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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운 Oct 28. 2018

우리 주변의 돌려까기 전사들에게 맞서려면

그 여름의 passive-aggressive 할머니


실화다. 지난 7월께의 일이다. 매일같이 폭염에 두들겨 맞던 어느 날 오후 4시, 어린이집에 다니는 큰 아이 하원 시키러 급히 걸어가다가, 시트콤 같은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길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던 60대 초중반 할머니 1, 그리고 나와 같은 방향으로 몇 발짝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빨간 원피스를 입은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 2.


할머니 1: (장미희 배우와 목소리 및 말투 매우 흡사) 아주 젊으신가 봐요, 그렇죠?

할머니 2: 네?

할머니 1: (한껏 빈정빈정) 보통 나이 들면 이렇게 푹 파인 건 안 입잖아요, 안 그래요?

할머니 2:...??? 저 육십 다섯인데요...


슬쩍 보니 할머니 2가 입은 옷은 색깔이 새빨갛다는 것만 제외하면 아주 평범한,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브이넥 원피스. 여름에 동네에서 많이들 입는 그런 옷이었다. 그리고 서로 존대하는 말투가 원래 아는 사이 같진 않았다. 솔직히 흥미진진했지만 서둘러 가던 참이라 여기까지만 들었다.


둘은 그 후 싸웠을까, 아님 빨간 옷 입은 할머니 2가 모른 척 가버리고 말았을까.


모르는 사람의 복장에 대한 지적을, 한껏 꼬아서 날리는 파이터 할머니. 꽤나 재미있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passive-aggressive. 찾아보니 한국어로는 수동-공격적인, 수동 공격형의 라고 번역해서 쓰는데 그 느낌이 확 살지 않아 아쉽다. ‘돌려까기 스타일’이라고 하는 편이 더 와 닿는다.


‘수동-공격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10가지(10 Things Passive-aggressive People Say,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passive-aggressive-diaries/201011/10-things-passive-aggressive-people-say)라는 글을 보면 이 돌려까는 유형의 사람들은


나 화난 거 아니거든? (I'm not mad.)

그러시던가. (Fine.)

네 교육 수준에서 그 정도면 잘한 거지. (You've done so well for someone with your education level.)

그냥 웃자고 한 소리야. (I was only joking.)

뭘 그리 화를 내? (Why are you getting so upset?)


같은 말을 한단다. 주변에도 한 명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히 아래 두 문장 이어서 말하는 사람들. 돌려 까기에 정색하고 반응하면 “아니 웃자고 한 소리를 죽자고 덤벼들면 어떡해?”하며 나를 프로 예민러로 만드는.


그렇다면 이런 공격을 받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무려 구글 검색까지 하며 전략을 세워봤다.


'수동-공격적인 사람들에 대처하는 여섯 가지 방법(6 Tips Dealing Passive-aggressive People,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communication-success/201501/6-tips-dealing-passive-aggressive-people)'이라는 글의 6가지 팀 중 두 가지가 꽤나 유용하게 보인다. 바로


조기에 감지할 것(Notice Passive-Aggressive Behavior Early).


즉, 처음 보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한껏 비아냥대는 말투로 나이가 젊으신가 보다 물으면 굳이 대답해주면서 공격할 기회를 줄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대꾸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리고


비교적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유머를 적당히 써서 상대방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임을 보여줄 것(In Relatively Mild Situations, Display Superior Composure Through Appropriate Humor).


이게 바로 고수의 길이겠구나! 다음은 상상 속 두 할머니의 대화 재구성. 빨간 원피스 할머니가 멘탈 갑 고수였던 버전으로.


할머니 1: 아주 젊으신가 봐요, 그렇죠?

할머니 2: 그럼요, 백세시대인데 아직 젊죠.

할머니 1: 보통 나이 들면 이렇게 푹 파인 건 안 입잖아요, 안 그래요?

할머니 2: 너무 화사하고 예뻐서 입어봤는데 다들 반응이 좋더라고요. 예쁘죠?

할머니 1:....(털썩!) 내가 졌다...


옷차림일 수도 있고 화장일 수도 있고, 무엇에 대한 트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도 나만큼 기가 죽었으면 좋겠어'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공격에 상처 받을 필요도, 하나하나 대꾸하고 싸울 필요도 없다.


'매너는 중요하다. 좋은 외모는 보너스와 같다. 유머는 필수품이다. (Manners matter, good looks are a bonus, and humor is a must.)'라는 말도 있는데, 날 선 타인을 대할 땐 살짝 힘을 뺀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게 진정한 세련된 자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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