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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hye Sep 13. 2016

거꾸로 꿈을 꾸다.

저는 배우말고 스텝이 꿈이었어요.

GPS도 없었던 시절, 엄마는 초행길에 최신판 전국 지도 한 권을 들고 작은 노란색 마티즈를 운전해 그 빠른 방송국 버스차를 새벽 4시부터 따라다니셨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절 위해 새벽까지 대본을 읽어주고 연기를 가르쳐주셨어요. 당시 저희 집은 어떤 이유였는지 고모가 운영하시는 미술학원 옆 단칸방에 살았는데, 집중을 하기 위해 불이 꺼진 미술학원에 들어가 엄마와 밤 늦게까지 대본을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 밤, 밤늦은 촬영이라도 있으면 그 많은 스텝들을 위해 100개가 넘는 유부초밥을 직접 만들고 맥심커피를 잔뜩 싸서 나눠주기도 하셨고, 꽁꽁 언 내 몸을 유일하게 맨 살에 부벼주시며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던 연기를 잘 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신 분입니다.


연기대상에서 아역상에 이어 청소년상까지 상을 두 번이나 받았을 때, 사실 상을 받았다는 것 보다는 엄마를 괴롭힌 아줌마들에게 복수했구나라는 희열이 더 컸던것 같아요. 전 9살, 10살밖에 되지 않았는데도요. 그래도 그 트로피덕에 어느 정도는 믿고 보는 아역 연기자가 된 고등학생 시절, 미니시리즈를 찍을 때였어요. 



[해피타임 명작극장] 원미경, 유인촌, 정성경 주연 '고백(2002)'
https://youtu.be/PXpy9rtKOWs?si=HNhupb8S4_w_RbN7&t=829 


위계질서가 심한 방송국에서 가끔 원로 연기자는 하늘 위에 있고, 감독들은 하늘이며, 그 아래 조감독이나 진행스텝은 땅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다면 진행스텝보다 더 어린 아역배우나, 신인배우, 또는 그 매니저들은 그냥 투명인간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죠. 하늘 위인 원로 연기자가 늦으면 하루종일이 걸려도 무조건 기다리는게 옳은 일이고, 그 분이 스텝들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면 개미집에 홍수나듯 다들 난리가 나곤 했어요. 마치 군대처럼 위에서 누가 깨지기라도 한다면 결국 화는 아래 사람들에게 돌아오곤 했죠. 그래서 24시간 내내 늘 대기상태였던 저와 엄마는 대부분 진행스텝의 연락에 의지하여 끼니를 떼우며 시간이 될때까지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차에서 대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 날은 일산에서 촬영이 있는 날이었어요. 막 나가려는데 원로배우이자 아빠역할이였던 유인촌선생님이 전 스케쥴때문에 촬영스케쥴이 많이 늦어지거나 취소될 것 같다는 연락을 진행스텝에게 받았어요. 그러니, 때가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그날도 어차피 저희는 스텝들을 위한 커피와 빵을 준비해서 대기중이었기에 근처 주차장을 가 기다리기로 했어요. 저는 차 안에서 학교 숙제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계속되는 대기시간에 잠시 눈을 붙이고 계셨어요. 아마도 그때 쯤부터 엄마의 건강이 전 만큼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던 때 같아요. 시계를 보려고 저는 숙제를 하며 엄마 핸드폰을 쥐고 가끔씩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몇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아 의아해하던 중이었어요. 드디어 띠리링 벨소리가 울렸고 엄마가 잠에서 퍼뜩 깨어 전화를 받았는데, "도대체 지금 어디에요!? 지금 벌써 유인촌선생님 현장에 와 계시는데 왜 안와있어요!? 빨리 와요 빨리!!" 너무 큰 소리를 치는 진행스텝의 전화에 엄마는 답도 하지 못하고 차에 시동을 걸고 얼른 촬영장으로 갔어요. 엄마와 저는 얼른 달려갔지만 현장에는 촬영 차도, 스텝들도 아무도 와 있지 않고 유인촌선생님과 감독만이 저 멀리서 걸어다니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 때 저 멀리서 진행스텝이 달려오더니 엄마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거에요. 그 때 뭐라고 이야기를 했는 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제 신경을 무지하게 건드렸던 것 만은 분명해요. 아마도 몇 번을 전화했는데 왜 전화를 안받느냐고 했던 말에, 그리고 그 말에 들어간 욕과 큰 소리에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저는 이성을 잃고 엄마와 진행스텝사이에 껴들어 진행스텝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당신이 언제 전화했냐고, 전화기록에 나오지도 않는데 무슨 엉뚱한소리를 하냐고, 그리고 왜 윗사람들한테 혼나고 와서 우리엄마한테 그러냐고. 우리가 뭘 잘못했냐고....


울며불며 달려드는 절 보고 감독님과 유인촌선생님을 포함한 스텝들이 달려왔죠. 제 얘기를 듣던 감독님은 오히려 진행스텝에게 왜 그랬냐고 꾸중을 주며 절 안정시켰어요. 그날 무슨 씬을 찍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오는 길에 엄마는 "화가 나도 울지는 말아라. 울면 지는거야."라는 한마디뿐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어요. 저는 제가 잘한건지 못한건지 그냥 지친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으로 집에 온 기억이 있어요.


또, 그날 밤 잠결에 엄마의 전화소리를 들은 기억이 나요. 내가 참 자랑스러웠다고. 이제 다 컸다고.


마이너스 20도가 되는 날씨, 나는 가벼운 한복한장을 입고있는데, 스텝들은 노스페이스 잠바를 입고 있을 때,

나는 다음날 부을 까,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데, 따뜻한 라면 그릇을 나눠먹는걸 봤을 때,

나는 날리는 머리가 귀찮은데 짧은 머리에 두꺼운 비니를 귀까지 내려쓰고 있는 스텝들을 봤을 때,

내가 뺨맞는 장면에서 우리엄마는 뒤에서 몰래 울고 있는데, NG가 날 때 마다 '아이~씨'하며 고개를 내리는 스텝들의 모습을 봤을 때, 우리 엄마가 주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이건 누가 준거야? 누군지 몰라도 고맙네', 하고 무심히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봤을 때, 


저는 자라면 배우가 아닌 스텝이 되고싶다고 다짐했어요. 힘있는 사람. 어린아이에게는 그게 힘으로 느껴졌던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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