으로 열어 보면 투명한 살결이 한겨울 살짝 얼은 얼음장처럼 투명하다. 살구나무 밑으로 가면 살구 썩는 냄새가 향긋하다가 이내 발효로 인해 톡 쏘는 향기가 난다. 그 해 살구가 썩어 거름이 된 밭에는 감자, 고구마가 주렁주렁 열린 기억도 난다. 

오늘 책 한 권을 읽다. 엄마 집 앞에 열린 살구나무에서 세 상자씩이나 살구를 딴 딸이 살구를 처리하면서 엄마와의 관계 등을 재구성하며 쓴 책을 읽었다. 그녀 역시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에 대한 애증을 품어내고 더 큰 이야기로 상처를 극복하고 있었다. 


" 커다란 살구 더미에는 덜 익은 열매와 익어 가는 열매, 썩어 가는 열매가 섞여 있었다. 내 살구들을 갉아먹는 건 갈색 균핵이라는, 과일에 흔하게 생기는 곰팡이였다. 이 곰팡이는 이미 살구꽃 단계에서 나무에 생기지만, 아직 덜 익은 열매는 우박이나 해충 등에 의해 다치지 않는 이상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 

다 익은 열매가 더 취약한데, 곰팡이 균은 부드러운 갈색 부분이 퍼져 차가는 곳에서 발견된다.

어떤 과일은 쭈끄려저 미라처럼 변해 버리기도 하는데, 내 방에 있던 살구는 곧장 갈색 죽처럼 흐물흐물해졌다. 그 진핵은 세포벽이 허물어지면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문드러진다는 건 뭔가가 썩고 있음을 암시하는 과정이지만, 그건 또한 무언가가 자라는 과정,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것을 취한 다음 더 큰 환경으로 흩어질 준비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P123,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저, 반비 출판사)



그렇다. 문드러진다는 표현. 어쩜 우린 지구라는 장소에서 썩어가는 시체인지 모른다. 움직인다는 것 만 빼고는 말이다. 곧게 섞어가며 거름이 되는 과정이 삶의 한 과정인가 보다. 누구는 죽어가는데, 그 죽음으로부터 누구는 다시 살아나는 과정이기도 한 게 자연의 이치이다. 


요즘 문드러지지 않으려고 발악을 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노화를 멈추거나, 얼굴에 나타난 기미나, 주름을 없애려고 애쓴다. 아니 그마저도 안되면 기계장치를 넣어서라도 문드러지는 기간을 유예하고 싶어 한다. 자연에서는 소금이나 설탕에 절이거나, 아니면 건조하거나, 아니면 술로 담글 수 있으나, 인간이 서서히 자연으로 들어가는 "문드러짐"은 유예할 방법이 없다. 


'살구'를 이야기하다가 머릿속에 단편적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꺼내 보았다. 

초파리가 무지막지하게 끼는 과일이다.

개살구라는 비슷한 종이 있다. '빚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다. 강한 신맛 + 떫은맛을 자랑한다.  

    그래서 먹지 않는다.

오이와 함께 저렴한 비누 중 하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디선가 살구비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특히 출근길에 어떤 분 머리에서 살구비누냄새가 났던 기억이 있다. 

▷ 따뜻한 성질의 식품으로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과다 복용을 주의해야 한다. 

▷ 살구씨 기름은 기미나 주근깨, 잡티에 효과적이다. 

▷ 통조림, 건살구, 넥타, 살구 편, 살구 술 등으로 가공해 먹는다.

▷ 맥도널드 맥너겟 소스 중 스위 앤 사워 소스 주성분은 중국산 살구 농축액이며, 누네띠네 과자 겉 부분은 머랭과 살구잼으로 되어 있다. 

▷ 노란색 계통 과일로 비타민 A가 많아 야맹증에 좋고 현관 장벽을 튼튼하게 한다. 

▷ 오렌지 주스와 같이 먹으면 좋다. 살구에는 펙틴 및 사과산, 구연산 등 함양이 많은 반면 비타민C 함량이 낮아 오렌지 주스와 먹으면 디저트로 제격이다. 

▷항산화 효과가 높아 암 예방에 도움이 되며, 노화방지에도 좋다. 노인어르신 심심풀이 과일로 제격인 셈이다. 


어느 신문 칼럼을 읽다 살구는 조선 초기 종묘 제사에 제물로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밤, 대추, 복숭아, 자두에 이어 살구는 귀한 다섯 가지 과일 중의 하나라고 한다. 살구나무에 핀 하얀 꽃 무더기는 '고흐' 살구나무 꽃이 한창인  때를 그린 그림을 생각나게 한다.  살구 한 바구니를 따서 동네 집집마다 드리면 가마솥에서 졸여가는 살구잼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서 맴돈다. 그땐 시큼한 냄새라고 싫었는데, 이젠 그 시큼함도 나이 들어가는 어르신 몸에서 나는 냄새와 같다고 생각하니 마냥 싫어질 수 없다.


살구라는 단어를 자꾸 되뇌다 보니, 이렇게 살구, 저렇게 살구 하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왔다고 마지막 여운을 남긴 어르신의 말씀 같다. 내년 초여름에는 살구를 마구 마구 먹어줘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 쓰는 욕망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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