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기회가 눈앞에 펼쳐졌다
뉴욕에서 십 년을 찍고, 캘리포니아로 이사 온 지 일 년 반이 되어 가는 2018년의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새로운 삶의 터전도 제법 익숙해지고, 새로 이웃들과 친구들도 더욱 친근해졌다. 이 여름방학이 끝나면 이제 3학년, 8학년으로 올라가는 우리 아이들. 둘째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이전보다 더 독립적인 나이가 되었다. 여유가 생기자 내 안에 슬슬 이런 소망이 올라왔다. '영어도 배우면서 일도 할 수 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직장 어디 없을까?’
뉴욕에서 3년 정도 일을 한 경험은 있지만, 다 한인 회사들이었다. 그랬기에 짧은 영어 실력으로도 용기를 내어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더 나아졌겠지만, 과연 이 정도 영어 실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영어는 자꾸 부딪쳐야 늘 것이기에 나를 받아만 준다면 미국 마트에 지원해 볼까도 싶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학교 간 시간에 맞춰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더라도 학교가 쉬거나 방학이라도 하면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아이들을 맡기는 비용이 일해서 버는 돈보다 비쌀 것이기에.
이런저런 생각만 하며 틈틈이 취업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을 무렵, 카톡의 한글학교 교사방에서 공지가 울렸다. 재외동포재단에서 주관하는 한글학교 세미나에 참석하라고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지난 학기부터 교회 한글학교 교사로 일요일 2시간씩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작은 용돈벌이도 하면서 한국어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도 있어서 나름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이번 세미나는 한글학교 교사들이 수업에 도움이 되는 여러 아이디어와 유용한 지식들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나는 선뜻 간다고 신청을 했다. 세미나 장소가 제법 먼 거리여서 다른 선생님들을 태우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는데, 그중 한 선생님이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선생님, 일하고 싶으세요?”
“네! 안 그래도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럼 얼바인 디스트릭에서 스페셜 에듀케이션 인스트럭셔널 어시스턴트(Special Education Instructional Assistant)로 지원해 봐요. 나도 예전에 일해 봤어요.”
엥? 그게 뭐지?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하자면 특수학급 보조교사예요. 학교에서 장애우 아이들을 도와주는 역할이에요.”
“자격증이 없어도 돼요? 영어 잘해야 하지 않나요?”
“관련 학위나 공적인 점수가 없으면 디스트릭에서 요구하는 시험을 보면 돼요. 점수가 70퍼센트만 넘으면 되는데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빨리 신청부터 해봐요. 영어는 웬만큼 알아듣고 말할 수 있으면 될 거예요. 그리고 추천서 두 통 필요하고요.”
우리 한글학교에서는 세 명의 선생님이 이 직종에서 일을 했거나 현직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완전히 필을 받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할 수 있으며 영어로 일할 수 있는, 내가 찾던 바로 그 직장이 아닌가! 나는 결심했다. 내 영어 실력으로 이 일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고민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로. 그래, 뒤도 돌아보지 말고 한번 뛰어들어가 보자!
이후 나는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내가 지원하려고 하는 'Instructional Assistant' 자격 조건으로는 CBEST나 AA Degree, 혹은 ‘Proficiency Test’ 점수를 내면 된다고 되어 있었다. 나로서는 관련된 교사 자격증이나 시험 성적이 없기 때문에 얼바인 교육구에서 주관하는 'Proficiency Test’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인 영어, 수학 문제들과 보조 교사 행동지침 등에 관한 시험을 치르는데, 예상문제집은 교육구 사무실에 책자로만 비치되어 있다고 해서 얼른 찾아가서 한번 훑어보았다. 문제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더 공부하고 싶어도 마땅한 자료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비슷하게 나온 문제들을 뒤적여 보다가 그냥 담대하게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드디어 D-Day! 너무 오랜만에 치르는 시험이라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운전하고 가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시 18:29). 그래, 내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그 담을 다윗처럼 하나님만 의지해서 뛰어넘어보자! 새로운 용기로 마음이 충전되었다.
이윽고 도착한 얼바인 교육구 사무실. HR 부서의 시험관이 시험에 앞서 설명을 해주는데 내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려주었다. 이번 시험에서 떨어지면 앞으로 6개월간은 시험을 치를 수 없다는 것. 헉, 그렇담 잘 봐야 할 텐데… 긴장감이 다시 몰려들었다. 주어진 시간에 맞춰서 시험을 치르는데, 가까이서 문제를 들여다보려니 눈이 침침하여 문제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벌써 노안이 오고 있나 보다. 특히 영어에서 알쏭달쏭한 문제들이 제법 많았다. 문법에 손을 놓은 지 너무 오래되었나 보다. 열심히 고민하며 찍다 보니 그 많던 시간들이 어느새 날아가고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의 촉박함을 인지한 내 마음도 덜덜 떨려왔다. 문제는 쉬웠지만 항목이 많아서 급하게 문제들을 풀어내려 갔다.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정말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딱 맞춰서 겨우 시험을 마칠 수 있었다. 영어 붙들고 오래 고민하지 말고 쉬운 수학 문제부터 풀 것을, 뒤늦게 후회가 밀려들었다.
자리에 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 결과를 기다렸다. 채점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시험관이 나아와 내게 하얀 종이를 건네주는데, 정말 다행히도 세 과목 점수가 다 90퍼센트를 넘겼다. 한참 고민했던 영어 점수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높았다. 이 안도감이란! 모든 체증이 다 가라앉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HR 직원은 내게 축하한다며, 지원해 볼 수 있는 직업군들을 소개해 주었다. 일반 학급의 어시스턴트, 특수 학급의 어시스턴트, 행동 교정 어시스턴트… 다 학교의 보조 교사 일이었다. 질문이 있냐는 말에 사실은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질문이 (영어로) 정리되지 않았기에 그냥 없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한 차례 관문을 통과했다! 제대로 준비를 못했기에 더욱 불안했던 시험을, 그래도 잘 끝내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두 번째 관문은 서류 작성인데, 추천서 두 통을 받는 게 시급했다. 다행스럽게도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었다. 현재 다니는 한글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뉴욕에서 다니던 교회의 장애우 부서 전도사님이었다. 그 전도사님은 본인이 신체적 장애가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자녀 넷을 낳은 엄마이며 교회의 장애우 사역도 훌륭히 감당하는 존경스러운 분인데, 남편이 장애우 부서에서 오랫동안 봉사하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도와드리며 가까이 교제 나누게 되었다. 그때 그분이 내게 장애우 돕는 일을 하면 어떻겠냐고 권했던 일이 퍼뜩 떠올랐다. 오랜만에 다시 연락을 드렸더니 반가워하시면서 기꺼이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은 이미 여러 선생님들에게 추천서를 써주신 경험이 있어서인지 흔쾌히 허락하여 금방 작성해 주셨다.
이리하여 모든 서류가 일주일 만에 갖추어졌다. 시험 성적표와 추천서 두 통을 첨부하고, 내 소개와 경력이 담긴 이력서를 작성하여 인터넷 사이트에 등록하였다. 필수사항은 아니지만 영문본 고등학교 졸업증명서와 대학 성적 증명서도 있길래 같이 첨부하였다. 채용 공고를 보니 일반 학급과 특수 학급의 보조 교사 자리가 각각 나와 있었다. 시급은 특수 학급이 조금 더 높긴 했지만 자리를 가릴 때가 아니었다. 누가 나를 써주겠다고 할지 모르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두 군데 다 지원해 보았다. 과연 어디에서 연락이 올 것인가. 이제 떨리는 기다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