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 이병률 작가의 '바람이 분다 사람이 좋다'
나를 드러내지 않는 순간은 없다.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수첩에 지긋이 써내려 가는 순간도, 혼자 길을 걷다 피어 오른 생각을 공기 중으로 내뱉으며 피식- 웃어버리는 순간도, 나만의 온도를 갖게 된다. 사소한 순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이 나를 말한다.
그러나, 내가 나의 온도를 갖고 있듯이 지켜보는 이들 또한 그들만의 온도를 갖고 있어서, 그들이 내 모습 그 자체를 그대로 느끼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늘 있다 - 나쁜 모습이든 좋은 모습이든 내가 아닌 모습을 나로 오해할까 싶어서. 그래서 나를 더 많이 데우기도 하고, 얼음물에 침잠하기도 하며, 때로는 나를 숨겨버리기도 한다. 그 중에는 '내가 읽는 책을 굳이 말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신중을 기하며 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수고를 들일 때와 달리, 작가의 생각이 나의 생각, 그의 가치관이 나의 가치관, 그의 주장이 나의 주장이 되어버리곤 했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는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말하기 두려울 때가 있다. 가끔 그렇다.
책 선물을 받을 때마다, 그래서, 그 사람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전한다는 것은,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거니까. 그리고 이번 생일에도 그런 멋있는 사람을 만났다. 이병률 작가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그 사람이 전해주었다.
처음엔 선바위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아침마다 서너 장씩 넘기려 했으나, 마음이 황량해진 월요일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삶을 살아내기에 충분히 따뜻한 온도를 얻고 싶었다. 꼭, 필요했다. 그래서 넘기기 시작한 책장은 결국 어젯밤, 진한 여운을 남긴 채 끝나버렸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연애감정이나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을 사랑한다, 그 말을 좋아한다. 아프리카에서 왔던 앞 머리가 늘 살랑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안부를 물어오는, 혼잣말을 재잘대던, 그 친구를 사랑한다. 빙그레 웃어주는 모습이 가장 예쁘지만 혼자일 줄 아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해서 알고 싶다. 그 사람들을. 그 사람들의 우주를. 사랑은 여행과 같다고 쓰여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수많은 우주를 여행하고 싶다. 내가 가진 온도를 차단하는 우주선을 타고, 상처 받는 일이 두렵지 않게 우주복을 단단히 챙겨 입고서, 더 오래 더 깊이 그 우주만을 여행하고 싶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여행을 떠나는 일만큼이나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 내 전부를 다해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그 사람의 첫 장을 넘기지 않는다면 비밀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내 온도를 착각하더라도, 어쩌면 괜찮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 사람은 아직 나를 여행하지 못했다고 이해하게 될 것 같다. 나를 잘못 느끼더라도 '그건 내가 아니니 괜찮아'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룻밤 새, 살아내기에 충분한 온도를 얻었다. 마음에 불어오는 바람이 달갑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