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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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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Dec 30. 2022

대화하면 안 되는 카페

사진 촬영도, 노트북도, 대화도 하면 안 되는 도쿄의 어느 카페 방문기

 지난주, 갑자기 도쿄에 다녀왔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고민해보겠다 답한 뒤 삼 일간 고민해본 결과, 첫 번째, 회사원인 이 친구와 또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점과 두 번째, 15년 만의 도쿄여행이라는 점에 어렵지 않게 도쿄행 티켓을 지르게 된 것이다.


도쿄의 아침 동네 풍경


 도쿄에선 크리스마스까지 총 4박 5일을 머물렀다.

 도쿄를 떠나기 하루 전 아침, 목도리를 두르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깨끗한 하늘과 찬 공기, 마스크 속 날숨과 함께 차오르는 축축하고 차가운 느낌, 네모 반듯한 건물들과 쓰레기 하나 없는 아스팔트 바닥 위로 내려앉은 따뜻한 햇볕, 두 다리로, 자전거로, 차와 버스로 저마다의 목적을 향해 출발하는 사람들. 내가 산책했던 아사쿠사바시의 겨울 아침 감상은 이 정도.

 산책에 규칙은 없다. 눈길이 닿는 대로 발길을 따라 보내다 보면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걷고, 찍고, 다시 걷고, 잠시 멈춰 궁금한 가게에 들어가도 보고. 어느덧 귀와 손은 빨갛게 익는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러 가라는 신호다. 구글맵에 근방에 있는 카페를 검색, 사진이나 리뷰의 느낌이 좋은 곳을 한 군데 골라본다. 어쩐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 곳을 발견. 이곳은 카페 내부 사진이 없다. (외부 사진이나 클로즈업된 커피 사진만 잔뜩 있을 뿐) 그래서 향한 카페. 제대로 된 간판도, 입구도 없어 가정집인 줄 알고 모르고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들어가도 될까 싶은 곳, 궁금한 곳, 중요한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 같은 그런 곳. 그 순간, 누군가 먼저 앞장서 그곳의 문을 연다. 용기를 빌려줘 고맙습니다. 속으로 조용히 인사하고 일행인 척 따라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매우 좁은 공간 한쪽으로 원두를 담은 거대한 포대자루가 잔뜩 쌓여있다. 그 반대편으로 카운터가, 더 안쪽으로는 커피를 볶는 거대한 기계들이 보인다. 카운터 아래 쇼케이스엔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물건들이 가격표와 함께 소개되어 있고(향 관련 제품인 줄 알았는데 커피였다), 그 옆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나무 계단이 자리하고 있다.

 '히토리 데스까?(혼자 오셨나요?)'

 빛바랜 인디고 블루의 유니폼을 입은 남자 종업원이 묻는다. 황급히 '코히 아리마스까?'(커피 있나요?)라고 대답하니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안내한다. 안심하는 마음으로 2층에 오른다. 한 계단 씩 밟아 오르는 나무 계단에선 삐그덕 대는 소리가 난다. 어쩐지 이 과정이 소설 속 이야기 같아 어떻게든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유 모를 공기의 압박에 감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는 못 했다.

 2층으로 올라오니 두 개의 문이 있다.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공간이 하나 등장한다. 한쪽에는 기다란 바(bar) 형 좌석과 커피를 만드는 공간이, 그 앞으로는 평범한 나무 테이블과 의자로 이뤄진 좌석 서너 개가 놓여있다. 창 밖에서 쏟아지는 햇빛은 공간 안에 멋스럽게 묻어나고, 공간 한가운데 놓여있는 오래된 난로는 공간 안에 더 따스한 온기를 더한다. 바글바글 소리를 따라가니 바 안쪽 커피를 만드는 공간 위로 주전자 하나가 증기를 뿜고 있다. 자세히 보니 테이블마다 생화도 하나씩 꽂혀있다. 무심한 듯 은근 신경 쓴 모습이 무리카미 하루키의 <1Q84> 아오마메를 떠오르게 했다. 무척이나 절도 있으면서 맵시가 나는, 그런 멋쟁이 같달까. 구글맵에서도 사진으로는 볼 수 없던 이 안쪽 공간. 그 익숙하면서도 낯선 생소함에 시공간이 멈춘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갓 나온 뜨거운 커피, 원두 선택이 가능하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한 후 자연스레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뭐랄까, 너무나 조용한 분위기와 설명하기 어려운 압박감에 촬영이 망설여졌다. 더군다나 이놈의 아이폰 카메라는 너무나도 우렁찬 '찰칵' 소리를 갖고 있지 않은가. 이런 고요함 속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모두가 나를 돌아보겠지? 소심한 공포심에 테이블 위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대신 비교적 셔터소리가 크지 않은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커피를 주문하기까지, 이 인상 깊은 일련의 과정과 공간을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욕심이었다. 이윽고 주문한 커피가 나온다. 커피를 건네는 종업원이 커피와 함께 이런 말을 건넸다.

 '사진은 찍지 말아 주세요.'

 욕심을 들킨 마음에 당황하여 죄송하다 말하며 가방 가장 깊숙이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눈앞의 갓 내린 김이 모락모락 한 커피 한 잔. 머쓱한 한 모금.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혼자 온 손님 두 명과, 동행과 함께 온 손님 한 팀. 그들 중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다시 구글맵에 들어가 이 카페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진 촬영도, 노트북도, 대화도 안 되는 곳'

 세상에. 규칙이 존재하는 카페였다.


 생각에 잠겼다. 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유행했던 하나의 밈이었다. 왜, '인스타 카페 특'이라고 한창 유행했던 밈 있지 않은가. 휴무일은 DM으로 문의해 달라던지, 지나치게 낮은 의자와 테이블 높이라던지, 노트북이나 장시간 사용은 삼가달라고 한다던지, 아, 여기에 합장 이모티콘은 꼭 필수다. 이 특징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업장은 주인의 것. 주인은 손님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이 카페 또한 마냥 편안하기보단 왠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존재했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손님이 을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진으로 바이럴 되며 문전성시를 이루는 요즘의 여타 핫한 카페들과는 확실히 다른 마케팅이지만, 어쩐지 손님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에선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실제로 리뷰 중엔 사진을 찍어 면박을 줬다며 별점 1개를 준 손님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입장 후 어렵게 안내를 받고 마침내 커피를 시키고 나서야 용서받은 기분이 들었다는 재미있는 리뷰 또한 존재했다. 어찌 보면 이런 카페 운영 방식이 콧대 높게 비치는 건 오해라면 어쩔 수 없는 오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깊었던 구글 리뷰


 금방 납득할 수 있었던 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였다. 커피를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말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란 건 알 수 있었다. 시간이 멈춘듯한 그곳의 분위기도 커피 맛에 한몫했다.

 주인은 시간과 커피만을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카페를 차릴 때 손님에게 줄 수 있는 수많은 가치 중-이를테면 예쁜 인테리어나 독특한 콘셉트, 맛있는 디저트, 친숙한 직원들 등-이곳에 머무는 시간과 커피만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 그렇다면 그건 '인스타 카페 특'같은 아집과는 거리가 먼, 카페 주인의 하나의 연출인 셈이다.

 나 역시 불특정 다수에게 무언가를 주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부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다. 나름의 규칙을 정해보기도 하지만, 그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한 두 개의 불편하단 피드백으로 금방 규칙을 꺾어버리기도 한다.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창작자가 안내하는 쪽으로 독자의 자의적인 태도와 함께 향하는 것인데, 365일 내내 그리 할 수 있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불어 내가 향하는 방향에 대한 강력한 확신 없이는 안내가 더 어려운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집주인의 그런 강단이랄까, 시대를 거스르는 운영 방향에서도 꿋꿋하게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그럼으로써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태도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의 룰은 중요하다. 꾸준히, 그리고 건강하게 운영할 수 있는 이곳만의 루틴일 테니. 또 한편으로는 웬만한 고집은 아집 취급 되고, 대다수의 아집은 (뭣도 없으면서)이유있는 고집을 표방하는 시대이다 보니 내가 정한 규칙이 아집인지 고집인지 수시로 살피는 시선도 길러야 한다.


 카페를 나서며 저 멀리 카운터에서 문이 닫힐 때까지 고개 숙여 인사하는 종업원의 모습을 보았다. 끝까지 참 확실한 곳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런 뻣뻣함이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으로 내 삶의 태도를 반추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말이죠, 조금은 뻣뻣해져도 괜찮을 것 같아요. 너무 물렁해진 세상 속에 정말 지켜야 할 것들을 너무 쉽게 놓치고 있으니까요. 


카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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