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ynaree Feb 18. 2021

쌉싸름하고 아삭한 위로

거짓말 같은 날들을 다독이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래 지속되면서 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제주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여간하지 않다. 한산한 바닷가 마을도 상황은 다르지 않으니 힘든 사정을 뻔히 아는 처지에 한 동네 자영업자들은 서로 안부를 묻는 것 자체가 민망하고 조심스러울 지경이다. 가게를 열고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가을에 씨를 뿌려 이듬해 봄에 샛노란 꽃을 피우는 유채는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봄날에는 제 곳곳에 크고 작은 노란 들판이 펼쳐지지만 그중에서도 벚꽃과 유채꽃이 동시에 만개하는 표선면 가시리의 녹산로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힐 정도로 멋지다. 하지만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유채꽃축제가 일찌감치 취소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여전히 유효함에도 불구하고 적지않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가시리 주민들은 결국 유채밭을 직접 갈아엎었다. 공들여 결실을 맺은 1년 농사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들은 어땠을까.


요 며칠 이러저러한 고민거리 탓인지, 기분도 조금 울적하고 컨디션도 영 좋지 않았다. 체한 듯도 하고, 오랜만에 탄 택시에서는 기사님이 운전을 너무 거칠게 해서 멀미까지 심하게 했다. 속이 메슥거리는데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야 하니 두통에 으슬으슬 한기까지 덮쳐왔다. 결국 집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것들을 모조리 게워내고 따뜻한 물로 한참 샤워를 하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흰 죽을 끓여 텅 빈 속을 좀 달래고 뜨거운 매실차를 마시고 나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서인지 오늘 아침에는 유독 허기가 졌다. 이럴 때일수록 세심하게 챙겨 먹어야 한다. 북어를 잘게 잘라 넣고 흰 죽에 달걀을 풀어 삼삼하고 부드럽게 죽을 끓였다.

그리고 나서, 장바구니에서 유채잎 꺼내 흐르는 물에 씻는다. 여느 해처럼 성실하게 꽃을 피웠을 뿐인데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는 이유로 존재를 부정당한 유채를 슬퍼하면서, 나는 오늘 유채겉절이를 만들었다.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빼 둔 유채잎을 숭덩숭덩 자르고, 마늘과 생강을 다져넣는다. 거기에 총총 채 썬 양파와 깨소금과 액젓을 넣고 참기름을 살짝 둘러 훌훌 버무린다.


주방에서 할 일들을 끝내고 나서,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하고, 입간판을 꺼내놓는 것으로 오늘의 영업준비를 마쳤다.

어제 서울 모처에 눈발이 날렸다는 거짓말 같은 뉴스를 떠올리면서 따끈한 죽을 떠서 담고, 유채 겉절이도 덜어 접시에 옮긴다.  나는 오늘 아침 보들보들한 죽으로 다친 속을 다스리고, 꼬릿하고 쌉싸름하고 아삭한 유채를 씹으며 기분을 다독다.

거짓말 같은 날들은 기어코 지나갈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