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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hye May 20. 2016

2.Being a Person of Color

#고군분투유학생활 #시애틀 #문화예술

"My fellow Americans, we are and always will be a nation of immigrants. We were strangers once, too.

미국인들이여. 우리는 이민자들의 나라이고 언제나 그럴 것 입니다. 우리도 한 때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Barack Obama


얼마전 시애틀 시내에서 #BlackLivesMatter 운동을 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헐리우드에서는 #OscarsSoWhite 란 해쉬태그가 한참 유행입니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인권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나 강한지, 배울 게 참 많습니다.


약 14년 전, 고등학교 때 잠깐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인디애나는 워낙 시골마을인데다가 보수적인 동네라, 모두가 교회를 다니고, 땅도 넓어 운전을 하지 않으면 다닐 수가 없었고, 유색인종은 매우 드문 곳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저를 보면 "두유 노 브루스리?", "한국 어느지역에서 왔니? 남쪽? 북쪽?"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인식정도도 매우 낮았답니다. 미국에 대한 제 기억은 뜬금없는 인디애나에서 투박하고 착한 기독교 백인아줌마아저씨들 뿐이었는데 시애틀에 오니,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물론 뉴욕이나 다른 메트로폴리탄 도시를 갔었지만, 사실 시애틀이 이정도로 발전되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거든요. 


알고보니 여기는 도시중의 도시였어요. 미국에서 뉴욕만큼 도시다운 곳이 없는데, 뉴욕 뒷골목에서 관광객들을 뺀 모습이라고 할까요? 그러면서도 적당히 자연이 섞여있어서 힙스터들이 모여사는 곳이에요. 대도시생활이 지겨운 사람, 또는 시골생활이 지루했던 사람, 팝컬쳐와 멀어지고 싶은 사람, 또는 Tech 천재들이 모여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많은 분류들은 1.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또는 게임회사 엔지니어, 2.시카고나 LA에서 자기만의 문화를 펼치고 싶어하는 문화예술계 젊은이들, 3.브랜드가 아닌 독립서점, 식당, 가게 사장들, 4.바리스타 또는 바텐더, 그리고 4.노숙자들입니다. 이들이 모여서 참 신기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사실 시애틀 도시만은 서울보다도 작은데 말이죠, 정부의 문화예술지원금 예산은 2014년을 기준으로 서울이 4조 3,384억원, 시애틀이 4조 2989억원으로 예산 비율은 비슷하지만 예술기관의 수는 서울의 약 2.5배정도 됩니다. 그만큼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의 수도 많고, 종사자도 많다고 보면 되겠죠. 서울에 비해 정부가 지원해주는 예산은 많지만 미국에서 세번째로 시민들의 예술참여정도가 높은 곳이랍니다. 때문에 개인 기부금도 많고, 수익도 높은 편이라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진문화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보수적인 현상이 있답니다. 때문에 유색인종들은 인권운동을 위해 여전히 이곳 저곳에 모이고 있고, LGBTQ커뮤니티가 매 해 마다 미국내에서 가장 큰 퍼레이드를 하고, 노숙자들이 이곳저곳에 누워서 정치적인 시를 외우고 있고..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이 사회정의와 평등주위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때문인지, 시애틀에서는 다행히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이 굉장히 낮습니다.)


저 역시 이곳에서 이곳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 배우다보니, 이러한 사회현상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자꾸 신경을 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저는 미국인도 아닌데 말이죠. 


한국에서는 단 한번도 제 피부색에 왈가왈부 한 적 없었는데, 내 피부가 도대체 무슨 색이길래 나를 Person of Color로 정의하는지, 그렇다면 왜 인종차별이야기를 할 때 흑인과 백인얘기만 하는 건지, 나는 미국인도 아닌데 왜 이 문제에 대해 배워야 하는 건지, 저 사람은 She라고 불러야 하는건지 He라고 불러야 하는건지. 이제와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니, 혼돈으로 참 지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유색인종이 되는 것이 왜 이렇게 저에게 중요해졌을까요? 


미국인들은 채용을 할 때에도 균등하게 채용을 해야하기 때문에, 유색인종이고 여자이면 더욱 우대를 해주는 추세이고, 광고를 보아도 일부러 베네통광고처럼 다양한 인종의 모델을 쓰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인권운동자들의 추종을 받게 되죠.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유색인종이 채용해 놓고 중요한 결정권을 주지 않거나, 광고에는 유색인종의 모델이 웃고있지만 실제 기관에 가보면 결국은 모두 백인들의 기관인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얼마전, 미국 워싱턴주연방의회에 예술 및 문화유산 간부회의에 자원봉사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워싱턴 주 내에 문화예술관련인물들이 모두 모여, 문화예술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시키는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아시안은 저 뿐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왜 미국의 여러가지 시스템이 평등하지 못한 지, 왜 미국은 노예해방이 선언된 지 몇백년 후인 지금까지도 인종차별에 대해 다투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색인종의 리더들이 더 나서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하고,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데 아직도 소수의견은 무시되고 있는 미국. 그런 점에서 보면 현 대통령 오바마는 정말 대단합니다.


여튼 제 관점으로는 미국에서 'Racism'이란 문제는 아직도 주관적인 것 같습니다. Person of Color 의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a person who is not white or of European parentage  백인이 아니거나, 유럽계통이 아닌 사람'이라고 정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흑인들은 아직도 노예해방을 이야기하고 있고, 아시안인들은 아직도 정체성을 찾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문제인지 조차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해외에 사는 한인들 역시 본인들의 삶자체가 더 힘들기 때문에 남을 돕는 일은 아직까지 버겁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이 문제가 거론되면 많이 불편하고 슬픕니다. 외국인으로서, 또 아시안으로서 저의 자리는 어디일 지,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나서도 될 지 많이 혼란스러웠고, 제가 따를만한 아시안계 리더가 많지않아 더욱 외로웠습니다. 또 막상 한국인들에게는 차마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여겨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Person of Color'이자 'American Ally'로서 저도 저의 권리를 위해 헤쳐 나가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군가가 외국에 나가서 성공하면 굉장히 대단하게 처우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본인들의 아들, 딸이 '국제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언어나 지식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윤리와 사회성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인재들이 해외에 나가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해외에서 '아시안', 또는 '코리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그들의 성공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무척이나 어렵고 헤쳐갈 일이 많겠지만,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미국보다 어떻게 보면 인종차별이나 불평등한 경우가 더 많은 한국사회에서도 알고 있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위 그림은 요즘 미국 인터넷에 많이 굴러다니는 그림인데요, 첫번째 그림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equal) 지원을 받을 경우의 모습입니다. 키가 제일 작은 사람은 아예 경기를 볼 수 조차 없죠? 두번째 그림은 세사람이 똑같은 위치에서 경기를 볼 수 있도록 조금은 차별된 지원을 받을 경우의 모습입니다. 두번째 그림은 공정(equitable)하다고 평가됩니다. 세번째 그림은 시스템이나 지원이 아예 없어졌을 때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미국사회는 두번 째 그림을 지향하고 있다고 여기면 됩니다. 


아마도 저 역시 미국이기 때문에 이렇게 싸워나갈 수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이민자들로 만들어진 이 나라에서, 누가 주인이라고 할 게 없거든요. 하지만 한국에서라고 제 태도가 많이 달라질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나쁜 짓을 하는 유색인종이나, 불법이민자들도 있다고 치지만, 정말 착한 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좋아하고 고향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댄서인 David를 언젠가 한국에 꼭 데려가고 싶은데, 그 친구가 그 때 한국에 와서 손가락질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겪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훈훈하게 영화<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한 장면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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