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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hye May 27. 2024

엄마매니저들

보호였을까 폭력이었을까

엄마는 말이 없던 제가 어느 날 티브이에 손짓을 하며, "엄마, 나 저거 하고싶어"란 한마디에 제 손을 잡고 방송국으로 데려가 주셨어요. 


처음 간 곳은 EBS 딩동댕유치원 오디션, 감독들은 아이들을 줄지어 놓고 한 명씩 무언가를 시켰다고 해요. "다음 너, 연기할 줄 알아?" 연기가 뭔 줄도 몰랐던 저는 고개를 저었죠. 그리고는 계속 무뚝뚝하게 질문들을 던졌다고 합니다. "너 그럼 노래해? 춤춰? 뭐 할 줄 알아? 할 줄 아는 게 없네.." 그때, 열린 문 틈 사이로 어머니는 절 지켜보다가 문을 빵 차고 들어오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여기 아이들을 위한 공익방송 아닌가요? 어떻게 아이들한테 그렇게 하실 수 있나요?" 나중에 담당자가 엄마를 진정시키며 원래 방송이라는 곳이 그런 곳이다. 어머님이 이해하시라고 했다고 해요. 엄마는 집에 가서 정말 이게 하고 싶냐고 계속 다시 제게 물었지만, 저는 완강했다고 해요. 


엄마는 아담한 키에 오목조목한 얼굴을 가지셨지만, 미대출신으로 세련된 패션스타일과 새침하고 똑부러진 성격으로 가끔 오해를 사곤 했어요. 눈치껏 뭐든 해내는 범생이 성격이라 제가 하고싶다는 말 한마디에 생전 해보지도 않은 연예인 매니저역할을 약 20년이나 하셨죠. 때문에 아역배우 친구들의 엄마들은 줄줄이 역할을 따내는 절 보고 오히려 엄마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죠. 1994년, 7살이 채 되지 않은 저에게 아줌마들은 이렇게 물어봤어요. "얘, 넌 연기학원도 안 다니는데 어떻게 들어왔니?" "너네 엄마가 감독님한테 뭐 했어?" 그래서인지 전 모든 아역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어요. (몇몇 친구들은 여전히 연락을 합니다만) 아줌마들이 너무 미웠거든요. 


그 후로도 어린이 방송에서 몇몇 친구들이 재계약을 받아내지 못했는데 저는 운이 좋게 계속 시즌을 이어갔어요. 그리고 아줌마들의 따돌림은 계속되었지만 엄마는 꿋꿋이 저의 꿈을 지켜주셨어요. 그러다보니 연기를 그만둘 때 쯤, 엄마와의 갈등이 심했어요. 왜 이제서야 연예인의 지위가 올라가는데, 지금 조금만 하면 더 잘될 것 같은데 그만두는지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고, 전 엄마를 충분히 설득시킬 수 없을 정도로 엄마는 배우로서의 저에게 집착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 엄마가 지금은 기억을 잃으셨고, 늘 참고 사셨던 엄마는 누구보다 편하게 하고픈 말과 표현을 떵떵거리며 하면서 지내시고 계시니 참 아이러니해요.


1995년 SBS <열려라 삐삐창고>

아역배우의 세계는 엄마들의 엄청난 노고가 있지만 때로는 그만큼 위계적이고 폭력적이기도 합니다.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 아이들의 글 <아동,청소년 배우의 샤프롱, 이들을 향한 모호한 법적 울타리>(https://walkingwithus.tistory.com/865)에서는 아역배우들을 위해 보호하고 교육하는 전담직원인 샤프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부모가 리허설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아역배우들의 보호자로서 전반적으로 필요한 관리를 맡는 인력이 투입되는데요, 부모가 배우의 매니저로서 활동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보호가 되겠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부모 매니저들의 지원이 아역배우들에게 진정으로 보호였는지 알기 어려운 것 같아요. 부모는 모성애와 같은 감정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 감정들이 현장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 아이로 하여금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부분도 있기에 아이는 독립적으로 성장을 하는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살을 빼야 한다고 아이를 굶기는 부모도 있었고, 하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시키는 경우도 많이 보았기에 (맥컬리컬킨의 유명한 사례가 있죠) 샤프롱과 같은 인력이 있다면 선택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샤프롱과 같은 인력이 방송생활에서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부분까지도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의문이기는 합니다. 저는 정신적으로 엄마에게 큰 의지를 하며 연기생활을 했고, 엄마의 손을 벗어나며 많은 결정적 실수를 하기도 했고 수많은 위험 상황을 스스로 견뎌내며 연기활동을 멈췄거든요. 이런 점에서 누군가 저희 엄마를 대체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에 와서 아역배우를 했던 친구들과 이야기 나눠보면, 우리는 엄마들때문에 친해질수가 없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연기생활에 있어서 엄마매니저들의 영향이 컸던 것 같고, 대단한 일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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