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팬데믹, 향료는 어떻게 사람을 살렸는가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쓴 흑사병(Black Death)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 중 하나였다. 1347년부터 1351년 사이에만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질병은 단순한 의학적 재앙을 넘어 사회 구조와 의식주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감각적 삶의 양식 전반을 변화시켰다.
이 전염병이 퍼지던 당시, 의학은 아직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없던 시대였다. 유럽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의 원인을 '미아즈마(Miasma)', 즉 악취와 함께 떠다니는 부패한 공기로 이해하였다. 이는 고대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에서 유래한 것이며, 중세의학에서 널리 통용되던 질병 이론이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향기로운 물질은 부패한 공기를 정화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데 유효한 매개체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향료는 단순히 쾌락적 소비재나 종교 의식의 도구에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의학적 도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중세 유럽의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향료를 활용하였으며, 특히 흑사병 시기에는 그 효용이 극대화되었다.
흑사병 시기 가장 널리 사용된 향료 기반 아이템 중 하나는 '포모 향낭(pomander)'이다. 포모는 라틴어 'pomme d’ambre'에서 유래한 말로, ‘호박향이 나는 사과’를 뜻한다. 이는 은 또는 금으로 된 구 형태의 케이스에 향료, 허브, 수지(resin) 등을 혼합하여 넣고, 목에 걸거나 허리에 차는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포모 안에는 육두구, 정향, 시나몬, 몰약, 유향 등 강한 향취와 방부 특성이 있는 향신료들이 주로 담겼다. 이 향료들은 단지 좋은 냄새를 내는 것을 넘어, 공기를 정화하고, 병원균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믿어졌다. 사람들은 대중적인 모임을 피할 수 없을 때나, 시장, 교회, 장례식장 등 감염 위험이 있는 공간을 출입할 때 포모를 코 가까이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이 행동은 악취를 막고 ‘좋은 공기’로 폐를 채운다는 목적이었다.
포모는 귀족이나 상류층만의 장신구가 아니라, 향낭을 천으로 만들어 허리에 묶는 방식으로 평민들에게도 보급되었다. 허브와 향료를 밀랍으로 섞어 작은 주머니에 넣고, 실로 묶어 몸에 지니는 식이었다. 오늘날의 방향 주머니 또는 아로마 사셰와 유사한 형태로, 이는 중세의 보편적 감염 예방 수단이자 공포에 대한 정신적 위안이기도 했다.
흑사병 유행 당시 등장한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부리 모양의 가면을 쓴 '페스트 닥터(plague doctor)'의 모습이다. 이 마스크는 단순한 공포 유발 요소가 아니라, 실제로 감염 예방을 위한 당시의 과학적 접근이었다.
이 부리 모양의 마스크는 안쪽에 여러 겹의 천과 향료가 혼합된 충전재를 넣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마스크 안에는 보통 라벤더, 민트, 로즈마리, 정향, 몰약, 유향 등 방향성 식물과 향신료들이 들어갔다. 이들 향료는 냄새가 강하고 휘발성이 있어 공기를 정화하고, 감염된 공기를 거르고 희석한다고 여겨졌다.
의사들은 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진료에 나섰고, 긴 막대기를 손에 들고 환자를 직접 접촉하지 않고 살피는 방식으로 진료하였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비과학적 방식이지만, 당시로서는 공기 전염에 대한 나름의 방어 장치였으며, 실제로 어느 정도의 감염 차단 효과를 거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부리 안에 넣은 향료는 후각을 자극함으로써 의사의 심리적 안정감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중세 유럽에서 라벤더와 로즈마리는 대표적인 '의약 허브'로 간주되었다. 이 식물들은 정원과 창가, 벽난로 옆에 심어지거나 건조시켜 실내에 걸어두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는 단지 실내 장식의 목적이 아니라, 공기를 정화하고 감염을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한 조치였다.
라벤더는 살균 및 진정 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며, 침실이나 병상 근처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라벤더 향은 중세의 연금술적 사유에서 영혼을 맑게 하고, 부정한 기운을 물리치는 효과가 있다고 믿어졌다. 로즈마리 또한 기억력 향상, 방부 효과, 공기 정화의 효능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많은 도시에서는 로즈마리를 불에 태워 연기를 내는 방식으로 실내를 소독하였다.
중세 병원과 수도원에서도 향료는 중요한 의료 자원이자 종교적 상징물이었다. 병원에서는 향료와 허브를 불에 태워 연기를 내거나, 물에 타서 공간을 정화하는 방식으로 활용하였다. 사제들은 라벤더와 몰약, 유향을 혼합하여 만든 연고나 방향제를 사용하여 병자에게 안수를 행하기도 하였다.
수도사들은 의사의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들의 약초 정원은 다양한 향료 식물로 채워졌다. 수도원 약방에서는 향료를 이용한 다양한 혼합 약제가 제조되었고, 이는 오늘날 약초학의 기원이 되었다. 특히 몰약과 유향은 예수 탄생 신화에서도 등장하듯 신성한 물질로 여겨졌기 때문에, 병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사후의 정화를 도우는 데도 사용되었다.
결국 흑사병은 향료 사용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이었다. 이전까지 향료는 대부분 부와 사치, 종교 의례의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흑사병을 계기로 향료는 공공보건의 일환이자, 민간의료와 종교적 의례를 넘어선 실질적인 ‘의학적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향료 사용은 유럽 전역에서 무역의 확장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몰약, 유향, 정향과 같은 향료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동방 무역로와 지중해 교역로는 더욱 활성화되었으며, 이는 후에 대항해 시대와 향신료 전쟁의 배경이 되는 ‘향료를 향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흑사병은 단지 전염병의 공포만을 남긴 사건이 아니었다. 이 시기를 통해 향료는 의학과 감각, 신앙의 교차점에서 실질적인 도구로 재위치되었으며, 향에 대한 인류의 인식과 사용 방식은 한 단계 진화하였다. 나쁜 공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세인들의 직관은 현대 아로마테라피의 기원과도 맞닿아 있으며, 향료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의 심신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방패’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