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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운 Oct 27. 2018

매너가 영어를 만든다

Manners Maketh English

발음이 영어를 만든다?! NO! 매너가 영어를 만든다. 난기류를 만난 듯 계속 흔들거렸던 신문 기자 3년을 작별하고, 통역대학원 시절을 지나 통역사로 삼십 대 새 출발을 알린 지 어느덧 8년 차. 일을 하다 보면 물론 이른바 “해외파” 분들의 매끈한 영어 발음이 부러워진다는 걸 고백한다. 평양을 자연스럽게“푱얭”으로 발음하며 영어가 술술 나오는 사람들이 무척 부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 밖에 “로무횬”이라던지, “쌤썽” 등등. 한국어를 한국어답지 못하게 발음하는 게 오히려 ‘있어’ 보이고, 그렇지 못한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이는. 어려운 단어도 아닌 주제에 영어 통역을 업으로 삼은 나의 혀를 아직도 혼란에 빠뜨리는 extraordinarily 같은 단어들은 또 어떠한가.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더라. ‘글쟁이’에서 ‘말쟁이’로 직업을 옮겨 가며 십여 년을 일해 보니, 국어이건, 또는 외국어의 껍데기를 쓰고 있건 말은 ‘소통의 일부’이며, ‘무례는 만국 공통’이라는 걸 배우게 됐다.


사례 1. 영어로 말하는 게 어색하기도 하지만 일단 외국인과는 친해지고 싶기도 해서 다짜고짜 “어허허허허….”하며 말 끝을 웃음으로 흐리고 있지는 않은가? 

(대화의 상대가 호주 출신이라는 말에) “I visited Australia…. (양 손으로 스테이크를 써는 시늉을 하며) Steak… 어허허허허허허허허허.”

상대방인 호주 출신 국제기구 관계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지만 가상 스테이크 썰기와 일방적인 웃음은 계속되었다.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맛있었다, 훌륭했다' 표현했다면 함께 웃을 수 있었을 것을.


사례 2. “두 유 노 싸이 (Do you know Psy)?” “두 유 노 김치 (Do you know Kimchi)”에 이은 “무슨 색 제일 좋아해 (What’s your favorite color)?”

외국인 스타가 한국을 방문, 어린이를 상대로 가진 일종의 팬 미팅. 질문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나와서 질문하라는 말에 줄지어 나온 어린이들. 쏟아져 나온 질문들은 대략 이렇다. 무슨 색 제일 좋아하세요? 몇 살이에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그의 작품에 대한 질문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저 영어로 프리 토킹 해볼 기회를 잡으려고 나왔을 뿐. 어려서부터 대화 장소와 주제에 맞게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매너를 먼저 가르친다면 더욱 호감 가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사례 3. 이게 왠지 더 “아메리칸 스따일” 같아서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다리 꼬고 의자에 누운 듯한 자세를 취해야 영어가 좀 나오는 것 같은가?  영어에도 엄연히 존칭이 있고, 상황에 따른 겸양의 표현이 있고, 존중을 표현하는 기교가 있다. 자리의 취지와 격식에 따라 '드레스 코드'도 나누고 먹는 순서와 상차림 모양새도 딱딱 구분해놓을 정도로 형식을 좋아하는 그들이기도 하다. 영어권 사람들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편견이 빚은 대참사. (실제로 이 장면을 연출했던 분은 한국인 보스가 등장하자 벌떡 일어나 굽신굽신 매너를 시전 했다.)


자, 상대방의 눈을 보자. 경청하자. 경청한다는 걸 알려주려면 말하는 사람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여줘도 좋다. 말로써 이루어지는 소통(verbal communication)으로는 부족하다. 비언어적 소통(non-verbal communication)까지 뒷받침해서, 상대방에게 세련되고 편안한 대화를 할 수 있게끔 배려해보자. 영어로 말할 때만? 우리말로 말할 때도 마찬가지. 목소리를 가다듬듯 전달하는 내용과, 나의 자세도 가다듬어 본다면 타인을 이해시키고, 원하는 바를 얻는 것도 한결 쉬울 것이다.


쉽지는 않다. 30대 후반인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밥상머리에서는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밥을 먹는 게 예절이라고 배웠다. 어른한테 눈을 똑바로 뜨면 혼날 일이었다. 외국인, 그것도 주로 영어권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나 역시 “악수할 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태도가 몸에 익지 않아 매번 살짝 긴장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이젠 눈을 마주치라니, 얼굴에 미소를 띠라니. 


앞으로 브런치에는 좀 더 원활하고 즐거운 커뮤니케이션, 특히 영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팁과, 통역사로 일하며 느꼈던 단상과 에피소드를 나누고 알아두면 좋을 영어 표현도 간간이 소개해보려 한다. 사실 이건, 나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주는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하다. 마음과 마음이 좀 더 가까워지는 소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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