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ynaree Feb 18. 2021

여름엔 우무콩국!

숨이 턱에 차는 더위에 훌훌 말아먹는 소울푸드

여름은 보양식의 계절이다.

후라이드 치킨부터 삼계탕까지, 제일 대중적 건 닭 요리이 민어나 장어 같은 생선요리들도 알차게 포진해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주로 해신탕을 많이 해 먹었다. 전복 낙지를 푸짐하게 올린 닭백숙은 국물마저 시원하고 달큰해서, 건더기를 건져먹은 후 보글보글 끓여 국수를 넣거나 밥을 볶아먹어도 좋다.


복날에는 월정곰닭에도 손님이 몰린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근하지만, 퇴근할 때는 어김없이 녹초가 되어 있다. 한여름 주방에서 닭 육수와 함께 나의 육수까지 주룩주룩 빠진다. 그러니 아무리 이열치열이라 해도 뜨거운 국물음식으로 보양을 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어진다. 매일 만들어 파는 닭곰탕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더이상 특별식 아니다. 대신 꼭 챙겨먹는 여름 보양음식이 있다. 우무콩국이다.


콩국수?

아니, 콩국!


'콩국수'라는 게 있다는 건 사실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그전까지는 콩국에 국수를 말아먹는 걸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콩국은 걸쭉하게 후루룩 마시는 음식이었기에, 국수만 건져먹고 국물을 남기는 것은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그래서 콩국수는 여전히 낯설다. 무엇보다, 식당에서 파는 콩국은 엄마가 만들어주던 그 맛이 아니다. 너무 달거나 첨가물이 많거나 너무 되직하거나 묽다. 안타깝게도(?) 나는 엄마의 요리에 철저히 길들여졌다. 두부를 직접 만드는 가게에서는 간혹 콩물을 파는 경우가 있어서 종종 사다 먹기도 했지만, 담백하고 신선한 엄마표 콩물의 맛은 좀처럼 나지 않는다. 콩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알 것이다. 만드는 사람마다, 가게마다 콩물이 얼마나 디테일하게 천차만별인지.


그러니까 결국, 번거롭고 몸이 힘들어도 속 편하게 내 입맛에 맞게 만들어 먹게 되는 것이다.


콩물 만들기


일단 깨끗한 콩을 골라 물에 불린다.

부모님이 키우고 말려서 보내주신 콩

자기 전에 물에 담가놓았다가 아침에 만들면 편하지만, 매일 해뜨기 전에 서둘러 출근해야 하는 요즘으로서는 휴일이 아니면 이 콩 작업을 선뜻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휴일 전날에 마음먹고, 두세 번 정도 먹을 콩을 한 번에 불린 후 잘 냉동해두었다. 한 번 삶을 양만큼 소분하되, 물을 너무 많이 따라버리지 말고 함께 밀봉해서 보관하면 번거로움을 조금 덜 수 있다.


일단 콩이 다 불어나면 '껍질 제거'라는 지난한 반복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콩껍질을 제거하지 않고 대충 갈아도 큰 상관은 없지만, 나는 이 껍질의 식감이 거슬려서 아무리 귀찮아도 결국 껍질을 다 골라내고 만다.

콩껍질을 골라서 건진다

물에 불어난 콩은 너무 세게 문지르면 부서지고, 너무 살살 다루면 껍질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 중간 정도 되는 적절한 강도로 콩을 문질러 씻으면 콩에서 분리된 반투명의 껍질들이 물 위에 떠오른다. 그러면 껍질을 따라내고 다시 물을 받아 콩을 문지르고, 다시 껍질을 따라내고... 이것을 십수 번쯤 반복하면 뽀드득뽀드득한 노오란 콩의 알맹이들만 말갛게 남는다.


그러면 이제 이 녀석들을 삶을 차례.

물은 콩의 2배 정도로 부어 삶는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중불로 줄이고 이때부턴 자리를 절대 뜨지 않아야 한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밑바닥에 눌어붙거나 타버리기 십상이다. 탄내가 나면 정말 먹기가 괴롭다 (실제로 그렇게 망쳐본 경험이 있다).

눌어붙지 않도록 살살 저어주면서 삶는다

콩을 잘 삶으면 찐 밤 냄새가 난다. 이미 부엌은 온통 수증기 때문에 습식 사우나 저리 가라다. 내가 이걸 왜 또 시작했나 싶어질 때쯤, 고지가 눈앞이다. 한 알 집어 먹어봤을 때 찐 밤처럼 이가 쑥 들어가면 적당하다. 덜 삶으면 풋내가 나고 너무 많이 삶으면 메주 냄새가 날 수 있으니 불 끄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엄마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푹 삶은 콩은 그대로 식혀둔다. 콩 삶은 물은 절대 버리면 안 된다. 콩을 갈 때 이 콩 삶은 물을 꼭 같이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심심하지 않고 농도가 적당한 콩물이 된다.

뜨거운 김을 식히는 동안 콩을 갈 준비를 한다. 나는 얼음도 갈아버리는 초강력 믹서기를 사용해서 두유라고 불러도 될 정도까지 콩을 곱게 다. 콩을 갈 때 물은 최소한으로 넣고 되도록 뻑뻑하게 만든. 먹을 때 생수를 넣으면 되기 때문에, 냉장고를 차지하는 부피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콩을 갈 때 소금을 조금 넣어 기본 간을 해 두고, 먹을 때 생수와 함께 단맛을 첨가한다. 나는 보통 소금은 뽕소금을 쓰고, 단맛을 위해서는 먹기 직전 올리고당을 조금 넣는다.  단짠의 조화가 잘 맞아야 한다. 약간의 소금은 단맛을 증폭시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국수 말고 우무묵


초여름의 제주 해안가나 일주도로를 달리다 보면 정체모를 시커먼 것들을 널어 말리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걸 톳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우뭇가사리다. 그 우뭇가사리를 가지고 묵을 쑤면 바로 우무묵이 된다.

작년만 해도 우무묵을 직접 만들어 먹었는데, 올해 여름은 아무도 없이 혼자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도저히 묵까지 만들 짬 나질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 딱 감고 마트에서 구입.

하지만 탱글한 느낌이 집에서 만드는 것에 비해 영 성에 차지 않는다. 아무래도 조만간 우무묵 만드는 걸 다시 포스팅하게 될 듯.

이 우무묵을 가늘게 채 썰어 콩물에 넣고 휘휘 저은 뒤 그릇째 들고 젓가락으로 목구멍에 훌훌 밀어 넣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여름철 별미가 된다. 얼음 같기도 하고 젤리 같기도 한 우무묵은 제법 은근하게 배를 채운다. 끼니로도 간식으로도, 심지어 다이어트 식단으로도 그만이다.


콩물은 여름엔 특히 상하기 쉬우니 일단 만들면 부지런히 먹어치워야 한다. 요즘 레트로가 유행이라 하 종종 유행에 맞게(!) 텀블러에 얼음을 넣우무콩국을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기호에 따라 미숫가루를 함께 넣어먹어도 좋, 아삭하게 무친 오이지나 장아찌, 오이소박이 같은 반찬이랑 함께 먹어도 맛있다.


오늘도 이러구러 퇴근은 했고, 배는 고픈데 입맛이 없다. 성수기의 바닷가 식당은 정말이지 혼자 운영하기 쉽지 않다. 오늘도 헉헉 숨이 턱에 찼다.

내일은 휴일. 빈대떡 두어 장 부쳐서 우무콩국 훌훌 마시고 한숨 푸지게 낮잠이나  싶다.


아아, 그러고 보니 슬금슬금 말복이 다가오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