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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운 Nov 02. 2018

'한글'로 말해주세요?

대화 중 짜증 유발 + 지적질 욕구 상승, pet peeve

내게 유독 짜증을 유발하는 것을 영어로는 pet peeve라 한다. 딱히 유난한 성격도 아닌데, 나만 질색팔색 하는 것, 못 견디겠는 것, 지적을 할까 말까 번뇌 유발하는.


일단 떠오르는 것부터 고백해볼까. '한국어'라고 말해야 할 때 '한글'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나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요즘 꽤 많다. 거의 유행어 수준. 이럴 때면 사실 "아, 지금 '한국어' 말씀이시죠?"하고 싶어 목이 간질간질하지만 그냥 넘어가고 만다.


얼마 전에도 봤다. 국제회의 개막식 MC를 맡은, 자신을 무려 아나운서라 소개한 사람이, "그럼 이 멘트는 한글로 말할까요?"라 하는 걸.


사실 그 누구의 언어도 완벽하지 않다. 내가 "제 영어가 완벽하지 못해요~."라 말하면 고객 분들은 기겁하며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볼 것이다.


오늘 통역사 잘 못 부른 거 아냐?


그런데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조차, 허점이 많다. 국문으로 발행하는 경제신문에서 일했었고, KBS 한국어 능력시험을 봐서 상위 0%대 점수가 나온 적도 있다만, 여전히 취약한 나의 띄어쓰기. (이 글을 쓴 후에도 맞춤법 검사를 하면 또 얼마나 고쳐야 할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한글로 말할까요"와 함께 유난히 귀에 거슬리는 표현들이 있었으니,


"주말에 그냥 하릴없이 놀았지. 잠도 한 열두 시간 잤을 걸?"


    자주 봤다, '하릴없이=할 일 없이'인 줄 아는 사람들. 하릴없이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라는 뜻의 부사다. 내 기억이 맞다면 90년대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나왔다.


"내가 아시는 분이 그러는데...."


    잠시만요, 지금 누굴 높이고 계시죠?


그렇다면 영어권에서 생각하는 pet peeve는 어떤 게 있을까. 


먼저 언어 사용과 관련해서는 


"Loose" and "lose" are two different words.

    -loose(헐거운)와 lose(잃다)는 서로 다른 단어


"Affect" is a verb. "Effect" is a noun.

    -affect(영향을 미치다)는 동사, effect(영향)는 동사.


Presently means soon. Currently means now.

    -presently는 '머지않아'의 의미, currently는 '현재'의 의미. 와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표현을 많이 혼동하고 잘 못 쓴다고 한다. 그런데 pet peeve가 굳이 잘못된 말을 쓰는 것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언어적인 것 외에는


Socks riding down my foot in my shoe.

    -양말이 미끄러져 내려와 신발에 들어갈 때. (특히 신발 벗을 때 이런 일 많이 생긴다.)


People smoking electronic cigarettes around non-smokers. Smoking is smoking.

    -비흡연자 옆에서 전자담배 피우는 부류. (겪어봤다.)


People who walk into the subway and stand right in front of the door.

    -지하철에 타서 문 앞에 자리 잡는 유형. (매일 본다! 굳이, 대체 왜???)


When groups of people take up the entire side of the street.

    -길 전체를 넓게 가로막고 다니는 무리들. (노약자 지나갈 땐 살짝 공간을 내어주세요.)


Misspelling my name when it's right there in the email staring you in the face.

    -바로 눈 앞에 이메일에 쓰여있는데 왜 내 이름 스펠링을 틀려! (난 자주 겪는다. 박소원 박소은 박소윤 아닙니다... 으윽)


People who groom themselves on public transportation.

    -대중교통수단에서 치장하는 사람들. (몇 년 전부터 많이 보이는 지하철 메이크업 족, 영어권에도 있나 보다.)


글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 검색해보고 또 글을 써 내려가며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도 누군가의 격한 내적 짜증을 유발하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네' 또는 '아니오'를 굳이 두 번 이어서 하는 내 말버릇("네네, " 또는 "아니요 아니요, " 이런다)부터 피곤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소파에 코트를 벗어서 누여놓는 버릇 때문에 '웬 사람이 소파에 누워있는 줄 알고 심장 마비 올 뻔했다'는 남편의 항의를 듣곤 한다. 


그래, 나도 누군가에겐 pet peeve 덩어리일 텐데, 그렇게 잔뜩 까다로울 필요 있을까? 그냥 웃고 넘어갈 줄도 알아야지. 그리고 나의 언어부터 좀 더 세련되고 정교해지도록 공부하고 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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