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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과 향문화의 귀환

향기를 불러온 원정, 십자군의 출정

by 이지현

유럽이 다시 마주한 향기의 문명

5세기 서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유럽 대륙은 문화적 단절기를 맞이했다. 특히 향료 무역과 향수 문화는 급격한 쇠퇴를 겪었는데, 이는 지중해 무역로의 붕괴와 이슬람 세력의 부상이 주된 원인이었다. 6세기부터 10세기까지 이어진 이른바 '암흑기' 동안, 유럽의 향료 사용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교회의 종교 의식이나 소수 귀족층의 사치품으로만 명맥을 유지했을 뿐, 고대 로마 시대에 꽃피웠던 대중적 향수 문화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11세기 말, 유럽 문명은 향기와의 극적인 재회를 맞이하게 된다.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시작된 십자군 전쟁이 그 전환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성지 탈환을 위한 종교전쟁이었으나, 이 대규모 군사원정은 예상치 못한 문화적 혁명을 촉발했다. 특히 당시 이슬람 세계가 보유하고 있던 고도화된 향료 증류기술과 정교한 조향 문화는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자비르 이븐 하이얀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연금술사들의 과학적 접근방식은, 유럽의 향수 제조 기술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이 데려온 향기

십자군이 마주한 이슬람 세계는 유럽보다 훨씬 앞선 문명이었다. 바그다드와 다마스쿠스, 카이로는 도시의 규모나 위생, 과학, 미술, 의학에서 유럽을 압도했고, 그 일상 곳곳에 향료와 향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후각은 이슬람 문화에서 치유와 정결, 기도와 연결된 감각으로 인식되었고, 향은 그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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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바그다드에서 활동한 자비르 이븐 하이얀은 알엠빅(alembic)이라 불리는 증류 장치를 개발한다. 이는 오늘날 에센셜 오일 추출기의 원형으로, 고온에서 식물을 증류해 정유를 얻는 방식이다. 그의 실험은 단지 조향 기술의 발전에 그치지 않았다. 향은 의약품으로, 정신적 안정의 도구로, 심지어 종교적 상태를 유도하는 매개로까지 활용되었다.


또 다른 인물 이븐 시나(Avicenna)는 『의학대전(The Canon of Medicine)』에서 향료의 약리 효과를 정리하며, 향을 정식 치료 수단의 일부로 편입시킨다. 로즈마리, 세이지, 시나몬, 미르, 유향 등 수백 가지 향료는 이슬람 의학에서 체계적으로 다루어졌고, 이는 훗날 유럽의 학자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감각적 충격, 기억에 남은 향

1096년부터 시작된 제1차 십자군 이후, 유럽 병사와 귀족, 수도사들은 전혀 새로운 문화와 접촉하게 된다. 중동의 시장에서는 온갖 향료가 쌓여 있었고, 거리에는 향긋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람들이 병을 예방하기 위해 몸에 향신료를 바르고, 기도 중에는 유향과 몰약이 뿌려졌다. 유럽의 낡은 교회와 냄새 나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십자군은 전장에서 피와 땀, 공포와 혼돈을 경험했지만, 그 틈 사이로 파고든 향기의 기억은 특별했다. 이 향들은 단지 좋은 냄새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구분 짓는 경계에서 마주한 치유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유럽으로 돌아온 이들은 향료를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향신료 무역은 다시 주목을 받았고, 향에 대한 수요는 점점 커져갔다.

향료의 귀환, 유럽의 감각이 깨어나다

십자군 전쟁은 1095년부터 1291년까지 약 200년간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십자군에 참여한 상인, 기사, 수도사들은 이슬람 문명권의 발달된 향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이를 유럽으로 가져왔다. 특히 아랍의 연금술사들이 개발한 증류 기술과 정교한 조향 방법은 유럽의 향료 산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슬람 세계에서 들여온 대표적인 향료는 다음과 같다.

프랑킨센스(유향): 교회 의식에서 향연으로 활용되며 신성과 연결되었다.

미르(몰약): 방부와 소독, 상처 치료제는 물론 명상용 향으로도 쓰였다.

시나몬(계피): 음식 향신료이자 방부제. 유럽에서는 귀족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급 향료였다.

샌달우드(백단향): 진정 효과가 뛰어나 수도원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로즈(장미): 다마스크 로즈는 장미수로 추출되어, 유럽 여성들 사이에서 향수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향의 의미가 확장되다

십자군 전쟁이 끝난 이후, 유럽에서는 향수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향수 제조 방식은 크게 세 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쳤다. 초기에는 향료를 동물성 지방(주로 돼지기름이나 소기름)이나 올리브 오일에 우려내는 '엔플뢰라주(enfleurage)'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이는 고대 로마의 '운구엔툼(unguentum)' 제조법을 계승한 것으로, 현대의 알코올 베이스와 달리 끈적거리는 질감이었지만, 향이 12시간 이상 지속되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슬람 문명권에서 발달한 정교한 증류 기술과 조향 방식이 유럽의 과학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알-킨디(Al-Kindi)의 '향수 제조에 관한 책(Kitab Kimya' al-'Itr wat-Tas'idat)'에서 소개된 방법론은 후대 유럽의 실험 화학과 약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전파를 넘어, 물질의 본질을 이해하고 변형시키는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의 수용을 의미했다.

향료는 약재이자 장식이었고, 동시에 신과의 대화를 여는 문이었다. 유럽은 다시 후각이라는 감각을 문화의 중심에 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모든 전환의 물꼬를 튼 것이 바로 전쟁이었다.


전쟁이라는 역설, 교류라는 유산

향기는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을 넘어선 복합적 문화 현상이다. 그것은 문명과 문명이 만나며 발전시킨 과학 기술의 결정체이자, 인류의 생존 본능에서 출발해 치유와 영성, 권력과 미학으로 승화된 문화적 코드다. 향료의 화학적 특성 연구는 현대 약학과 화장품 산업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향기가 인간의 심리와 생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현대 아로마테라피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문명 교류의 촉매제 중 하나가 바로 전쟁이었다. 십자군 전쟁은 파괴와 갈등을 넘어서 동서양의 지식과 기술, 문화가 융합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향기 문화는 이 복잡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며, 동시에 문명 간 교류와 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우리는 흔히 전쟁을 파괴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은 역설적으로 유럽 문명에 감각의 르네상스를 불러온 계기였다. 그 잔인한 행군 속에서 유럽은 정지되었던 감각의 톱니바퀴를 다시 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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