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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Jan 09. 2022

 한 글자로 글 쓰기

- 글감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방법 -


[새가  너머로 날아간다. 어스름이 깔리기 전 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이 사방으로 퍼진다. 에는  벼 이삭이 영글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에는 감자, 파, 무, 마늘, 양파, 부추, 오이 등이 자라고 있다. 외양간에는 가 음메~ 음메~ 하며 여물을 먹고 있다. 뒷칸에는 토끼가 새끼를 낳아서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다. 

옆 집 할머니가 바구니에 을 담아 주신다. 엄마는  시장에서 사 온 "김"을 드리며 인사한다. 아궁이에 걸쳐있는 가마솥에는 이 을 들이며 냄새를 풍기고 있다. 가마솥 에는 깎아 넣은 밤과 고구마가 같이 삶아지고 있다. 엄마는 활짝 타고 있는 장작을 으로 꺼내어 을 조절한다. 

냄새가 밖에서 놀고 있는 내 에 닿는다. 순간 입 안에 이 고인다. 공기놀이로 가져온 냇가 을 치운다.  이 잔뜩 묻은 동생에게 말뚝박이 그만하고, 씻고 오라고 한다. 동생이 을 듣지 않자,  짝을 때리고 싶지만 를 잡아 펌프가 있는 우물가로 데리고 간다. 도 못 쉴 정도로 아프다며 엄살을 부린다. 대충 씻은 얼굴에 때 국물이 흐른다. 다시 씻으라고 하니, 그제야 한참 씻는다. 맑개진 얼굴로  웃는다. 

할머니 집과 우리 집 사이에  작은 이 있다. 그 틈 사이로 이 자란다. 제법 잎이 무성하게 자라   에도 으로 베어서 정리해야 할 것을 보인다. 이랑 민들레다. 정말 쑥쑥 큰다. 할머니 집 창호지  사이에 구멍이 있다. 바람이 넘나 든다. 아버지가 혹여 에  공기가 들어갈까 봐 다시 을 먹인 종이로 덧댄다.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아버지 을 잡으며 오래 건강하게 살라고 한다. 은 그만 마시라는 사랑이 듬뿍 담긴 말도 잊지 않으신다. 

시골에서 하나 있는 약국을 운영하는 우리 집에 사색이 된 손님이 오신다. 누군가 에 베어 피가 흐르는데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차려진 밥상을 뒤로하고, 칼, 바늘, 실, 가루약, 연고 등 약상자를 챙겨서 을 대충 입으시고 나가신다. 엄마는 을 듬뿍 담아 뚜껑을 덮어 이불 에 넣어 둔다. 오늘은 강낭콩 밥이다.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금방 오시니 기다리라며, 대신 익은 고구마와 밤을 내어 주신다. 

 밖에는 이 떠 있다. 새벽에 울던 은 더 이상 요란하게 울지 않는다. 가 짖는다. 컹컹, 그러면 건너편 마을에 사는 단짝 친구 집 염소가 음메 한다. 아버지를 기다리며 에 있는 시계를 쳐다본다. 1시간이 넘었다. 졸리다. 이 오기 시작한다.  자지 않으려고 얼굴을 꼬집어 본다. 아프다. 불이 켜진  심지가 바람에 이리저리 움직이며 벽에 나타난 그림자를 만화처럼 본다.  그래도 안 오신다. 책을 꺼낸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은 할아버지 어부가 불쌍해서 놓아주었는데, 그 물고기가 용왕이었다는 내용이다. 착한 을 해야 하는구나 마음이 들었다. 언니는 요즘 먹을 갈고 을 들어 글씨를 쓰고 있다. 천자문이다. 무슨 글자인지 모르지만, 그림 같다.

드디어 문 소리가 난다. 신발 벗는 소리도 난다. 아버지다. 밥을 먹을 수 있다.  아버지는 옷을 벗으며, 벽에 걸린 에 걸어두시고, 씻으러 가신다. 밥 먹기 힘들다. 덮여 놓은 밥상보를 걷자, 갈치조림, 된장국, 파김치, 깍두기 등이 손짓한다. 힘껏 입을 벌려 먹기 시작한다. 가 부르다. 마지막으로 가마솥에  끓인 숭늉과 보리 끓인 이 나온다. 아버지는 숭늉을, 우리는 보리차를 마신다. 다친 은 상처가 잘 꿰며져 칠일만 지나면 된다고 한다.  동네에 유일하게 꿰매 줄 수 있는 약사인 아버지가 대단해 보인다. 술 드시고 "노세, 노세" 만 안 추시면 좋을 텐데....

이제 밤하늘에는 이 총총하다. 쏟아져서 아버지 눈에 박힌 것 같다. 오늘따라 아버지 눈이 맑다. 아마 좋은 일을 하셔서 그런가 보다. 난 그 별 하나 고 에 든다. 꿈속에서도 아버지의 별을 따라 어디론가 여행을 할 것 같다.


[참고자료] 9개월 동안 찾은 외 자 순 우리말 _254자

1)한 글자에 온 세상이 다 들어 있었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2)[삶과 문화] 당신의 한 글자는? (hankookilbo.com)

국어학자들은 아름답게 들리는 우리말은 대체로 유성음인 ‘ㄴ’, ‘ㄹ’, ‘ㅁ’, ‘ㅇ’이 들어간 게 많다고 말한다. 부드러운 울림과 소리의 잔류감이 좋다. 마찰음이자 치조음인 ‘ㅅ’도 싱그럽고 솟아오르는 어감이 좋다고 한다. ‘사랑’은 그런 자음들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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