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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hye Sep 13. 2016

거꾸로 꿈을 꾸다.

나는 배우말고 스텝이 꿈이었다. 

우리 엄마는 말이 없던 내가 어느날 티브이에 손짓을 하며, "엄마, 나 저거 하고싶어"란 한마디에 내 손을 잡고 방송국으로 데려갔다. 우리 엄마는 아담한 키에 오목조목한 얼굴을 가지셨지만, 세련된 패션스타일과 새침하고 똑부러진 성격으로 가끔 오해를 사곤 했다. 누가 봐도 착하고 순진한 이미지였지만, 눈치껏 뭐든 해내는 범생이 성격이라 생전 해보지도 않은 연예인 매니저역할을 약 20년이나 하셨다. 때문에 아역친구들 엄마들은 줄줄이 역할을 따내는 나를 보고 오히려 우리 엄마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GPS도 없었던 시절, 초행길에 최신판 전국 지도 한권을 들고 작은 노란색 마티즈를 운전해 그 빠른 방송국 버스차를 새벽4시부터 따라다니셨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나를 위해 새벽까지 대본을 읽어주고 연기를 가르쳐주셨다. 겨울 밤 밤늦은 촬영이라도 있으면 그 많은 스텝들을 위해 초밥과 맥심커피를 잔뜩 싸서 나눠주기도 하셨고, 꽁꽁 언 내 몸을 유일하게 맨 살에 부벼주시며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던 연기를 잘 할수있도록 지지해주셨다. 


아역상을 두번이나 받을 때, 난 항상 엄마에 대한 마음을 잊지 않았다. 사실 상 같은건 별 관심이 없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난 엄마에게 꼭 모두 다시 드려야지... 하는 마음 뿐이었다. 유리로 된 연기상 트로피 따윈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안된다는걸 안지는 얼마되지 않은것 같다. (벌써 쓰레기통에 버린 지는 꽤 된것 같다.) 


그래도 그 트로피덕에 어느정도는 믿고보는 아역 연기자가 된 고등학생 시절, 미니시리즈를 찍을 때였다. 위계질서가 심한 방송국에서 가끔 원로 연기자는 하늘 위에 있고, 감독들은 하늘이며, 그 아래 조감독이나 진행스텝은 땅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진행스텝보다 더 어린 나같은 아역배우나, 신인배우, 또는 그 매니저들은 그냥 안보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늘위인 원로연기자가 늦으면 하루종일이 걸려도 무조건 기다리는게 옳은 일이고, 그 분이 스텝들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면 개미집에 홍수나듯 다들 난리가 나곤 했다. 마치 군대처럼 위에서 누가 깨지기라도 한다면 결국 화는 아래사람들에게 돌아오곤했다. 24시간 내내 대기상태였던 나와 엄마는 대부분 진행스텝의 연락에 의지하여 끼니를 떼우며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차에서 대기를 했다. 


그 날은 일산에서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막 나가려는데 원로배우이자 우리 아빠역할이였던 유인촌선생님이 전 스케쥴때문에 촬영스케쥴이 많이 늦어지거나 취소될것 같다는 연락을 진행스텝에게 받았다. 그러니, 때가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그날도 어차피 엄마와 나는 스텝들을 위한 커피와 빵을 싸가지고 대기중이었기에 우리는 근처 주차장을 가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차안에서 학교 숙제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계속되는 대기시간에 잠시 눈을 붙이고 계셨다. 아마도 그때 쯤부터 엄마의 건강이 전 만큼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던 때 같다. 시계를 보려고 나는 숙제를 하며 엄마 핸드폰을 쥐고 가끔씩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몇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아 의아해하던 중이었다. 드디어 띠리링 벨소리가 울렸고 엄마가 잠에서 퍼뜩 깨어 전화를 받았는데, "도대체 지금 어디에요!? 지금 벌써 유인촌선생님 현장에 와 계시는데 왜 안와있어요!? 빨리 와요 빨리!!" 너무 큰 소리를 치는 진행스텝의 전화에 엄마는 답도 하지 못하고 차에 시동을 걸고 얼른 촬영장으로 갔다. 엄마와 나는 얼른 달려갔지만 현장에는 촬영 차도, 스텝들도 아무도 와 있지 않고 유인촌선생님과 감독만이 저 멀리서 걸어다니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 저 멀리서 진행스텝이 달려오더니 엄마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거다. 그 때 뭐라고 이야기를 했는 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 신경을 무지하게 건드렸던 것 만은 분명하다. 아마도 몇 번을 전화했는데 왜 전화를 안받느냐고 했던 말에, 그리고 그 말에 들어간 욕과 큰 소리에 화가 났던 것 같다. 나는 엄마와 진행스텝사이에 껴들어 진행스텝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당신이 언제 전화했냐고, 전화기록에 나오지도 않는데 무슨 엉뚱한소리를 하냐고, 그리고 왜 윗사람들한테 혼나고 와서 우리엄마한테 그러냐고. 우리가 뭘 잘못했냐고....


울며불며 달려드는 날 보고 감독님과 유인촌선생님을 포함한 스텝들이 달려왔다. 내 얘기를 듣던 감독님은 오히려 진행스텝에게 왜 그랬냐고 꾸중을 주며 나를 안정시켰다. 그날 무슨 씬을 찍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는 길에 엄마는 "화가 나도 울지는 말아라. 울면 지는거야."라는 한마디뿐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내가 잘한건지 못한건지 그냥 지친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으로 집에 온 기억이 있다.


또, 그날 밤 잠결에 엄마의 전화소리를 들은 기억이 난다. 내가 참 자랑스러웠다고. 이제 다 컸다고.


마이너스 20도가 되는 날씨, 나는 가벼운 한복한장을 입고있는데, 스텝들은 노스페이스 잠바를 입고 있을 때,

나는 다음날 부을 까,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데, 따뜻한 라면 그릇을 나눠먹는걸 봤을 때,

나는 날리는 머리가 귀찮은데 짧은 머리에 두꺼운 비니를 귀까지 내려쓰고 있는 스텝들을 봤을 때,

내가 뺨맞는 장면에서 우리엄마는 뒤에서 몰래 울고 있는데, NG가 날 때 마다 '아이~씨'하며 고개를 내리는 몇몇의 스텝들의 모습을 봤을 때,

우리 엄마가 주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이건 누가 준거야? 누군지 몰라도 고맙네', 하고 무심히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봤을 때, 


나는 자라면 배우가 아닌 스텝이 되고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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