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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Dec 28. 2018

새로운 도전 앞에

- 재미수필 13회 신인상 가작

미국에서 사는 지난 십이 년 동안, 이곳에서 겪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특히 올해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내게 의미 깊은 도전 중의 하나였지요. 그렇게 글을 차곡차곡 적어 내려 간 경험으로 수필공모전에도 도전을 하였는데, 재미수필문학가협회에서 주최하는 제13회 신인상 공모에서 제 수필이 가작으로 당선되는 기쁨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올해엔 1등 없이 2등인 가작이 2명, 3등인 장려상 3명이 당선되었는데, 제 작품은 그중 가작으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사실 돌아보면 더 잘 쓸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글이지만,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감사히 상을 받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직전인 지난 12월 20일에 여러 작가 선배님들을 만나 뵙고 좋은 말씀과 격려 받고, 상금과 상패와 영예도 받았으니 이보다 더 좋은 성탄절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이 글은 제가 브런치에 쓴 글인 선거관리원 경험담을 압축하여 수필로 엮어낸 것입니다. 작은 걸음들로 걷다 보면 의미 있는 한 계단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저에게 열린 문을 향해 열심히 걸어가 보려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글쓰기에 관심 있는 분들도 용기 내어 도전해 보시라고 아래에 공유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잠시 숨을 돌리며 컴퓨터를 열었다. 받은 메일함을 찬찬히 훑어보는데, 영어로 쓰인 낯선 제목의 이메일이 눈에 띄었다. 미국 선거 유권자 등록을 해 주어서 고맙다면서 다가오는 예비선거에서 'Poll Worker'로 자원봉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단번에 드는 궁금증, 'Poll Worker'가 무엇인지 찾아보니 선거관리원을 뜻하는 말이었다. 영어가 불편한 한국 사람들을 위해 투표소에서 이중언어 선거관리원으로 봉사하게 되면 미국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하는 동시에 한인 커뮤니티도 돕게 된다면서 봉사비 또한 받게 된다고 했다. 읽는 내내 귀가 솔깃해졌다. 하지만 미국 투표에 참여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봉사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12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오기 전만 해도 내 영어 실력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학창 시절 영어 점수도 좋았고, 대학 때는 영어 과외 선생님으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 보니 그 자부심과 더불어 자존감까지 와장창 깨어졌다.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고, 속 시원히 내 사정을 말하지도 못하는 답답한 신세가 된 것이었다. 아는 척 어물쩍 넘어갔더니 중요한 것을 놓쳐서, 손해를 봐도 누구 탓도 못하며 좌절의 쓴맛을 맛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시간이 내 편인 줄 알았다. 사노라면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이 늘 줄 알았건만, 내가 노력하지 않는 한 영어는 절대 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민 생활에서 절절히 체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름의 노력을 다해 보기도 했다. 대학의 ESL 수업을 듣기도 하고, 아이가 하나일 때에는 직장 생활에 도전하여서 3년 정도 한인 여행사와 가발회사 창고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짧은 영어로도 의사소통을 하며 업무를 감당할 수 있었다. 정말 그때 운전 실력도 많이 늘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늘었다. 잘 못 알아듣겠으면 다시 질문을 만들어 물어보면 된다는 팁도 그때 배웠다.


그러다 둘째가 생기면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집에서 한국말을 접하며 자라난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영어가 쏼라쏼라 유창해지더니 급기야 한국말에도 영어를 섞어 자신만의 요상한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영어의 달인이 되어 가는 사이에, 이 엄마는 집에선 아이들 교육상 한국말만 하고 밖에서는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다 보니 전에 잠시 상승세를 타던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다시 하강 곡선을 긋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있는지라, 내 생활에 필요한 영어 정도는 어떻게든 구사하게 되었지만, 더 깊이 들어가려면 한계에 부딪히곤 하니 그야말로 생존 영어 수준이다. 전화로 영어를 쓸 일이 있으면 긴장부터 하고, 그 사람이 빨리 말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부터 한다.


그런 내게 갑자기 날아든 이 한 통의 이메일은 나를 새로운 도전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정작 통역으로 갔다가 내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면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인터넷에서 관련 동영상도 찾아보며 고민을 거듭하다가 아무래도 내 역량 너머의 일인 것 같아서 정중하게 거절의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내가 영어로 쓴 내용을 보니 충분히 감당할 실력이 된다면서 지금 봉사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 영어 실력도 괜찮다고 나를 믿어주는 말에 마음이 흔들려 '그래, 까짓 한번 해 보자!' 크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아이들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반나절만 일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다만, 걱정이 되는 만큼 훈련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며 과정을 눈과 귀로 익혔다. 트레이닝 코스에 참가해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봉사하시겠다고 지팡이를 짚고 와서 경청하는 모습에 도전을 받기도 했다. 선거 전날까지 온라인으로 훈련 강의를 또 듣고, 지침이 담긴 소책자를 들춰 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연습으로 달랬다.


드디어 실전의 날! 떨리는 마음으로 투표 장소인 학교에 도착해 보니, 어느 백인 엄마가 우리의 리더였고, 또 한 명의 백인과 인도인, 일본인, 그리고 나까지 다섯 명의 여자들이 한 팀이 되어 있었다. 가슴에 선거관리원 배지를 하나씩 달고서 함께 투표소를 설치하고 맡을 역할을 분배하는데, 가장 영어를 많이 안 써도 되는 일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오전 7시, 드디어 투표가 시작되었다. 앞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줄 지어 들어와 금세 투표소가 붐비게 되었다. 내가 맡은 역할은 딱 마음에 들었다. 환하게 인사를 해 주고, 투표자의 주소를 확인한 뒤 자로 밑줄 쫙 긋고 그 다음 사람에게 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실 내 본 업무는 한국어 통역인데, 어째 한국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를 않았다. 어느 미국인 아저씨가 내 이름표에 "한국어 합니다" 글자를 알아봤는지, 갑자기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해서 함께 웃으며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눈 것이 내가 쓴 한국말의 전부였다. 비록 통역의 역할을 감당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영어로만 소통하는 환경에서 지시대로 잘 따라서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했고, 나 자신이 기특하게 여겨졌다. 사람들의 걸음이 끊기는 한적한 시간에는, 옆에 앉은 다른 사람들과 짤막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아직 미혼인 아만다는 친구 결혼식으로 2년 전 서울을 방문하였다며 그때 사진도 보여 주어서 얼마나 반갑던지. 호탕한 일본 여자 준은 한때 여행사 투어 매니저로 일해서 세계 대도시들을 다녔다며 내가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왔다고 하니 바로 뉴욕에 대해 아는 척을 해 주었다. 그녀는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본어 통역을 하면서 학교나 병원 등 부르는 곳을 찾아간다며 나도 한번 해보라고 권해 주는데 그 말만으로도 고맙고 격려가 되었다. 제일 어려 보이는 사나는 건강식 머핀을 구워 와서 하나씩 나누어 주는데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감독관인 엘레나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약간 쌀쌀맞게 보였던 첫인상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녀와 학교, 교육 등 엄마로서의 관심사를 나누는 가운데 친근함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들의 말을 전부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알아들은 만큼 주고받으며 짧게나마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하여 어느덧 8시간이 금세 지나가고 오후 2시가 되었다. 반나절만 지원했던 내 업무는 여기서 끝!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헤어지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엘레나가 수고해 줘서 고맙다며 다음에도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에, 저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처음에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얼마나 고민을 거듭했던가. 그때 지레 겁먹고 결국은 고사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즐거움과 보람은 느끼지 못했으리라.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해 볼만 한데!' 우리 아이들에게 서둘러 가서 엄마 잘했노라고 자랑해야지. 두려웠던 영어의 장벽을 하나 넘어선 기분, 돌아가는 발걸음이 상쾌했다. 앞으로 만나게 될 크고 작은 도전들 앞에서 이제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으리. 가슴에 달린 선거관리원 배지가 햇살에 반짝, 내 마음도 새로운 용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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