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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운 Aug 07. 2020

공평과 태도에 대하여

황의민 마이클리시 대표 인터뷰

여기, 현실적으로 존재 가능한 '남사친'이 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수련회, 이 자식이 나를 수영장에 빠뜨렸을 때,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잘만 합격해 놓고도 종교적인 이유로(토요일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진학을 포기했을 때,

마침내 음악 진로를 아예 놓고 북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북 디자인만 할 게 아니라 아예 출판사를 차리고 책을 써보겠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몇 년 전 연말 분위기가 무르익던 어느 날 이혼 소식을 전했을 때,

한결같이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야, 꼭 그랬어야 했냐.


서로 싸우고 응원해온 세월이 흐르고 흘러 26년 차, 묵히고 삭힌 우정. '한 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재미있는 영어책을 만드는 출판사 마이클리시의 황의민 (영어명 마이크 황 Mike Hwang) 대표를 만났다.



황 대표가 뽑은 인생의 키워드, 공평과 태도란 무엇일까.

"공평은 신께서 인간을 다스리는 원리이고, 태도는 인간이 신께 다가가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지."


공평과 태도, 요즘 질리도록 오용되고 남용되는 유행어라 생각했는데 신선한 해석. 신과 인간 사이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듣는 즉시 머릿속에 화살표 두 개로 정리가 되는 깔끔한 정의이기도.


쉼 없이 책을 쓰고 펴낸 그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일까.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아빠표 영어' 시리즈다. 기존의 어린이 영어 책은 공부법이거나, 생활영어 표현 위주였는데, 5~10살의 영어 실력을 올려줄 수 있는 유일한 책이라 생각한다.

‘홈스쿨링으로’ 부모가 직접 가르칠 수 있게 했다는 것도 좋고. 한 페이지에 문장이 하나, 사진이 하나 들어간 획기적인 방식이라 과연 이걸 살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걱정도 됐고, 끝까지 완간할 수 있을까 걱정됐는데, 결국 완간(13종)도 하고 실제 판매도 괜찮다.



엄마표 영어책은 많아도 '아빠표'는 드물다. 보통 교육은 엄마의 영역인 것으로 생각해서, 또는 언어는 아무래도 여성이 가르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그런데도 알록달록 예쁘기까지 한 이 시리즈가 인기를 모은다는 건 분명 기분 좋은 소식. 밝고 귀여운 남매를 혼자 손으로 정성껏 키우는 싱글대디가 쓴 책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의미 있다. 고될지는 몰라도 어둑한 데라고는 없는, 어느 아빠의 씩씩함이 녹아들어 간 책이다.


인생의 키워드인 공평과 태도에 관한 책을 쓸 계획은 없는지도 질문했다.

-이미 한 권 썼다. '돈꿈사'라는 자기 계발서인데,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돌아보며 거기서 얻은 메시지와 의미, 앞으로의 계획을 풀어서 썼다. 공평이란 신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라 믿는다. 전지전능한 신이 계시는 것을 믿고, 그분이 선하셔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좋은 일을 하면 복으로 돌려주시고, 악한 일을 하면 벌로 돌려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세상의 걱정거리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태도란 자신의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할 바를 최선을 다한다는 태도랄까. 어떤 사람의 인생의 방향이 성경 말씀에 순종하며 (쉽게 말해 도덕적으로)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돈이 많고 적고, 지위가 높고 말고는 큰 의미가 없다.


세상은 모질다. 그가 말하는 공평과 태도의 의미를 곱씹어보니, 내가 공평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서 신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되풀이해오지 않았나 싶다. 과연 공평한가, 공평한가. 세상을 두드려 패 버리고 싶을 만큼 억울하고 화가 날 때조차 이 '공평'을 의심하지 않으려면 어떤 수양이 필요할지. 불혹을 코앞에 둔 지금도 어렵다.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공평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비로소 '태도'를 갖출 수 있다는 걸. 공평하게 주어졌다는 믿음이 있을 때, 자포자기나 허무주의,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


황 대표는 이미 공평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반듯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돈과 지위는 큰 의미가 없다는 친구지만, 얘보다 수준이 낮고 세속적인 나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돈과 지위를 마음껏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럴 자격이 분명히 있다. 이 친구의 '일잘러' 속성은 믿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삶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마주할 때, 그런 건 신께 맡기고 내가 할 바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부정적인 감정에서 빨리 빠져나온다고 한다. 나는 황 대표에게서 꿋꿋한 평정심을 배운다. 젊은 나이에 회사를 차려 혼자서 책을 쓰고 펴내면서 단련이 된 흔들리지 않는 성품은, 그가 가정에서 불화를 겪고 이혼이라는 어려운 결정에 다다를 때, 홀로 여덟 살과 다섯 살 두 아이를 기를 때에도 빛을 발했다. 이 친구는 꼭 잘 되어야 한다.


어쩐지 쓸쓸한 서른아홉이라는 나이, 그가 내다보는 40대는 어떤 계획으로 촘촘히 짜여 있는지 궁금했다. "40대 중후반까지는 시리즈로 크게 계획하고 있는 책들을 만들 생각이지만, 그간 바빠서 작업할 수 없었던 피아노 음악과 전자음악도 다시 시작해 앨범을 하나씩 내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난 이 친구를 '제 가치만큼 인정받지 못한 음악 천재'로 생각하고 있었다. 음악을 다시 한다니 반가운 말이다.

"내 멋에 겨워서 만드는 음악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음악,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말에 더욱 기대가 됐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와 이뤄져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함께하고 싶다고 한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의민아. 삶에 대한 반듯하고 꿋꿋한 태도를 가르쳐주는 친구의 책과 음악이 더욱 완성도 높은 모습을 갖춰 대중에게 다가가길, 그리고 따뜻한 가정을 다시 한번 이루고 잘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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